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외식해 봤수?

톳 김밥을 먹어보았나?

by 소율


<2022. 5. 21> 토요일의 일기


오늘의 할 일은 동녘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고 예약 도서를 빌리기. 예약한 책은 문자 받은 날부터 3일 이내로 가져와야 한다. 미룰 시간이 없다. 8시 40분에 칼같이 집을 나서는데, 현관문 밖에 택배 두 상자가 놓여 있었다. 아들에게 부탁한 몇 가지 물건과 늘 먹는 커피 원두였다. 일주동로를 달려 9시 5분 전에 도서관에 도착.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차 안에서 핸드폰을 보며 빈둥대다가 벌써 9시 3분? 이제야 도서관은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2층이 자료실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먼저 깔끔한 신발장이 반긴다. 특이하게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있는 까만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처음엔 생경했지만 볼수록 이거야말로 '굿 아이디어!' 덕분에 도서관 안이 먼지 한 톨 없는 청결을 유지한다. 요런 시스템은 전국의 도서관이 배워야 해! 그런데 사서 선생님이 안 보였다. 어딜 가셨나요? 뭐 제가 기계로 반납하죠.


조금 후 사서쌤 그녀가 나타났다. "예약 도서를 찾아야 하는데요?" 그녀는 내 이름을 물어보고 얼른 책을 내주었다. 아침밥을 먹지 않고 나와 적잖이 출출했다. 보통 나는 아침에 핸드드립 커피와 토스트 한 장, 삶은 계란 하나, 약간의 채소를 먹는다. 오늘은 유달리 김밥이 당겼다. 제주도는 '김밥의 격전지'라고 불릴 만큼 다양하고 독특한 김밥 집이 성행 중이다. 그러나 그건 저 멀리 제주 시내의 얘기고요, 이 동네 구좌읍에선 김밥 먹기가 쉽지 않다. 하나로마트에서 팔기는 하지만 맛이 별로.



얼마 전 세화 바다를 거닐다 김밥 전문점을 발견했다. 해초를 넣은 김밥을 파는 것 같았다. 그때는 식사 후라 맛을 보진 못했다. 오늘은 그걸 염두에 둔 채 마음 놓고 식사를 걸렀다. 토요일 아침의 특별식은 해변가의 김밥이다! 나는 평소처럼 보지도 않을 책들을 뒤적이지 않고 바로 튀어나왔다. 바다 쪽으로 달리자. 9시 반경. 김밥 집엔 이미 손님들이 있었다. 아, 가게 이름이 '도도톳 김밥'이었다. 실은 아침밥을 거르면 걸렀지, 사 먹은 적은 없었다. 제주살이 와서 아침을 외식하기는 처음이었다.



톳 김밥? 삼겹살 김밥? 야채 김밥? 안 먹어본 톳 김밥을 하나 주문하고 야채 김밥 한 줄은 포장을 부탁했다. 이따가 집에 가서 낮에 먹어야지. 톳 김밥은 조금 뻑뻑했다. 삼키기가 어려운걸. 그러나 여긴 국물을 안 준다. 그냥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셨다. 내 입맛엔 그냥저냥이었다.



오늘따라 날씨가 와우! 하늘이며 바다가 예술에 가깝다. 이대로 돌아가긴 섭하지. 바다가 바라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배부른 뒤엔 꼭 에스프레소. 왜냐? 양 많은 다른 커피를 마시면 배가 터질 것 같으니까. 에스프레소로 짧고 진하게 끝내는 거쥬.



기왕 나온 김에 하나로 마트도 들려야겠다. 표고버섯, 고구마, 당근, 돼지고기, 빻은 마늘을 샀다. 아침 외식과 장 보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11시.


집에서도 시간은 잘 간다. 일단 세탁기에 빨래를 돌렸다. 해가 좋으니까 바싹 마를 것이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어제 일기를 써서 올리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4시쯤 점저로 포장해온 김밥을 먹었다.


점심이 아니라 점저라서일까. 아직도 속이 헛헛했다. 나는 김장김치에 긴 돼지고기 한 쪽을 썰어넣고 볶았다. 순식간에 완성되고 맛도 있는 요리. 내가 즐기는 음식이다. 돼지고기 김치볶음을 반 접시 해치웠다. 만족스럽군. 이제야 배가 차네. 앗, 빨래 너는 걸 깜빡 잊었구만. 이미 햇살은 기울어가지만 바람이라도 쏘여야지. 늦었지만 빨래를 두어 시간 말리고 거실에 들여놓았다.


그런데 거실 티브이 앞에 뭔가 시커먼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벌레 사체였다. 지네인가? 돈벌레인가? 집 안에서 벌레가 나오긴 또 처음. 오늘은 처음 겪는 일이 많군. 지난달에 약국에 가서 살충제 두 가지를 사 왔다. 하나는 하얀 가루인데 집 밖의 벽면 아래에 빙 둘러 뿌렸다. 다른 하나는 스프레이 식으로 집 안의 구석구석에 뿌렸다. 외부 것은 지네 퇴치용. 내부 것은 기타 벌레 퇴치용.


(비록 마스크로 가린 얼굴이지만) 안면을 튼 읍내 약국의 약사님이 강력하게 조언했던 것이다. 제주의 시골에서 살려면 이 두 가지가 필수라고.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만 뿌려두면 벌레 걱정은 없을 거라고 했다. "지네가 그리 무서운 건가요?" 어벙한 질문에 "제주에서 큰 지네에게 물리면 구급차 타야 할 수도 있어요.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양쪽 테라스에서 죽은 지네를 여러 번 발견했다. 크기가 정말 내 가운뎃손가락보다 길고 굵었다. 저런 것에 물린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역시 현지인 말을 듣길 잘 했어. 나이 먹을수록 넉살도 같이 늘었다. 두 번 정도 보았다면 마치 이웃처럼 잘도 수다를 떤다. 좀 주책인가??? 읍내 수선집 사장님, 작은 카페 주인장, 약사님 등 의외로 사람을 금방 사귀었다. 해외도 아니고 같은 말 통하는 모국에서 말 좀 거는 게 뭐 대수겠어.



책상에 앉아 거실 통창을 바라본다. 햇빛이 길게 늘어진다. 창문 앞에 수영장이 있다. 이래 봬도 집집마다 있는 개인 수영장이다. 가끔 손님이 보면 목욕탕인가 물어보지만. 수영장 꼴이 좀 모냥 빠지지. 낙엽과 흙과 풀이 쌓이고 자라서 거의 방치 수준이다.


이웃에게 물어보았다. "저기에 물 받아서 진짜 수영장으로 쓸 수 있나요?" "에고, 수도 요금을 감당 못합니다. 쓰는 집은 거의 없어요. 아예 생각도 마세요." 어차피 난 수영도 못하는걸. 그리고 어른이 철벅거리기엔 너무 낮다. 애들용이겠지. 아니면 정말 목욕탕이라면 딱 알맞을 것 같은 느낌. 흐흐흐.




수영장 같지 않은 수영장 건너엔 커다란 후박나무가 한가득 시야를 채운다. 나는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연두색 꽃이 피었다 떨어지고 잎사귀가 점점 초록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감상하곤 했다. 가만히 앉아서 흐르는 계절을 본다. 넘어가는 햇살에 나무의 윗부분이 노랗게 빛난다. 눈에 차는 노랑과 연두와 초록이 매우 기껍다. 아마도 올겨울 제주를 떠난다면 가장 생각날 장면이 창밖의 후박나무가 아닐까? 책상에 앉을 때마다 줄창 바라본 대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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