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으로 이사 온 지 4년이 되었다. 무엇보다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1분 거리에 도서관, 2분 거리에 마을버스 종점이, 10분만 걸으면 등산로 입구. 집 뒤로는 야산이라 공기 좋고 왼쪽과 앞쪽 또한 가리는 것 없이 트였다. 도로에서 한 골목 들어와 차 소리가 안 들려 조용하다. 소음에 약한 나로서는 최적의 조건이다. 숲세권 더하기 도(서관)세권이라고 할까.
완벽한 것 같은 우리 집에도 단점이 있으니, 바로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20평대 중반의 빌라. 이사할 때도 그 점 때문에 많이 망설였다. 좁아서 두고두고 불편할 텐데. 안방을 제외한 두 개의 방은 들어가 있으면 답답증이 일 정도다. 부엌에 식탁 놓을 데가 없어 거실에 두었더니 책상과 함께 공간이 꽉 찬다.
당연히 거실 베란다는 없고 작은 방에 딸린 조그만 베란다가 하나 있을 뿐이다. 부엌 구석에 달린 다용도실(겸 보일러실)은 세탁기만 들였는데도 옴짝달싹할 틈이 없다. 빌라를 지을 때도 좁은 걸 염두에 두었는지 집집마다 지하에 창고를 하나씩 배정했다.
가장 아쉬운 것이 베란다, 즉 세탁실로 사용할 공간이다. 세탁기와 건조기, 펼치는 빨래건조대까지 한꺼번에 설치할 수 있는, 볕 잘 드는 베란다를 나는 소망하다 못해 열망한다. 세탁과 관계된 모든 일을 한 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빨래통을 들고 구석진 다용도실로 갔다가 다시 거실 창가로 걸어가 너는 일, 매번 집안을 종단해야 하는 일에서 해방되고 싶다. 큰 방보다 외려 넓은 베란다가 소원이다. 내가 혹시 집을 짓는다면 반드시 베란다와 다용도실에 투자하겠다.
며칠 전까지 단 하나뿐인 베란다는 각종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옷상자들, 가방들, 여분의 김치통들, 남편의 홈트 기구들로 바닥을 밟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창고라고 다를까. 이사하는 날부터 대충 구겨 넣은 잡동사니들이 창고를 가득 메웠다. 나중에 다시 정리하자고 했건만, 지금까지 4년 동안 손을 대지 않았다.
아마 나 혼자 가능한 일이었다면 진즉에 치웠을 것이다. 창고를 손대려면 앵글 선반부터 주문하고 짜야한다. 무거운 물건들도 옮겨야 한다. 그건 남편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창고란 원래 지저분하고 쌓여있는 게 정상이라는 궤변론자. 어차피 평소에 안 들여다보니 상관없단다. 할 말이 없다.
선반을 짜서 정리한 창고, 지나다닐 복도가 생겼다
가득찬 바닥이 깨끗해진 베란다 왼쪽과 오른쪽
그런 남편을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게 만든 자가 아들이다. 작년 12월, 아들이 군에서 전역하고 돌아왔다. 아들은 대학부터 군대까지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 이참에 방치되어 있던 자기 짐을 정리해야 했다. 드디어 베란다와 창고를 뒤엎을 순간이 온 것이다. 아들은 창고 치수를 재어 앵글을 주문했다. 아빠와 함께 둘이서 이틀에 걸쳐 버릴 건 버리고 보관할 것을 남겼다. 튼튼하게 설치한 앵글 선반에 남은 짐을 올려놓았다. 웬일로 남편은 베란다 바닥에 생긴 곰팡이까지 군말 없이 닦았다. 아들과 같이 하니 귀차니즘 따위는 날아간 모양이다. 휴, 4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갔다.
이 작업에서 나는 완전히 발을 빼고 지켜만 보았다. 두 남자로도 충분했다, 충분해야 하고말고. 내가 가만히 앉아있는데 집이 정리되기는 평생 처음이다. 살다가 이런 날도 있어야지(아, 버려야 할 물건에 폐기물 스티커 붙이는 건 내가 했다). 이제야 진정으로 이사가 마무리된 느낌이다. 4년에 걸친 집 정리 끝. 의도치 않게 두 남자가 나의 미니멀 라이프에 말려들었다. 흐흐흐.
아들은 나를 닮았다. 라이프스타일도 비슷해서 물건을 함부로 사들이지 않는다. 남편은 정반대로 전형적인 맥시멀리스트. 일단 뭔가를 많이 산다. 많이 들고 온다. 많이 늘어놓는다. 정리는 안 한다. 온통 옷과 물건이 뒤죽박죽 널려있는 방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솟았다. 예전엔 ‘왜?’라며 화를 냈다. 지금은 (거의) 내려놓았다. 맥시멀이 좋다는데 미니멀을 강요할 수는 없잖은가. 서로가 달라 아쉽지만, 그에게도 나의 방식이 맞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므로. 이번처럼 소 뒷걸음에 쥐 잡듯이 어쩌다 따라와 주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