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삶을 위한 쇼트커트

나름 소원 성취!

by 소율


머리를 잘랐다. 오래전부터 뒤통수가 시원한 쇼트커트를 치고 싶었는데 드디어! 까짓 커트가 뭔 대수냐고 하겠지만 이것도 나름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턱이 있는 편이다. 도드라진 사각턱까지는 아니더라도 흔히 미인형이라 일컫는 계란형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머리카락을 묶으면 각진 턱이 강조되어 아들은 일부러 "엄마는 네모야~"라며 놀리곤 했다. 특히 살이 찌면 얼굴이 진정한 네모로 업그레이드된다.


한때는 긴 머리가 로망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오 남매의 넷째로 태어난 죄로 어릴 때부터 짤막한 바가지 머리가 전공이었으니까. 울 엄마는 결코 가운데 끼인 둘째 딸의 머리를 길러주지 않았다. 20대 중반 드디어 내 맘대로 어깨너머까지 머리를 길러 보았다. 스물여덟, 결혼을 하자마자 임신을 했는데 머리카락이 어찌나 빠지던지 바로 단발로 갈아탔다. 이후로 쭉 단발로 살다가 나이 오십에 머리를 길렀다. 20대처럼 어깨를 넘어가는 길이로. 그때 어렴풋이 짐작했다, 이게 마지막 긴 머리일 거라고. 역시나. 2년쯤 해보니 세상 귀찮았다. 미역처럼 긴 머리를 감고 말리고 또 헤나 염색을 하고, 하이고야. 다시 단발로 원위치.


쇼트커트를 소망하게 된 건 단발조차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샤워 후 간단하게 끝내는 머리 관리. 말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수건으로 탈탈 털어놓으면 끝나는, 아 꿈의 헤어스타일. 그러나 얼굴은 더욱 네모가 될 테고 단발보다 더욱 못생겨질 테고. 해결책은 엉뚱한 데서 튀어나왔다. 바로 느닷없는 코로나 시대. 연구소의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가장 만만한 걷기로. 처음엔 만 보를 걷다가 만 오천 보를 걸었고 나중엔 온라인 걷기 모임 '만보클럽'을 만들었다. 열심히 걸은 지 벌써 1년 5개월째, 만보클럽은 이번 달이 10개월째. 기왕 하는 운동인데 내친김에 체중감량을 결심했다. 몇 년 동안 야금야금 늘었던 6kg을 떼어내기로 말이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매일 걸었더니 1년 후 정말로 6kg이 떨어져 나갔다. 오예!


살이 빠져서 각진 턱이 조금 깎인 것 같았다? 눌러놓았던 쇼트커트를 향한 욕망이 라면 냄비 속 뜨거운 김처럼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선뜻 실행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여름이 왔다. 서프리카라는 악명을 얻은 한국의 여름, 그것의 한 복판에 들어서기 직전 습한 장마철이 나를 떠밀었다. 서프리카에 데이지 말고 시원하게 자르자. 네모가 되건 말건 해보고 싶은 건 해보고 죽자. 쓸데없이 비장한 마음으로 미용실에 갔다. 가기 전 '여자 쇼트커트 헤어스타일'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았다. 무슨무슨 연예인 커트 등이 이어졌다. 쉰넷에 무슨 연예인 헤어 스타일이야, 하면서도 김채원 컷이 마음에 들었다. 그게 과연 가당키나 할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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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디자이너는 어떤 스타일을 원하냐고 물었다. '어머나, 원한다고 다 되는 거였나요?' 나는 그녀에게 질문을 돌려주었다. "어떤 게 어울릴까요? 참고할 스타일을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태블릿 화면에 여러 가지 커트 머리를 띄웠다. 쇼트커트는 다 거기서 거긴데 옆머리를 아예 짧게 치느냐 아니면 귀 뒤로 넘어가게 치느냐의 차이란다. 이런저런 의논 끝에 후자로 결정. 수석 디자이너라는 명패를 가진 그이는 의외로 무척 조심스럽게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결과물에 디자이너도 손님도 놀랐다. 웬일이야,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잘 어울려! 나보다 그녀가 더 뿌듯한 얼굴이었다. 흐흐흐, 내심 걱정스러웠나 보다. 소망대로 샴푸하고 말리는 데에 드는 시간은 십 분의 일로 줄었다. 오예!


어떻게 쇼트커트를 하게 되었는지 별 것도 아닌 사연을 구절구절 적었지만, 나를 그렇게 만든 건 아마 '단순한 삶' 쪽으로 가까워지고 싶은 내면의 욕구였을 테다. 물론 치렁치렁 긴 머리를 유지한다고 해서 단순한 삶에서 벗어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짧은 머리가 단순함을 의미했다. 불필요한 치장에 쓰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 못해 지겨울 정도였다. 쉽고 간단한 방식으로 일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그런 의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또 하나 찾아낸 것이다.


올해 빼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신기한 현상이 이어진다. 한 걸음을 디디면 자연스레 다음 발이 나가는 것처럼 서로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것들이 생겼다. 코로나로 인해 걷기 운동을 시작했고, 만보 걷기를 했는데 체중이 감량되고, 얼굴 살이 빠지니 쇼트커트를 감행하고...... 다음엔 무엇이 나를 또 놀랍고도 기쁘게 만들까? 이야, 진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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