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매일 혼자서 뭐 하냐는 궁금증에 대한 대답

일기

by 소율


<2022. 5. 20. 금요일>


날씨 흐림.


1.



나의 셋째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이 집에 배송되었다. 부크크에서 출간 승인을 받은 건 5월 9일. 그래서 발행 날짜도 5월 9일. 주문한 건 11일이니까 열흘 만에 도착한 것이다. 인쇄와 배송까지 보통 1주일이라던데 아마 제주도라서 며칠 더 걸린 듯. 마침 나가는 길에 책이 온 걸 발견했다. 급하게 뜯어서 대충 살펴본 뒤, 일단 차에 탔다. 볼 일 보고 돌아와서 자세히 보기로.


2.

나가기 전 오전엔 딱세줄 19기 웹자보를 만들었다. 기존 것에 바탕색과 글씨만 바꾸는 거라 간단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공지할 예정. 웹자보를 넣어 공지글을 써두었다. 블로그에 임시 저장. 브런치에 임시 저장. 월요일엔 그대로 올리기만 하면 된다.


3.

그리고 다음 주 목요일에 친구들이 놀러 온다. 5박 6일인데 첫날 저녁식사부터 3박은 내가 안내하고 나머지 2박은 둘이 알아서 다니라고 했다. 친하긴 해도 손님은 손님이라 신경이 꽤 쓰인다. 동쪽 지역 가까운 곳으로만 데리고 다니면 나야 편하지만. 멀리서 오는데 뭔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솟는단 말이지.


가기 힘든 곳, 즉 예약을 해야만 방문이 가능한 곳을 데려가야겠다. 제주도에선 사려니 오름을 포함한 한림시험림과 거문오름 두 곳이 그렇다. 거문오름은 가까워서 편할 것 같은데 내가 이미 가봤었다. 보통의 곶자왈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 별다른 감동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5월에서 10월까지만 예약을 받는 사려니오름 쪽이 훨씬 가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사려니 숲길과는 코스가 다르다. 평소엔 출입 금지 구역이니까. 단점은 멀다. 차로 편도 50분 정도. 서너 시간 걷고 왕복 2시간 운전이면 엄청 지칠 텐데.


아침 내내 두 장소의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망설였다. 마음은 사려니 쪽인데 내가 많이 힘들 것 같아서. 나가기 전에 겨우 결정을 내렸다. 에라, 이 한 몸 바치기로. 나는 카톡으로 친구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생년월일을 물어보고 3인 예약을 했다. 토요일 10시. 주말이라 사람이 많겠지만 금토 연이어 다니는 게 나한테는 편할 게다.


4.

배가 너무 고팠다. 집에는 채소뿐인데 그건 매일 먹는 거고. 갑자기 고기 국수가 먹고 싶었다. 오늘 점심은 외식이다! 월정리 해변에 고기 국숫집이 두 개가 있다. 1번은 예전에 가봤는데 꽤 맛이 좋았다. 다른 하나 2번은 관광객 사이에서 유명한 식당이다. 나는 검증된 곳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웬일??? 휴일도 아닌데 문을 닫았다. 제주에선 흔한 현상이다.


아 그럼 2번으로 가야겠네. 거긴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나마 한창 시간은 지났는지 자리가 있었다. 이윽고 기다리던 고기 국수가 나왔다. 어 근데 내 입맛은 아니었다. 1번은 야들야들 부드러운 고기였는데. 그맛으로 먹는 건데. 여기는 고기가 탱탱한 게 또는 조금 오래 삶아진 느낌? 약간 족발 느낌? 나쁘진 않았지만 나에겐 1번이 나았다. 제발 영영 문을 닫지 않아야 할 텐데. 우리 집 인근인 김녕, 월정, 세화엔 이상하게 맛있는 고기 국숫집이 드물었다. 제주도에서 가장 흔한 식당이 고기 국숫집이거늘.


5.


먹기 전에 그렇게 배고프다가 먹고 나면 또 너무 배가 불러. 소화를 시킬 겸 해변 안쪽의 골목을 걸었다. 기념품 가게, 옷 가게, 식당 등 관광지답게 뭐가 많다. 기념품 가게는 여러 곳을 가보았는데 왜 또 들어가는 거지? 그냥 구경만 하자고. 그러나 요즘 살짝 지름신이 강림할 때가 있다. 동백꽃 손수건 3개 세트가 12000원? 오 싼데! (손수건이 없는 게 아니라고! 정신 챙겨!) 그리고 컬러풀한 천 안경집, 13000원. 이건 좀 비싸네. 그럼에도 색깔이 너무 내 취향. 나는 이미 두 개를 집어 들고 있었다. 에라 이쁘니까 용서한다. 예정에 없던 쇼핑을 해버렸다.


6.

이젠 집으로 돌아갈 시간. 현관에 들어서면서 택배 상자를 거실로 가져왔다. 인쇄된 책이 썩 마음에 들었다. 특히 표지가 실물이 예뻤다. 부크크 '엔베르겐'에서 만들었다. 생각보다 훌륭해! 기존에 출간한 두 권의 책 표지는 별로였거든. 사실 자기 책 표지에 만족하는 작가는 아주 드물다. 원고와 달리 표지는 출판사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책의 앞면 뒤면을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책이 출간되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 하므로. 부크크에서 출판한 책은 홍보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작가가 스스로 마케팅을 해야 한다.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에도 들어가게끔 해놓았지만 두 달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단다. 왤케 오래 걸리냐고!


7.

그러는 도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010으로 시작하는 핸드폰 번호였다. 또 쓸데없는 전화겠지 싶었지만 일단 받았다. 울산 라디오 방송의 작가였다. 자기네 프로그램에 15분 정도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코너에 출연해 달란다. 참 좋은 기회지만 안타깝게도 요구하는 조건이 나랑은 맞지 않았다. 계절에 따는 국내 여행지, 캠핑 포인트, 호캉스 등 내가 전혀 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섭외할 땐 상대방의 이력을 자세히 조사하고 나서 하면 좋으련만. '저는 해외여행을 주로 하는 사람이고요. 현재 제주도에서 일 년 살이를 하고 있으니 제주도 관련 이야기라면 괜찮지만요. 다른 건 제 분야가 아니라 잘 몰라요. 수많은 국내 전문 여행작가들이 있으므로 그분들 중에서 섭외를 해보세요.'


간혹 이런 식의 엉뚱한 연락이 온다. 나와 상관없는 분야에 대해 강의나 출연을 해달라고. 보통 거절하지만 내심 아깝기도 하다. 그냥 한다고 할까? 그러나 괜히 욕심냈다가 골치만 아파지기 십상이다. 체험해서 아는 걸 이야기하는 거랑 모르는 걸 공부해서 이야기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이니까. 아쉬움과는 별도로 말이다. 그래도 슬슬 여행 관련 문의가 오는 자체는 정말 반갑다.


8.

며칠 전에도 과천 여성비전센터에서 여행 강의 요청이 있었다. 그런데 강사료가 기본 이하라서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비행기 타고 가려면 따로 교통비를 받아야 한다. 강사료 자체를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책정했는데 교통비까지 줄 리가 없었다. 내부에서 의논해 보겠다고 했지만 나는 마음을 접었다. 좀 실행 가능한 섭외가 오기를 바랍니다.


9.

어느새 저녁때. 또 배가 고프네. 어제 끓여놓은 닭개장을 먹어야겠다. 가끔 냉동 닭 다리를 사서 요리한다. 조림을 하니까 익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저번에 데쳐서 냉동해 놓은 약초 한 줌과 양파, 고추장, 마늘을 넣고 약식 닭개장을 끓였다. 낮에 탄수화물을 많이 먹었으므로 밥 없이 국만 먹었다. 맛있다. 내가 만들고 내가 맛있는 건 좀 잘난 척인가?


10.

자, 이제 본격적으로 책 홍보작업에 들어갈 시간.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책 출간을 알렸다. 아까 찍은 사진과 함께. 내 블로그와 카페, 브런치, 다음 유방암 카페에 출간 소식을 올렸다. 축하의 댓글이 달리고 난 또 대댓글을 달고. 친한 작가분이 아예 전화를 했다. 평소 일하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듣거나 서로 의논을 하는 사이. 이번 책 표지도 이 분 조언을 반영했다. 새 책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까지 서로의 근황을 한참 털어놓았다. 난 이른 저녁밥을 먹었지만 그녀는 아직 안 먹은 상태. 어머나 9시까지 통화를 해버렸네. 과유불급이거늘 맨날 이런다. 어여 밥 먹으라며 길고 긴 통화를 끝냈다.


11.

하다 만 포스팅을 마저 했다. 어느새 밤 10시경.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쉬었다. 나의 휴식법은 웹 소설 읽기. 머리가 비워지고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되는 좋은 방법이다.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읽으면 참으로 바람직할 텐데.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한 권도 눈에 안 들어오네. 이번 대출은 실패여. 어제 예약 도서를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었다. 내일은 도서관에 들러야 한다. 25일 세화오일장에 가면서 하나로마트랑 도서관까지 한꺼번에 처리를 하려고 했는데. 무조건 내일 가야 함. 이제 자자꾸나.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오늘의 하루 끝. 일기 끝.




제주에서 혼자 사는데 이상하게 날마다 바쁩니다.

외롭거나 심심한 적은 거의 없어요.

가끔 넷플릭스도 보고 티비도 봐요.


원고도 쓰고, 딱세줄 관리도 하고요,

숲길도 자주 걸어요.

블로그와 브런치도 포스팅 하고,

장도 보고 간단한 요리도 하고요.

빨래도 하고 쓰레기 버리러 차 타고 5분이나 가고요.


일상과 걷기와 일을 동시에 합니다.

손님이 오면 더 바빠져요.

그렇게 삽니다.

실제로 할 일이 많아서 제주살이가 생각만큼 여유롭진 않아요.


일을 안 하고

걷고 쓰기만 하면 좀 한가하겠죠?^^

언젠가 그렇게도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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