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에스프레소 같은 유방암 9년 차의 맛

알싸하고 새콤한

by 소율


10시 14분. 내 진료시간이다. 평소처럼 우면산 터널을 지나 서울성모병원에 도착했다. 35분이 걸렸다. 주차하고 유방암센터에 올라가니 시간이 딱 맞았다. 벽에 걸린 모니터에는 내 앞으로 다섯 명의 이름이 떠있다. 조금 기다려야겠다. 저 중에는 막 유방암 진단을 받고 덜덜 떠는 사람도 있을 테고 한창 항암 중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괜찮을 거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따뜻하게 손 한 번씩 잡아 주고 싶다.


유방암센터는 새롭게 단장을 했다. 위치도 옮겼고 내부는 카페처럼 넓고 밝게 꾸며놓았다. 암센터의 우울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상큼하게 바꾸려는 배려심일까. 노력은 인정! 훨씬 낫다.


어쩐 일인지 늘 북적대던 예전과 달리 한가하다. 그런데도 내 차례가 오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유방암 9년 차. 세월을 먹고 환자 노릇도 익숙해졌달까. 나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지난주에 종합검사를 했고 오늘은 결과를 듣는 날이다. 수술 5년이 지난 후부터는 1년에 한 번씩 검사를 한다.


드디어 내 차례. 젊은 여자 의사는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고백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불친절하고 권위적인 내 담당의가 정년퇴직을 한 뒤로 나는 일반의에게 진료를 받는다. 그녀는 몇 년 전 내가 심한 부작용 때문에 타목시펜(항호르몬제)을 끊겠다고 했을 때 유일하게 의견을 존중해 준 의사였다. 그녀는 시원하고 솔직하고 털털하다. 살짝 귀엽기도 하다. “결정은 환자의 몫이죠.” 아직도 36.5도의 온기를 지닌 그 말을 기억한다.


예상대로 9년 차도 무사통과. 여전히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았다. 지난 1년 동안 매일 만 보를 걷고 체중을 6킬로그램이나 줄였는데 소용이 없다. 불면증 역시 불알친구 마냥 옆구리에 딱 붙어있다. 재발이나 전이에 비하면 불면증이니 콜레스테롤이니 하는 것들은 견딜 만하다. 나는 이쯤에서 충분히 감사했다. 두 가지는 그냥 약을 먹으면 해결된다. 평생 먹어야 한다는 게 조금 걸리지만 뭐 어쩌겠나. 다시 암 환자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 이번 생 후반전의 행운은 이미 몰빵 아닐까.


가족 단톡 방에 '9년 차 종검 이상 무!'라고 올리고 나서 내년도 검사를 예약하고 수납을 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아직 11시 반인데? 병원 지하 식당에서 밥을 먹을까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병원에서는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늘 그랬다. 그건 뭔가 반칙 같았다. 밥은 정식 식당에서! 나는 차를 빼서 우리 동네로 달렸다. 이마트에 주차를 하고 같은 건물 6층에 있는 돈가스 집으로 들어갔다. 뜨끈한 돈가스 김치 나베를 시켰다.



밥 한 공기와 김치 나베를 깨끗이 비웠다. 나에겐 양이 많았다. 과식인 줄 알면서도 열심히 먹었다. 9년 동안 무사했다는 안심과 함께 묘한 피로감에 젖었다. 9년이 참 고단했다. 그렇다고 마냥 나쁘지만도 않았다. 포만감으로 양가감정을 달래고 싶었을까. 마지막 한 숟갈을 입에 넣고 나는 일어났다. 커피를 마셔야지. 배가 터질 듯이 부르니 쨍한 에스프레소를 땡겨야겠다.


앙증맞은 잔에 담긴 커피는 진하고 알싸하고 새콤했다. 이 순간 내 인생 같은 맛이로구나. 붓다의 말씀처럼 인생이란 자고로 고통의 바다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돌아보면 역시 기쁨보다 고통이 많긴 했다. 하지만 기쁨이 작고 가벼웠다고는 못하겠다. 무엇이 더 중한지 신의 저울에 달면 나올까. 분명한 건 기쁨도 고통도 삶의 귀한 재료라는 점이다. 고통의 이면엔 기쁨이 숨어있기도 하고 기쁨의 그림자로 고통이 자리하기도 한다. 단정 지어 결론 낼 수 없는 것이 사는 일이다. 오십이 넘었지만 생이란 여전히 수수께끼다. 아마 죽는 날까지 그럴 듯.


기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고 하기 싫은 일은 가끔만 하고 에스프레소의 맛을 볼 수 있으면, 그러면 아마 괜찮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브런치 북을 매거진으로 복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