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반 옵션 집에 들어가는 자세

있는 것들을 활용한다

by 소율

제주 일년살이를 위해 얻은 집은 풀옵션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일 년 만 살 것이므로 살림과 가구, 전자제품이 갖추어져 있어야 함을 말해 무엇하리. 하지만 그런 집을 기한 안에 찾지 못했다. 부동산 사무소에 나와 있는 집 자체가 적어서 입맛대로 고를 수가 없었다.


현재 제주 집에 구비되어 있는 것은 냉장고, 세탁기, 티브이(원래 안 봄, 쓸모없음), 에어컨, 제습기, 식탁이 전부다. 아주 기본적인 전자제품만 있다고 보면 된다.


내가 따로 준비해야 할 물건이 아주 많다는 결론. 제주 반 옵션 집에 들어가는 세입자로서 원칙을 세웠다.

'가능한 우리 집에 있는 것들을 활용한다.'

즉 웬만하면 새로 구입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침대는 이전 세입자가 쓰던 걸 사기로 했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그들과 합의를 했다. 솔직히 육지인의 시각에선 꽤 비싼 가격이었다. 제주도에서는 모든 물건이 육지보다 비싸다. 심지어 중고제품조차.


어쨌든 새 침대를 사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직접 중고 침대를 알아보는 것보다는 덜 번거롭다. 물건 고르고 용달 불러 실어 오고 하는 품을 생각하면 비싸도 기존 걸 인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붙박이장이 없어서 옷장과 이불장도 구해야 한다. 두 명의 이전 세입자는 두 개의 방 중 하나에 천정부터 바닥까지 행거들을 잔뜩 설치해서 옷을 걸었다. 큰 방은 싱글 침대 두 개를 넣었고 작은방은 옷방으로 쓰고 있었다. (나이롱)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옷이 많지 않으므로 박스형 조립식 행거를 주문했다. 그녀들처럼 일반 행거를 사용하면 먼지도 쌓이고 특히 시각적으로 엄청 지저분하게 느껴진다.


내가 산 건 위와 옆, 바닥이 있고 문 격으로 투명 커버가 달려 있다. 옛날 옛적에 자취생들이 쓰던 일명 '비키니 옷장'과 비슷하다. 설마 그거보단 튼튼하겠지. 같은 제품으로 이불장도 주문했다. 이렇게 유사 붙박이장 해결. 제주도에 가서 사면 배송이 되기까지 옷과 이불을 방바닥에 두고 생활해야 해서 싫다. 내 건 조립식이라 얇고 길쭉한 박스 3개가 전부. 부피가 크지 않아 차에 실어서 가져가면 된다. 집에 가자마자 설치해서 당일 사용 가능. 침대가 있는 내 방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보름살이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차를 탁송시킨다. 차 안에다 가져갈 물건을 최대한 집어넣기로 했다. 너무 웃픈 사연 하나를 이야기하련다. 집에서 쓰던 전자레인지가 거의 20년쯤 되었다. 삼성 건데 그동안 고장 한 번 안 나고 정말 알뜰하게 사용했다. 그걸 제주도에 가져가기로 하고 집에는 새 걸로 다시 장만했다.


그런데 트렁크에 늙은 전자레인지가 안 들어간다! 사실 그동안 트렁크를 자세히 살펴볼 일이 없었다. 내 차는 모닝, 작은 거야 당연 알고 있었지. 그래도 어쩜 작아도 이렇게 작을 수가! 전자레인지가 못 들어갈 정도라니. 이건 배신이야, 배신! 과연 이 차 안에 모든 물건을 넣을 수 있을까???


그건 탁송시키기 전날 직접 해봐야 판명이 날 일이다. 하여튼 내 방구석에 짐들이 쌓이고 있다. 침실 다음으로 신경 쓸 건 부엌살림. 여행에서야 대부분 사 먹기 마련이지만 이젠 주민으로 살아야 하니까. 살림이란 참 미묘한 것이 작은 물건 하나라도 없으면 매우 불편하다. 특히 주방용품이 그렇다. 냄비, 그릇, 수저, 칼, 도마, 쟁반 등은 기존에 쓰던 걸 챙겼다. 개수는 종류별로 1개에서 최대 3개까지. 프라이팬만 새로 샀구나. 쌀도 약간 담아놓았다.


제주 집의 생활권은 세화리인데 차로 16분이 걸린단다. 필요한 게 생길 때마다 이동에만 왕복 30여 분에 쇼핑 시간까지 합치면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는 얘기다. 아마 불편할 것이다. 하여 기타 자잘한 소모품들도 미리 사다 놓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제주 생활비를 아끼기 위함도 있다. 어쨌든 두 집 살림을 유지하려면 최대한 아껴야 잘 살죠.


다음은 화장실 차례. 당장 필수인 휴지와 샴푸, 비누, 세제, 치약 등도 조금씩 가져간다. 며칠 정도는 자급이 가능해야겠지. 작은방은 남편과 아들이 올 경우, 또는 친구나 지인이 방문할 경우에 쓰려고 한다. 원래는 매트리스만 구입하려다 집에 있는 요를 사용하기로 했다. 요가 두 개이므로 겹쳐 깔면 나름 푹신할 것이다. 아마 사계절 침구류와 옷이 가장 부피가 나갈 것 같다. 차 뒷좌석에 얌전히 다 들어가야 할 텐데......


제주에 가서 사야 할 품목은 내가 쓸 전신 거울, 작은방에 놓을 손님용 미니 테이블과 행거 정도. 아 프린터도 주문해야지. 쓰던 게 고장 났다. 이것만 천천히 구입해도 되는 항목이다. 거실에 있는 전신 거울을 차에 싣고 싶지만 길이가 들어갈 것 같지 않다. 반신용 벽 거울은 가져갈 수 있다, 남는 자리만 있다면.


반박음질 하듯 미리 짐을 싸고 있다. 매일 더블 체크 중. 왜냐하면 내가 아주아주 잘 까먹는 스타일이라. 풀옵션 집으로 들어가겠다는 기본 조건이 어긋났기에 일이 복잡하고 귀찮아졌다. 반사 신경이 뛰어나지 않은 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준비하는 편이 실수가 적다. 어제 잊은 건 오늘 기억하면 되고 오늘 잊은 건 내일 기억하면 되니까. 단점을 상쇄할 만큼 준비할 시간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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