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함께 춤을, 아니 순두부와 커피를!

사람이라는 선물

by 소율


'저는 도착했습니다.'



문자가 왔다. 공인중개사님이다. 여기는 세화리 바다가 보이는 순두부 식당. 고작 순두부집 전경이 이래도 되는 거야? 너무 멋지잖아! 난 전화를 했다.

"어디셔요? 전 식당에 들어와 있어요."

"바로 앞이에요. 금방 갈게요."

사장님이 곧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곰팡이 문제로 통화는 여러 번 했지만 직접 만나기는 한 달 만이다. 깔끔하게 중재를 해주시어 방 두 개와 현관 천정의 도배를 잘 마쳤다. 집이 안정되면 꼭 커피를 대접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오늘이 약속을 지키는 날이다.


맛나게 순두부를 먹고 났는데 이분, 손이 참 빠르다. 어느새 계산을 해버린 것이다.

"아니, 제가 대접하기로 했는데 이러시면 곤란하죠."

"제가 얻어먹기만 하는 성격은 아니라서요. 원래 커피 사신다고 했으니까 커피 마시러 가요."



어디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바로 위층이 예쁜 카페였다. 식당과 카페가 들어있는 건물이 세화 해변 바로 앞이다. 연휴가 끝난 월요일이어서인지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빨간색이 돋보이는 크리스마스 테마 카페.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통유리창 앞에 나란히 앉았다. 살면서 수많은 공인중개사들을 만났지만 고마워서 다시 만남을 청하기는 처음이다.



그녀는 도배는 잘 되었는지, 집 정리는 다 했는지 물었다. 그러면서 곰팡이 얘기가 또 나왔다. 제주도에 와서 가장 '많이, 자주' 말한 단어가 '곰팡이'로군. 육지에서 살 땐 곰팡이 걱정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욕실만 바람이 통하게 유지하면 되었다.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방이나 현관에 곰팡이가 생기는 일은 없었으니까. 제주 집은 으레 그런 걸까? 그녀가 말하길 섬이기에 습해서 곰팡이가 잘 생기긴 하지만 모든 집이 그런 건 아니란다. 관리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와중에 우리 집주인의 태도가 비상식적이라 자신도 화가 많이 났다고 한다. 임대차법이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져서 예전 같은 임대인의 갑질은 통하지 않는다네. 그녀는 거래하는 임대인들에게 오히려 '요즘은 임차인이 갑이다'라고 강조한다고. 누구 편을 든다기보다 양측 모두를 위한 중재를 하는 것이 자신의 업이니만큼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도록 일하고 싶다, 앞으로 그 임대인과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깎아내릴 사람과 일하지 않아도 거래처는 많다고. 일에 대한 자신감과 사명감이 대단했다. 역시 평범한 아줌마가 아니었어.



그렇다고 우리가 진중한 얘기만 했을까? 당연 아니지. 갱년기로 늘어나는 체중, 여행, 운동, 공부, 가족...... 공인중개사와 임차인으로 만난 사이라기엔 다방면으로 수다를 떨었다. 사람 사는 모양은 다들 비슷비슷하다. 대화를 나누다 바라보는 바다 빛깔이 환상이다. 날을 어찌나 잘 잡았는지 오랜만에 햇살이 반짝거리고 바다는 초록빛으로 빛났다. 제주에 와서 체험하는 겨울은 대부분 흐리고 비 오거나 바람이 겁나 세게 불거나, 아주 가끔 맑음이다. 오늘 같은 날은 로또 맞은 날!


제주도라는 섬은, 가끔 여행을 오기엔 좋지만 눌러 살기엔 불편하다, 외롭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오는 경우가 아니라 나이 먹은 여자 혼자서 온 경우라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썰렁한 집을 '편안한 마이홈'으로 만드는 과정 중. 집과 겨울 날씨와 시골살이에 익숙해지면 나만의 문장을 만들 수 있을까. '눌러 살기에 아주 좋은 제주' 정도면 더할 나위 없겠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면서 두 번째 초대권을 날렸다. "다음에 구좌읍 근처에 일이 있으면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핸드드립으로 커피 내려 드릴게요." 답변은 물론 오케이지! 익숙해질 목록에 하나 더 추가할 것. 바로 사람, 사람들.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항목이 될 수도. 자연만 바라보고 온 제주에서 사람이라는 선물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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