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정말 옷을 하나도 안 샀을까?

<1년 동안 옷 안 사기 프로젝트> 중간 점검

by 소율


6월이 지나 7월. 1년 동안 옷을 안 사기로 결심한 이후로 6개월이 흘렀다. 그렇다, 중간 점검의 시기가 된 것이다. 지난 12월에서 2월까지 총 90벌이 넘는 옷을 치우거나 버렸으며, 그 뒤로도 짬짬이 몇 개의 옷이 더 헌옷 수거함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동안 정말 단 한 장의 옷도 사지 않았을까? 글쎄. 일단 속옷과 양말을 여러 장 샀다. 하지만 '옷 쇼핑'에서 이건 열외로 치기로 했다. 오래되어 늘어진 속옷과 구멍 난 양말을 버리고 갈아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룰 수도 없었고 안 살 수도 없었던 상황이다. 내가 지양하고자 했던 '일반적인(=불필요한) 쇼핑'과는 성격이 달랐으니까.


정확한 확인을 위해 먼저 옷장을 열어 보았다. 새로 산 게 뭐가 있나? 일명 냉장고 재질의 여름 파자마 바지와 발목에 고무줄이 달린 운동 바지, 그리고 검정 레이스로 만들어진 여름 카디건이 걸려 있다. 그러니까 6개월 동안 총 세 개의 옷을 샀다는 결론. <1년 동안 옷을 안 사기 프로젝트>에서 벌써 벗어나 버렸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실은 파자마 바지도 꼭 필요했다. 장마철이 되기 직전까지 입을 초여름용 잠옷이었거든. 지금은 이미 습하고 더운 장마철이 되었기에 더 짧은 5부 파자마를 입는다. 운동복 바지는 레깅스 대용으로 사용했다. 레깅스가 참 편하긴 한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면이 있었다. 50대 중반 아줌마가 레깅스를 입으려면 엉덩이를 가리는 긴 웃옷은 필수. 그런 티셔츠는 한 개뿐이라 불편하던 차에 저 바지를 사고 말았다. 아무 티셔츠나 입어도 되니 이렇게 편할 수가. 레깅스보다 얇고 시원한 데다 엉덩이 부담이 없어 아주 잘 샀다고 자평한다. 두 개의 바지 역시 '일반적인(=불필요한) 쇼핑'과 거리가 멀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마지막 레이스 카디건이 문제의 충동구매 품목이다. 아웃렛에서 운동 바지를 골랐더니 매장 주인은 그에 어울리는 검은색 티셔츠를 권했다. 세트로 입으면 세련될 거라고 꼬시는데 아휴, 간신히 참았다. 집의 내 옷장에는 이미 티셔츠가 여러 개 있었으므로. 유혹에 굴하지 않고 돌아가는 길,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무엇인가 눈길을 끌었다. 괜찮아 보이는 카디건이 겨우 19,000원?! 레이스도 탄탄하고 디자인도 맘에 들고 결정적으로 가격에 넘어갔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가성비에 침을 흘리는 이 몹쓸 습관이여. 다리는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고개는 옷걸이 쪽으로 향하는 불균형이라니. 결국 다리가 졌다. 겉으론 삐진 척 하지만 속으론 짝꿍을 좋아하는 초딩 여자아이처럼 두 다리가 슬며시 돌아섰다.


한 번 걸쳐나 볼까. 일단 손을 대면 게임 끝인 걸 알면서. 나는 못 이기는 척 입어 보았다. 품이 낙낙하니 활용도가 높겠는 걸? 에어컨 바람이 센 곳에서 입으면 딱 좋겠다. 그러나 집에 있는 인디언 핑크색 카디건이 떠올랐다. 굳이 검정 카디건을 사지 않아도 그걸 입으면 된다. 아 살까 말까. 나의 두뇌는 합리화를 위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건 너무 오래됐잖아, 게다가 타이트해서 루주 핏 티셔츠에는 못 입는다고. 저건 어떤 반팔 위에 입어도 커버가 가능하잖아? 무난한 검은색이라 분홍색 카디건보다는 훨씬 유용할 거야. 매장 주인의 유혹은 물리쳤으나 스스로의 유혹엔 맥없이 넘어가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런데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장마철인 요즘, 비 오고 바람 부는 거리에서 혹은 카페의 에어컨 앞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단순히 충동질에 휩쓸린 줄 알았는데 실제로 쓸모가 많았다. 어머낫, 사길 잘했네?!


아무튼 6개월 동안 총 3개의 옷을 샀지만 모두 적절한 쇼핑이었다. <1년 동안 옷 안 사기 프로젝트>의 목적은 무분별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것이지, 무조건적인 쇼핑 반대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반년 간의 실험은 성공이었다.


이 옷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아예 쇼핑 의지를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생기는 결과. 옷을 사러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낭비하는 시간 자체가 사라졌다. 쇼핑하느라 콜라 김 빠지듯 술술 빠져나가는 에너지 또한 없으니 일상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삶을 유지하는 필수 목록이라 여겼던 것이 실제로는 별 것 아니라는 걸 체험할 수 있었다. 숙제 하나가 저절로 해결된 느낌이랄까. 욕심을 비워내니 이전보다 마음이 한결 평화로웠다. 절제하는 게 무척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할 만했다. 오히려 얻은 게 많아서 작은 부자가 된 느낌? 그런데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면 꼭 필요한 옷을 사는 것도 왠지 귀찮아졌다는 것? 쇼핑 자체와 거리가 아주 멀어졌다. 이거 괜찮은 현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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