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딱세줄 11화

오늘 오후 3시에 본 풍경~'아무튼'으로 끝나는 글

<딱세줄 7기> 11일 차~21일 차

by 소율


강소율여행연구소 대표,

여행작가 소율입니다.


아래는 <딱세줄 7기> 여러분과 함께 쓰는

짧은 글입니다.


저는 기존 회원 소재로 글을 씁니다.




<11일 차 소재>

신입회원: '배가 고프다'에 이어 쓰기

기존 회원: 오늘 오후 3시에 본 풍경


밥상을 보고 있다. 정확히는 식탁 위의 쟁반이다. 익은 당근, 브로콜리, 표고버섯, 계란 프라이가 한데 모여있는 접시와 더덕무침이 들은 반찬통, 밥 반 공기가 네모난 쟁반에 담겨 있다. 점심이 늦었다. 쟁반째로 놓고 먹는다. 혼자 먹는 끼니는 익숙하지만 반갑지는 않다. 요즘 사람들을 잘 만나지 못하니 매일이 혼밥이다. 남편과 아들도 툭하면 외박이라 얼굴 보기 힘들다. 안 그래도 혼자 일하는데 이래저래 혼자의 시간이 너무 많다. 이건 좀 심하다.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타인과의 만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밥을 먹는다. 물론 일대일이나 소규모로 말이다. 궁리를 하며 먹어도 밥은 맛있네.


<12일 차 소재>

신입회원: 사진 한 장을 보며

기존 회원: 잃어버린 물건


두 개의 교차되는 기억이 있다.

기억 하나.

몇 달 전 방바닥에서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 모양 금속 장식 하나를 발견했다. 분명히 본 듯한데 어디서 본 건지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장식의 일부분인가? 에라 버릴까 하다가 혹시 몰라 안방 탁자 위 선반에 고이 올려두었다. 그리고 올려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른 기억 하나.

몇 주 전에 귀걸이의 달랑거리는 꽃 모양 장식 하나가 없어진 걸 발견했다. 각기 두 개씩 달려있는데 귀걸이 중 하나에 한 개만 붙어있었다. 이게 워낙 작아서 자다가 빠진 것 같았다. 18K, 명색이 금붙이. 아깝고 아쉬워서 열심히 찾았다. 문득 몇 달 전에 발견한 그것이 바로 이것임을 깨달았다! 그때 이걸 잘 두긴 했는데 어디였더라? 어디였더라?? 옷장 서랍, 액세서리 상자,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울면서 포기.

며칠 전. 안방의 공간 배치를 다시 했다. 침대와 작은 책꽂이 위치를 바꾸고 테이블과 선반도 비우고 치웠다. 원목 선반 위를 닦을 때 반짝거리는 게 툭 떨어졌다. 오오 잃어버린 귀걸이 장식이었다! 비슷한 노란색이어서 코앞에 두고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돌아 돌아 잃어버린 조각도 찾았고 두 개의 기억도 완성되었다. 내 귀에는 지금 격동(?)의 귀걸이가 달랑달랑 붙어있다.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더니 찾을 물건도 결국 찾게 된다는 심오한 의미일까? 크크크.


<13일 차 소재>

신입회원: 나의 잠버릇

기존 회원: 엄지손톱 묘사하기


손톱을 잘 기르지 않는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길러서 매니큐어를 바르기도 하지만 평소엔 짧게 깎는다. 지금 나의 손톱은 자른 지 며칠 지나 길이가 적당하다. 손이 작으니 손가락도 작고 더불어 엄지손톱도 작을 수밖에. 하얀 초승달이 들어있는 동그란 손톱. 손톱들이 짜리 몽땅해서 초승달이 선명한 건 엄지뿐이다. 엄지손톱을 문지르면 토돌 토돌 한 세로줄이 가득하다. 이러면 건강이 안 좋은 신호라는 속설이 있던데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른쪽 엄지손톱이 왼쪽보다 약간 크다. 인간의 몸은 대칭형이지만 모두 짝짝이다, 완벽한 대칭을 가진 사람은 없다. 결국 완벽이란 불가능하므로 누군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완벽을 요구하지 말라는 상징일까. 아님 비록 완벽에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상징일까. 꿈보다 해몽이다. 자신에게 맞는 해석을 찾으면 될 일.


<14일 차 소재>

신입회원: 섭섭했던 날의 기억

기존 회원: 나의 나쁜 버릇


밖에서 예상치 못한 부당함을 만났을 때 항의하지 못한다. 타고난 성정이 순한 탓인지 둔한 탓인지 앞에서 대놓고 싫다고도 못한다. 그러곤 집에 돌아와 이랬어야 했는데 저랬어야 했는데 곱씹는다. 식구들에게는 바른 소리를 잘해서 어릴 때 엄마가 야단치곤 했다. 너 어디 가서 그러다간 욕먹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엄마가 딸을 잘못 보셨어요. 저 찻잔 속 태풍이에요. '모난 돌'씩이나 되기엔 간이 작아요. 뒷일을 너무 재다가 타이밍을 놓친다. 그러다 억울함이 쌓여 병이 되기도 했다. 이제 성인인 아들은 나의 그런 버릇을 종종 꼬집는다. 엄마, 그럴 땐 강하게 한마디 했어야지,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가만있으면 안 되지. 나도 아는데 그게 참 어렵구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부드러움은 쓸모없는 짓이 아닐까.


<15일 차 소재>

신입회원: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기존 회원: 이번 주에 행복했던 순간


작년에 사무실 문을 닫은 이후에 거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것이 올해 들어 시작된 무기력감의 원인인 것 같았다. 사람들과 직접 마주 보고 나누는 대화가 너무 부족했다. 안 되겠다 싶어 일대일 약속을 만들었다.

이번 주에 자그마치 3개. 누군가를 만나기 시작하자 물꼬 트이듯 연락이 자꾸 온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산 아래 오솔길을 걸었다. 갑자기 초여름 같은 더위에 땀을 흘리며 모르는 길을 찾느라 헤매고. 그런데 재미있다, 그 순간이 행복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행복이 피어난다. 나란 인간은 조금 까다로운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과 자주 만나면 진이 빠지고 힘든데 또 너무 안 만나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맞는 적정한 선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선을 넘어도 선에 못 미쳐도 행복이 달아난다. 넋 놓지 말고 세심하게 '소율표 행복'을 관리해야겠음.


<16일 차 소재>

신입회원: 식물과 소통이 가능해진다면?

기존 회원: 몸에서 새 걸로 바꾸고 싶은 부분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구먼. 가장 시급한 건 뇌의 호르몬 지도를 바꾸는 일이다. 유방암 치료 이후로 호르몬 균형이 깨져버려 불면증이 심각하다. 약 없이도 잘 수 있는 세상을 맞는다면 새로 태어난 기분일 것 같다. 두 번째로는 튼튼한 치아와 잇몸일세. 그동안 브릿지에 임플란트에 신경치료에 온갖 공사하느라 힘들었는데 갈수록 늘 것 같다. 튼튼한 치아로 죽을 때까지 공사 없이 살았으면. 또한 신선한 윗 공기 좀 마시고 살게 짧고 굵은 다리가 길어졌으면. 비행기 선반에 캐리어도 거뜬히 올리고 붐비는 전철에서 남들 등짝을 안 봐도 되는 세상은 어떨까? 꿀맛이겠지? 코가 낮아 안경이 흘러내리는데 큰 거 안 바란다, 그저 안경이 고정될 만큼만 콧대가 솟았으면. 머리통 뼈가 납작한 네모꼴이라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리면 기름 바른 것처럼 주르르 덜렁덜렁, 촌스럽게. 남들처럼 선글라스를 머리 꼭대기에 척 고정시켜 걸어 다니고 싶다. 그러려면 동글동글한 두상 추가요. 아, 출산 이후로 너무 겸손해져 땅만 보는 가슴도 있네. 조금은 턱 치켜들고 자존심을 되찾았으면. 그밖에...... 음, 더 이상 쓰다간 "아예 몸 전체를 바꾸지 그래? 사이보그처럼!"이라고 욕먹을 듯. 머리만 굴리고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내 인생의 성적표거늘 누굴 탓하랴. 이만큼도 견뎌온 내 몸에게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충성으로 받들어 모셔야지. 고생했다, 애썼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잘 버티어보자꾸나.


<17일 차 소재>

신입회원: 내가 좋아하는 순간 세 가지

기존 회원: 낮 12시에 내가 한 일


특별한 시간 4월 26일 12시. 바로 우리 빌라의 반상회가 열린다네. 가장 중요한 의결 사항은 5월부터 1년 동안 봉사할 새 반장을 뽑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일이 많고 힘들기에 이번부터 두 사람이 공동으로 나누어하기로 했다. 기존 반장님이 완벽하게 일을 하셔서 다들 부담 백배. 우리의 반장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빌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처리하고 관리하는데 거의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셨다. 아마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런 분은 없을 거라는 데 오백 원 걸 수 있다. 헌신적인 열의와 수고에 가슴 깊이 감사를 드린다. 아무튼, 총 열 두 가구 중 이미 반장을 했던 가구와 세입자 가구를 빼면 다섯 가구가 남는다. 그중 두 집이 반장을 해야 한다. 거의 50% 확률. 두둥! 공평한 사다리 타기 시작! 희한하게도 반장 두 명 모두 반상회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당첨되었다. 모인 사람들 얼굴엔 안심이 가득. 흐흐흐. 건물 두 개, 열 두 집이 모여 사는 작은 공간인데도 일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4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반상회라는 게 어색하고 내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반상회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막상 나가 보니 몰랐던 여러 가지 정보를 들을 수 있고 이웃들 얼굴도 익히고 도움이 되더라. 일 년 동안 고생하실 새 반장님들께 전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18일 차 소재>

신입회원: 기억에 남는 영화의 한 장면

기존 회원: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말하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나는 전 반장님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있었다. 반상회 날 당첨된 두 분의 반장님 중 한 명을 내가 대신하기로 했다. 반장 1은 전체 빌라와 관리비 관리, 반장 2는 원룸과 기타 관리를 맡는다. 50%의 확률을 이기고 당첨을 벗어난 내가 스스로 나서다니! 단 하루만의 변심이었다. 그 사연은 나중에 자세히 풀어보겠다. 존경하는 전 반장님께 반장 2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브리핑을 받기 전, 인사부터 드렸다.

"반장님, 전부터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그동안 정말 정말 감사했어요! 어찌나 일처리가 빈틈없는지 저희 가족은 늘 감탄했어요. 어떻게 모든 일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시고 척척 해결하세요? 저 같으면 몰라서라도 못 할 일이 많았는데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아부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깐깐한 그녀의 얼굴이 마스크 안에서 사르르 풀어졌다. 볼 때마다 엄격, 엄정, 원리, 원칙 같은 글자를 잔뜩 써놓은 듯한 모습이었는데 웃으면 저런 표정이 되는구나. 이쁘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어. 그동안 너무 열심히 반장일 하느라 고운 얼굴을 감추고 있었네. 미안하고 고마워요!


<19일 차 소재>

신입회원: 내가 주었던 선물

기존 회원: 안 해 본 일 하나 하기


서울대공원에 '호숫가 전망 좋은 길'이라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호수 옆 오솔길이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아래 테이블이 달린 벤치가 대여섯 개 놓여 있는데 그야말로 낭만이 넘친다. 2019년에 우리 '여토여토' 팀이 TBS 방송 촬영을 했던 바로 그곳이다. 거기에서 친구와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나의 로망이었다. 매일 가는 대공원인데 무에 어렵다고 로망씩이나?? 그러나 현실은 이렇다. 보통 1시간쯤 걷고 나서 들리는데, 물만 들고 가거나 빈자리가 없거나 너무 춥거나 엄청 덥거나 앉아있을 여유가 없거나 혹은 혼자이거나.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보온병에 담았다. 종이컵은 싫어서 스텐 컵 두 개 챙기고 리넨 테이블보까지 배낭에 넣었다. 준비 완료, 약속 시간은 8시 40분. 친구와 둘이서 동물원 둘레길을 걷고 내려와 벤치를 차지했다, 드디어! 이게 뭐라고 그리 힘들어. 물휴지로 테이블을 닦고 테이블보를 펼쳐 깐 뒤 커피를 따르니 완벽하다!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저 평범한 얘기, 사는 얘기를. 꿈꾸었던 그 순간이다.


<20일 차 소재>

신입회원: 후회하는 일

기존 회원: 남들에겐 어려운데 나에겐 만만한 것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여행'이다. 특히 혼자 하는 해외여행. 아들과 함께 첫 배낭여행을 시도할 때부터 어쩐지 내게는 여행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어서라고도 하지만, 떠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상황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고. 아무튼 내겐 여행이 비교적 만만하다. 가끔 누군가와 함께 가면 재밌기도 한데 단점이 더 크게 느껴진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드는 생각.

'역시 다음엔 혼자 와야겠어.'

누구를 배려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여행이 가장 만족스럽다. 물론 외롭고 힘든 순간이 많지만 언제나 '자유로움' 쪽으로 저울이 기운다. 여러 나라에서 백신이 대중화되니 벌써 해외여행이 가능할까 어쩔까 하는 말들이 새어 나온다. 아직은 멀었다고 본다. 언제가 되든 나는 차분히 기다리련다. '적절한 때'란 종주먹을 들이댄다고 억지로 오는 것이 아니니까. 때가 되면 어련히 때가 오겠지. 때와 때 사이도 엄연히 소중한 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가능하면 명랑하게, 가끔은 우울할지라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을 자알 살아야겠다.


<21일 차 소재>

신입회원: '어쩌면'으로 시작하는 글

기존 회원: '아무튼'으로 끝나는 글


격일로 집에 들어오는 직장인 아들. 가족끼리 비 대면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네. 계약직 직원이 뭔 할 일이 그리 많은지. 집이 아무리 멀다지만 야근하면 가까운 여친 집으로 귀가한다. 워낙 열아홉 때부터 나가 살아 그런가 지나치게 자유롭다. 이미 성인인데 자꾸 싫은 소리를 할 수도 없고 에효. 아무튼 들어와서 얼굴만 보여줘도 내 기분이 얼음 녹듯 풀어지니 이것은 영원한 내리사랑인가. 저도 미안한지 이번 일요일에 스페인 식당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암만, 일요일만이라도 온 가족이 모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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