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만보

달콤 씁쓸한 PT의 추억

의지를 믿으세요???

by 소율


걷기만 하지 말고 근력운동을 겸해야 체력이 붙는다고 부르짖는 사람, 그는 남편이다. 운동의 정석이 아닌가. 유산소 운동 더하기 근력운동. 나라고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고요. 둘 다 할 여력이 없을 뿐이지. 그래도 가끔 굳은 결심을 하고 근력운동을 시도한다. 만만한 게 동네 헬스클럽. 시에서 위탁 운영을 하는 데라 회비가 저렴하고 집에서 도보로 5분 위치. (한 가지 조건만 제외하면)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그럼에도 몇 달 정기 상납을 하다가 스르르 꼬리를 감추곤 했지만. 일단 러닝머신에서 4km를 걷는다. 걷기는 워낙 익숙하니까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다음 각종 기구를 사용해 근육을 단련할 차례. 첫날 트레이너 선생님께 기구 사용법을 배웠으나 워낙 기계치인 지라 한 번 보고 기억할 리가. 제대로 사용하는 건지, 자세 역시 바른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기구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매번 물어보기도 민망하고 막상 트레이너는 왜 자리에 없는 건데? 나중에 들은 바로는 트레이너는 단 한 명이고 출근 시간이 오후란다(이것이 최악의 조건이었음을 나중에 깨닫는다). 나는 오전 회원님, 고로 트레이너 슨상님 얼굴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일 수밖에. 결정적으로 기구 운동은 끔찍하게 지루했다. 어느덧 근력 단련의 꿈은 아스라이 멀어지고 눈앞에 러닝머신만 남았다.


밖에서 바람 쐬며 걷는 즐거움을 아는 나에게 러닝머신 걷기는 얼마나 답답한지. 햄스터가 통 안에서 쳇바퀴 돌리는 느낌이랄까. 문득 내가 이러려고 헬스클럽에 왔나 싶어 짧은 회원님 생활은 끝. 그것이 몇 년에 한 번 헬스클럽에 갔다가 곧 포기하는 과정이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연예인들만 하는 줄 알았던 PT가 일반인 사이에서도 유행했다. 귀가 습자지처럼 얇은 남편은 회사 근처의 헬스클럽에서 PT를 받았다. 가격이 비싼 관계로 딱 두 달 동안 운동법과 자세를 정확하게 익혔단다. 그 뒤로 혼자서도 충분히 운동할 수 있다며 나에게도 PT를 권했다. 이전에 소문으로 듣던 PT의 이미지는 지옥훈련과 비슷했다. 나 같은 유리 체력의 소유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긴달까.


‘과연 그 무서운 PT를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괜히 비싼 회비만 날리는 거 아냐?’ 한편 ‘PT만 받으면 나도 진정한 근력운동의 세계로 입문할 수 있을까?’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던 마음이 드디어 기울었다. 한번 해 보는 걸로. 우리 동네의 단골 헬스클럽을 알아보니 오오, 남편이 냈던 금액의 절반 정도. 그렇다 해도 매달 수십만 원, 적지 않은 액수였다. 결재하는 회원님의 손이 조금 떨렸... 던가?


첫날 깨달았다. 트레이너가 시켜주니까 간신히 따라가는 거지, 나 혼자서는 절대로 운동량을 채울 수 없겠다고. PT 1년을 받은들 남편처럼 스스로 할 수 있는 경지는 못 될 거라고. 나는 트레이너의 인도에 따라 말로만 듣던 스쾃, 런지, 플랭크, 데드 리프트, 각종 아령 운동을 접했다. 무리하지 않게 천천히 가고 싶다고 부탁한 덕에 상상했던 만큼 강훈련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결코 쉬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세 번은 해야 운동 효과를 본다고 했으나 나는 당시 두 번째 책 출간 작업 중이었다. 출판사에서 파일을 보내주면 최대한 빨리 교정을 보고 다시 넘겨야 했다. 토스하듯 이루어지는 작업의 특성상 운동하자고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그나마 오전이 여유로운데 트레이너는 무정하게도 오후 수업만 진행했다. 어쩔 수 없이 퇴근한 뒤에 허겁지겁 헬스클럽에 뛰어갔다. 보통은 한 달에 기본 10회를 마친다는데 나는 7주가 걸렸다. 그래도 골격근 증가, 체지방 감소. 야호, 인생 처음으로 근육량이 늘었다! 오래 걸린 것치곤 괜찮은 성과였다.


이어서 나는 두 번째 PT(10회)에 도전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운동 간격이 길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 드물게 두 번. 내 몸은 지난번 운동을 기억하지 못하고 매번 처음 하는 것처럼 삐걱거렸다. 악순환이었다. 7주 반 만에 간신히 10회 완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애써 키웠던 근육량이 감소했고 얄미운 체지방은 증가했다. 사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가뭄에 콩 나듯 PT 가는 날 외에는 걷기마저 소홀해진 것이다. 매일 하던 걷기가 일주일에 두어 번으로 줄었다.


위기감에 빠진 나는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세 번째 PT(10회)를 신청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또 7주가 넘게 걸렸고 심지어 복부지방과 체중까지 늘었다. 몸은 PT를 시작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나름 야심 찼던 PT 실험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돌아보면 타고난 체질을 고려하지 않았던 게 주요한 패인이었다. 나란 인간은 해만 떨어지면 더운 날 아이스크림처럼 신체 에너지가 방전되는 스타일. 오전이었다면 주 2회는 가능했을 텐데. 저녁 수업으로 한 달 안에 10회를 마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였다.


기초 체력을 무시한 운동 시간 역시 문제였다. 복부 비만이 심하니 PT 후 반드시 유산소 운동을 겸하라는 슨상님의 지시가 있었다. PT 1시간만 해도 벅찬데 그 후에 러닝머신 1시간, 합이 2시간을 하고 나면 온몸의 기가 홀딱 빨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점점 재미도 없고 가기도 싫고. 유연하게 근력운동 따로 유산소 운동 따로, 하루에 딱 한 시간만. 간단한 해결책이 있건만 나는 참 고지식했다. 무조건 슨상님이 시킨 대로 해야 되는 줄 알았지.


얼렁뚱땅 5개월이 넘었던 PT 교습을 후회하진 않는다. 어쨌든 근육이란 놈들을 굴려보았다는 점에서 나쁘진 않았다. 이래 봬도 스쾃, 데드 리프트를 혼자서 할 수 있는(실제론 안 함) 여자라고! PT 경험을 통해 무엇보다 운동의 강도보다 ‘지속가능성’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한두 달이 아니라 1년, 2년 그 이상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물리적인 운동 시간을 낼 수 있는가, 오가기 수월한 적정한 거리인가, 체력과 취향에 맞는 종목인가, 원하는 시간대가 가능한가, 계속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인가, 자신에게 맞는 지도자인가. 모두를 갖추긴 어렵더라도 본인에게 필수적인 항목 몇 개는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것저것 온갖 조건을 다 따지면 과연 운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모든 건 '의지'에 달렸다고 반론을 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실제로 매우 드물다. 강철 같은 의지를 가졌더라도 오래도록 유지하기는 상당히 엄청나게 힘들다. 웬만한 사람에게는 확률상 반드시 지는 게임이다. 쿠크다스처럼 금방 부스러지는 의지를 믿는 것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이 꾸준함의 비결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는 걷기만 한 게 없구나. 기승전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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