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친구의 모카신을 신고

손바느질에서 재봉틀로

by 소율

<2012년 7월 11일>



몇 주간 손바느질 놀이에 몰입했다.

모자 만들기에 이어 치마 리폼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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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 상가에서 눈에 띈 9900원짜리 원피스.

허접한 민소매 윗도리 부분은 댕강 잘라버리고 치마만 남겨서 고무줄 넣기.

몇 년 전 방콕 카오산에서 산 끈 묶는 치마, 옆선 꼬매고 고무줄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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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캉캉치마 길이가 어중간해서 덧단 대어 롱스커트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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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손바느질은 너무 힘들었다.

이거 놀이가 아니라 노동이 될라.

급기야 '재봉틀을 사버려?' 하는 욕심이 무럭무럭 솟았다.

봉틀이는 사용할 줄 모르는데 잘할 수 있을까?

일단 초보가 쓰기 쉬운 봉틀이 검색~

브라더 이노비스 시리즈가 딱 당겼다.


토요일 온 식구가 브라더 미싱 매장에 출동.

발판도 필요 없고 속도도 내 맘대로 조절되는 이노비스에 완전 반함.

그날 봉틀이를 사버렸던 것이다.


이젠 뭐 봉틀이가 다 한다.

얘가 참 신통하다.

재봉질 전혀 못 하는 나 같은 생초보도 즉석에서 쓱쓱 할 수 있게 해 준다.


남편 등산복 바지를 줄여 주었더니 신기해한다.

처음으로 수선집에 안 가고 집에서 바지를 줄여보았다.

어딘가 어색해서 안 입던 긴팔 남방도 리폼했다.

소매와 칼라를 떼어 민소매 남방으로 변신~




치맛단 늘려준 것도 다시 봉틀이로 튼튼하게 박아주었다.

그 치마에 어울리는 끈달이 티도 만들었다.ㅋㅋ

암홀 부분을 만들기 싫어서(어려울 거 같으니까) 그냥 사다리꼴 박스티로~나름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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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에 하얀색 조끼 입고 친구들 만나러 대치동까지 외출도 했다.

그날 친구들한테 칭찬 마~이 받았음.ㅎㅎ

누군가에게 요 티만 보여주었더니 가방인 줄 알았다고.

완전 굴욕이다.ㅋㅎㅎ

모자 만들고 남은 천이어서 옷 같지 않았나 보다.

칭찬과 굴욕을 왔다 갔다 하는 요상한 끈달이 티!


친구들 만날 때 선물로 주려고 만든 핸드폰 집.

사실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닌데 그냥 좀 쉬울 거 같아서 만들어 보았다.

역시 남은 천 이용, 난 너무 알뜰해~



솜씨가 영 허술하다.

(친구들아, 허접한 선물 기꺼이 받아줘서 고맙다.ㅠㅠ)

왕초보라 그런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남이 해놓은 거 보면 참 간단해 보였는데 내가 직접 해보니 그렇지도 않다.




'친구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지 않고는 그에 대해 판단하지 말라.'


라는 인디언 격언이 생각났다.

뭐든지 직접 해봐야 진실을 알 수 있다니까.


봉틀이와 놀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겨 몇 시간이 훌떡 가버린다.

이건 아마 내가 기본도 배우지 않고 막무가내로 해보는 중이라 더한 듯.

더운데 모자 쓰고 양재교실까지 다닐 에너지는 없으니.


등산하고 와서 종일 봉틀이와 씨름하니 꽤나 피곤했다.

이러다 재봉질마저 노동이 될라, 아서라.

이제는 하루 걸러 조금씩 하고 있다.

그냥 이렇게 내 맘대로 천천히 만들어 보는 중.




* 이 매거진은 유방암을 겪으며 살아온 세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2011년 11월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이어진 치료과정에서 썼던 유방암 경험 기이지요.

실제 이 글을 썼던 시기는 2012년입니다.

간혹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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