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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Feb 04. 2020

혼자 잠깐 멈춤

커피의 시간


<2020. 2. 4>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마시지 않는 사람이 있다. 커피 공화국, 카페인 공화국이라 일컬어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후자를 찾기가 더 힘들 터. 예전의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잠깐 녹차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커피는 멀리하고 녹차만 마셨다.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고 나서도 한동안 커피가 당기지 않았다. 결혼 이후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 언니, 오빠, 올케언니, 형부 등 식구들이 모이면 식사 후에는 꼭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곤 했다.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의 황금비율은, 공식이자 진리다. 그중에서 나만이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 특히 큰 올케언니는 나를 별종으로 취급했다. 당시야 뭐, ‘취향 존중’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니.     



언젠가부터 나도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나 뭐라나, 농담이고. 여자 남자를 떠나 사람의 취향은 변하는 것이다. 이제는 제법 다양한 커피를 골라서 즐기기에 이르렀다. 아침에 시간이 넉넉한 날은 원두를 갈아 향을 음미하며 드립 커피를 내린다. 점심을 먹고 나서 유독 졸릴 때는 쨍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때린다. 일요일 오후에는 베트남 커피 핀을 꺼내어 천천히 진하게 내린 커피에 따뜻한 우유와 설탕을 넣고 나만의 카페라떼를 만든다. 봄가을로 날이 좋을 때는 멀리 산 경치가 보이는 단골 카페에 들른다. 자체 메뉴인 ‘미니 하우스 라떼’를 나는 가장 좋아한다. 일반적인 라떼보다 양은 적지만 진하고 고소한 맛이 딱 내 취향이거든.


커피를 마실 때는 첫째로 맛이 우선이겠지만, 나에게는 분위기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루에 몇 잔씩 들이켜는 카페인 중독자는 아니므로 나에게 커피란, 주로 ‘혼자 잠깐 멈춤’의 의미로 다가온다.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하기 전 몸과 정신을 예열하기 위해, 한창 하던 일에서 10분만 빠져나오고 싶을 때, 머리가 복잡해 잠시 멍 때리고 싶어서, 비 오는 통유리창 앞에 서 있다 보니, 하필 그날따라 하늘이 눈부시게 파래서, 등산 후 아픈 다리를 쉬게 하려고......      


스웨덴에서는 비슷한 개념으로 ‘Fika’라는 말이 있다. ‘피카’는 ‘커피’를 뜻하지만 동사로도 활용되어 “우리 피카할까?(Shall we fika?)”라고도 쓰인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커피를 즐기기 위해 잠깐 동안의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여기에 말벗이 되어줄 상대가 있다면 완벽한 피카다(놀러 와요 북유럽 살롱 14p~15p/중앙books). 누군가와 함께하는 커피 타임도 좋지만 그건 내 경우, 잠시 멈춤을 넘어서 엉덩이 눌러 붙이고 수다 떠는 자리로 흘러가기 일쑤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결국 내가 원하는 ‘수다 말고 침묵, 꽉꽉 채우는 대신 여백, 분주함 사이로 틈이 필요할 때’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내 방식의 피카는 혼자일 때 완성된다. (내가 좀 이상한 인간인 걸까???)     


벼르던 바리스타 초급 수업을 얼마 전에 신청했다. 이제 두 번 수업을 받았다. 한 시간은 이론을 배우고 한 시간은 실습을 한다. 되는대로 내렸던 드립 커피를 제대로 배우고 있다. 아, 그동안 정말 엉터리로 만들어 먹었구나. 조급한 나는 얼마 동안 연습해야 제대로 드립 커피를 내릴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선생님 왈, 6개월 정도 하면 된단다. 오 마이 갓, 6개월이나 걸린다고라?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것이여! 그래도 즐겁기만 하다. 곰손이라도 하다 보면 늘겠지. 잘하면 좋고 못 하면 또 어때. 아무튼 ‘혼자 잠깐 멈춤’을 우아하게 즐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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