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바꾸기를 시도하려면 정신 무장부터 해야 하는 법. 도서관에서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을 빌려왔다. <심플하게 산다> <심플하게 산다 2>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버리면 버릴수록 행복해졌다> 등. 우선 <심플하게 산다>를 읽었다. 2012년에 출간된 책이었다. 2020년이 끝나가는 현시점에서 보면 맞지 않거나 간혹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물건, 집, 시간, 몸, 관계, 마음에 대해 총체적으로 생각해 보기엔 충분했다.
먼저 옷장을 열었다. 강의를 하는 몇 년 사이 (나답지 않게) 옷이 많이 늘었다.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서 사람들 앞에 서려면 말끔한 옷들이 필요했다. 연구소로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가 되지 않았나. 공공기관의 대면 강의는 거의 없어졌다. 나 역시 사무실을 집으로 옮기고 온라인 체제로 변신했다. 그러는 동안 옷을 사지 않았다. 아니 살 필요가 없어졌다. 있는 것들만으로도 족하다. 실은 넘친다.
첫 번째로 비울 것은 옷장이었다(‘비운다’는 곧 ‘버린다’와 상통한다). 나는 사계절별로 몇 가지씩만 남기려고 했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우리에게 계절이란 단순히 봄 여름 가을 겨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봄이라 해도 아직 추운 3월용 옷들과 여름에 다가서는 5월용 옷들은 완전히 다르다. 가을 겨울도 마찬가지다. 여름만 통일이 된 달까. 초보 미니멀리스트의 한계였다.
나름대로 계절을 세분해서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50여 벌의 옷들을 추려내었다. 여전히 치워야 하나 그대로 두어야 하나 망설여지는 옷들이 있었다.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는 것은 모두 버려라!’고 했다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니까. 천천히 하자. 나의 미니멀 지수가 올라가면 반비례해서 옷 개수도 줄어들겠지.
옷장 안이 널널해졌다. 옷을 찾기도 한결 쉬워졌다. 밀린 숙제를 해버린 듯 시원했다. 동시에 옷을 고르는 기준이 명확해졌다. 꼭 필요한 것. 디자인이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 내 몸에 딱 맞는 것. 유행을 타지 않는 것. 기존의 옷들과 잘 어울리는 것. 원단의 질이 좋아 오래 입을 수 있는 것. 아 또 하나, 명품이 아닌 한 가격에 너무 민감해하지 말 것.
고백하자면 내가 옷을 살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조건이 가격이었다. 즉 가성비. 가성비 좋은 것들의 단점은 일반적으로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싼 것 여러 개를 사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느니 비싸더라도 오래가는 것들로 선택하는 게 이득이다. 나는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었다(몸에 밴 짠순이 기질을 어쩔겨!). 써놓고 보니 기준이 꽤 까다롭다. 이미 가지고 있는 옷들을 정확히 파악해야 가능한 일이다. 목록을 적어보면 어떨까. 사계절을 넘어서는 ‘세세한 계절별’로 옷의 종류와 개수를 기록해 놓으면 훨씬 정리와 쇼핑이 수월해지겠다.
치우고 싶은 옷들을 골라내기. 어떤 것들을 버릴까 말까 고민하기. 새로 살 옷의 기준을 정하기. 가지고 있는 옷의 목록을 적어놓기. 어라, 이건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들여다보는, 자신과 대화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감자 두어 알만 캐려다가 덩이 째 한 소쿠리 담은 격이다. 버려야 채워진다는 말이 실감 났다. 이렇게 튼실한 감자라면 배 뚜드리며 먹어야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