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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Jul 24. 2018

나에게 주는 만 50살 기념선물, 돋보기도 괜츈하네?

나이 듦은 성장이다

<2018년 7월 19일>


낼모레가 만 50이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모레, 21일 토요일이 내 만 50살 생일이다. ㅋㅋ
40대 이후로는 어쩐지 자꾸 생일날을 까먹어서, 남편이 먼저 알려주곤 했다.
며칠 전까지는 기억하고 있다가 당일날 되면 까먹는 식이다.

엄마 생신 모임을 이번 주 토요일에 하기로 했는데,
이번에도 그날이 내 생일이기도 한 것을 여전히 잊고 있었다.
역시 남편이 말해 주어 알았다.
남편이 먼저 알려준다고 해서 선물까지 알아서 챙겨주지는 않는다.
그 정도로 센스 있는 남자는 아니어라.
남편은 딱 생일만 기억하는 걸로 소임 끝.
나이 먹어 갈수록 나도 더욱 능청스러워져서 뻔뻔하게 선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아니면 언제 선물이란 걸 받아보냐고.

"토요일이 당신 생일인데? 또 까먹었지?"

"어, 또 잊고 있었네. 그럼 생일선물로 ** 해줘."


받는 사람의 취향을 생각해서 알아서 정성껏 고르는 게 진정한(?) 선물이라지만,
거기까지 다다르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기에 그냥 콕 집어 받고 싶은 걸 말해준다.
확실히 옆구리 찔러 절 받기 느낌이지만 어쨌거나 절만 받으면 되는 거다.
옆구리도 안 찌르고 알아서 해주기를 우아하게 기다리며 속이 터지기보다는,
훨씬 수월하며 안전하고 정확한 옆구리 찌르기가 낫다. 
이 나이 정도 되면 그리 많은 걸 바라지 않게 된다.
옆구리 찌르기가 통하는 것만 해도 감사하쥐. ㅋ

그러나 이번 생일에는 내가 나에게 먼저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
어젯밤에 '며느리 사표'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바로 돋보기안경!!!

잘못하면 '책 읽기'에 사표를 내야 할 판이다.

글씨가 너무 안 보여.

지금으로부터 8년 전 2010년에 라섹 수술을 받았다.
초3 때부터 써오던 안경을 드디어 나이 마흔셋에 벗어던졌다.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거의 심봉사가 눈뜬 기분이었지!
그동안 수술이 무서워서 못 했는데 '진작 해서 일찍이 광명을 찾을 걸!'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바라던 대로 근시는 사라졌으나 라섹의 부작용인 노안이 살짝 생겼다.
그래도 별 불편 없이 살았건만 나이 오십이 되니 밤에 휴대폰이나 책을 읽는 게 너무나 힘들어졌다.
어젯밤엔 글씨들이 가물가물 춤을 추더라.
똑바로 인쇄한 글자들이 왜 지렁이 춤을 추는지.
라섹 후유증에 나이로 인한 노안이 겹쳐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아침에 안과부터 찾아갔다.
보통 45세 경부터 돋보기를 쓰는데 나는 많이 늦은 편이라고 하네.
몇 년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일부러 버틸 때까지 내가 버텼다.
지긋지긋하게 33년을 썼던 안경을 다시 시작하기가 싫었다.
또 돋보기를 쓰면 진짜 확 늙어버린 것 같은 기분 때문이기도 했다.

안과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나이 들어 라섹을 하면 5년쯤 지나 다시 근시가 돌아오는 게 일반적이란다.

내 경우는 8년째 멀쩡하니 실력 좋은 의사에게 수술을 잘 받았다고 한다.

오, 그런 거였군.

그때 의사가 누구였는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당.^^

안과에서 검사를 받고 안경점에 가서 돋보기안경을 맞추었다.



기왕이면 멋진 걸로 쓰고 싶어 이것저것 고르니,
사장님이 자주색과 주황색이 앞뒤로 겹친 세련된 걸로 추천하신다.


"넵, 딱 맘에 듭니다!^^"


돋보기 티도 안 나고 아주 예쁘다.

오오, 이거 쓰고 휴대폰을 보니 신세계가 열렸네!!!
이리도 잘 보일 수가!
이제까지 카톡에 본의 아니게 웃기는 오타를 남발했는데 이젠 그럴 염려 없다. ㅎㅎㅎ
돋보기를 쓰는 기분이 생각보다 괜츈하네?^^

이럴 때 셀카가 빠질 수는 없는 법.
당당하고 오만하게 손가락 다섯 개 쭉 펴고 만 50살 기념사진!

50까지 씩씩하게 무사히 잘 살아왔네, 기특하다.



돋보기를 쓰고 나서 생각하니 내가 참 어리석은 인사일세.

항시 써야 하는 근시 안경과 달리 돋보기는 글을 읽을 때만 쓰는 거잖아. 

하긴 늘 휴대폰, 책, 컴퓨터를 보긴 하지만 안경 안 쓰면 사람도 못 알아봤던 근시 시절과는 비교할 게 아니지.

지레 겁먹고 여태 인상 쓰며 힘들게 글씨를 읽어왔네, 바부팅이 같으니라고.


이래서 실제 상황보다 마음속 두려움과 거부감이 사람을 옥죄는 것이다.

막상 마주 하면 별 것 아닌 것을. 

현자들이 말씀하시길,

대면함으로써 두려움이 사라지고 대상을 모를수록 더욱 두렵다고 했던가.




나이 드는 걸 거부하고 두려워 말기,

오히려 반가이 맞이하기, 그게 요즘 내 화두다.


아이들이 자라나 성년이 되면 드디어 '성장했다'고 부모는 기뻐하면서,

정작 자신이 나이 드는 것은 '내리막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무의 나이테에 세월이 한 해씩 쌓여 굵어지듯, 

사람도 나이 안에 그가 살아온 흔적이 겹쳐 쌓여간다.


오십 안에는 세 살도 들어있고 열다섯 살도 들어있고 서른 살도 마흔 살도 들어있다.

그 모든 나이가 자신이다.

나이 듦은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 갑자기 닥치는 결과가 아니라,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되어 온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나이 듦이 곧 인생이고 인생이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인 것을.

서른까지만 혹은 마흔까지만 성장이고 그 이후는 오직 늙어감이라니.

어쩐지 이상하지 않은가? 

그건 자연의 현상과는 맞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 아닐까?

우리는 나이 들수록 계속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그걸 늙음 혹은 내리막길이라고 부정하지 않는 한.


오십을 맞이하는 나의 감회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오십도 이만하면 살만 하다.

괜츈한 오십,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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