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분이 오셨다

그분과의 싸움

by 소율

<2012년 3월 19일>


내일은 3차 항암 날.

며칠 전부터 슬슬 그 분이 오시는 거 같았다.

뭔가 알 수 없는 불쾌한 기분. 짜증.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


항암 두 번을 하는 6주 동안 잘 지냈는데 이건 처음 맞는 감정이다.

이것의 정체는? 우울증. 까지는 아니고 우울감. 이라고 해야겠지.


지난 2주간 집 밖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아무래도 이게 원인인 듯싶다. 아니다. 단순히 집안에 갇혀서인지. 나날이 늘어가는 체중 때문인지. 몸에 쌓이는 항암제 때문인지. 모두 다인지도 모르겠다.


체중은,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구토를 안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고마웠으니까. 항암을 무사히 마치려면 무조건 잘 먹어야 하니까. 그래서 고맙게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그 결과 날이 갈수록 체중이 쑥쑥 늘었다. 지금은 체중계가 무섭다. 샤워할 때 보는 내 몸에는 허리가 별로 없다. 보름달 같은 얼굴은, 부어있기도 했지만, 살이 쪄서인 것도 같다. 나중에 이 살 다 빼려면 그것도 보통 일이 아닌겨. 구토로 못 먹는 사람에 비하면 배부른 투정이겠지만, 어쨌거나 늘어난 몸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특히 유방암 환자는 살찌면 안 된다. 재발 위험이 늘기 때문이다. 항암이 끝나면 반드시 빼줘야 한다.


몸에 쌓이는 항암제. 일설에 의하면 항암 한 번 할 때마다 10%의 항암제가 몸에 쌓인다나? 항암제가 들어간 몸이 회복하기까지 1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항암제의 부작용은 참 많지만, 가장 무서운 건 우울증이다. 치료 중에도 그렇지만 치료가 다 끝난 뒤에도 우울증은 종종 찾아온단다. 워낙 발병 부위가 여성성의 상징인 유방이 아니던가. 수술, 항암과 방사선 치료 뒤에 먹는 호르몬 억제제 역시 우울증을 유발한다. 내내 웃으며 잘 지낸 내게도 항암제가 슬슬 쌓였는지도 모르겠다.


2차 항암 하고 첫 주는 대공원 산책도 하면서 조금씩 바람을 쐬었다. 이 바람이 문제였는지 어쨌거나 주말쯤부터 목이 아파왔다. 두 번째 주 화요일, 백혈구 수치 재느라 병원 가는 길. 문 밖에 나서자마자 목이 심하게 아팠다. 그때부터 감기가 들어 세 번째 주까지 꼼짝을 못 했다.


결국 지난 토요일쯤에 무언가 가슴 속을 치고 나오는 격한 감정.


‘내일도 밖에 나가지 못 하면 미쳐버릴 것이야!’


나는 남편에게 거의 명령을 내렸다.


“내일은 어디든, 나를 데리고 나가!”


남편은 순순히 명령을 따랐다. 일요일에 우리 세 식구는 백운호수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엄마는 교회 가셨다가 수영장에 다녀오신단다. 다행이 감기는 거의 다 나았다. 백운호수 중간쯤에 차를 세우고 좀 걸었다. 예전에 아들이 다섯 살 때쯤, 마른 억새가 무성한 호숫가 아래로 내려가 놀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찍은 사진도 있다. 아이는 어렸고 우리도 훨씬 젊었지.

‘터사랑’이라는 이름부터 80년대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오뚜기 스프랑 똑같은 맛이 나는 스프가 나오는 80년대스러운 점심 스페셜을 먹었다. 이 집 주인은 분명 40대일 것이여. 이리도 80년대 정서를 잘 구현해 내다니! 디스코 음악만 나오면 딱 인데. 스타일이 후진 건지, 컨셉인지는 잘 모르겄다.


하여간 배부르게 먹고 예전처럼 물이 있는 아래로 내려갔다. 백운호수는, 고여 있는 호수가 대부분 그렇듯이, 물이 깨끗하지는 않다. 그래도 추억을 떠올리며 호숫가 모래길을 걸었다. 가다 보니 작은 소나무 언덕이 나왔다. 야산이었다. 그 둘레로 걷다보니 갑자기 가벼운 등산이 되어 버렸다. 도대체 어디가 끝이여! 할쯤에 호수 위로 올라가는 길을 발견했다. 뭐, 간만에 운동 한번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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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오늘, 기분이 좋아야 할 게 아니냐 말이다!

새벽 5시. 달그락 달그락 나는 소리. 일찍 나가는 사위와 손자를 먹이려고, 엄마가 밥하시는 중. 평소 같으면 미안하고 안쓰러웠을 그 소리에, 오늘은 짜증이 났다. 에구, 대충 하시지. 시끄럽네. 이게 웬 적반하장, 배은망덕이란 말인가?! 곧이어 옷이다, 양말이다, 가지러 드나드는 남편에게도 짜증이 났다. 아, 그 분은 일요일의 외출 한번으로 가실 분이 아니었던 게다. 식욕도 안 나고 내 얼굴은 무표정하다.


이래가지고서는 안 되겠다. 무슨 수를 내어야지. 내일이 항암 3차인데 이런 기분은 좋지 않다. 암, 좋지 않고말고. 즉석에서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다. 내일 병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르자. 유머에 관한 책들을 잔뜩 빌려야지. 부기가 가라앉는 목요일이나 금요일쯤에는 혼자라도 조조영화 한 편 봐야지. (원래 혼자서 조조영화 잘 본다) 요즘 계속 영화가 보고 싶었는데 갈 엄두를 못 냈다. 백혈구 떨어지는 두 번째 주가 되기 전에 얼른 영화관에 갔다 와야겠다.


두 번째 주는 ‘꼼짝 마 주간’이니까 패스. 세 번째 주에는 친구 좀 만나야겠다. 집으로 위문공연을 오라고 하던가. 첫 항암 하고 세 번째 주에 친구 만났다가, 그날 밤에 힘들어서 그 뒤로는 누굴 만날 생각을 안 했더랬다.

이 정도면 그 분이 가실까? 이번 3차 항암은 그 분과의 싸움이 될 거 같다.


“거 이 냥반, 고만 가시지 그랴?”

“아니, 좀 더 있어 볼라구. 헤헤”


뭐 요런 식이 되지 않을까?





* 이 매거진은 유방암을 겪으며 살아온 세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2011년 11월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이어진 치료과정에서 썼던 유방암 경험기이지요.

실제 이 글을 썼던 시기는 2012년 3월입니다.

간혹 현재 진행중인 이야기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