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못하는 자의 바다 적응기 3편, 살려주세요!

구명조끼를 입고 살려달라 외쳤다

by 소율

'물을 썩 즐기지 않는다. 수영을 못 한다. 혼자다.'


이런 조건에서 바다에 자주 가게 되진 않는다. 지난번에 여러 가지 물놀이 용품을 장만했고 내 딴에는 재밌게 놀았다. 이후 과천 집에 일주일 동안 다녀왔다. 간 김에 이마트에서 구명조끼를 사 오려고 했다. 그러나 8월 중순은 이미 여름 용품들이 물러간 뒤였다. 직접 입어보고 내 몸에 맞는 걸로 고르려고 한 건데.


답은 역시 쿠팡밖에 없네. 로켓 와우 상품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여기도 끝물인지 빨간색만 남았다. 너무 눈에 튀는 건 싫지만 어쩔 수 없네. 나는 솔직히 튜브에 상당히 만족을 했다. 든든하고 안정감이 있어 겁이 나지 않았으니까. 말하자면 물놀이 동행(사람 친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튜브를 타면 어깨가 아팠다. 누군가 구명조끼는 두 팔이 자유로워 훨씬 나을 거라 했다.


배송된 빨간 구명조끼. 이걸 입고 잘 놀 수 있을까. 나는 튜브와 조끼 두 개를 모두 챙겼다. 만일을 대비한 것이었다. 조끼가 마땅치 않으면 튜브로 갈아탈 생각이었다. 튜브는 검증이 된 아이템이었고 구명조끼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차를 몰아 코난 비치라고 알려진 행원 바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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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쯤. 늦게 가서인지 도로 양옆의 공터에 자리가 꽉 찼다. 나의 모닝을 간신히 좁은 공간에 끼워 넣었다. 바다 쪽 공터엔 스카프와 모자를 파는 트럭이 서있었다. 고정석인가 보다. 전에 나도 스카프 하나를 샀다. 지나갈 때마다 보이니까 결국 사게 되더라. 여름용이라고 하지만 나는 결코 더운 여름에 스카프를 두르지 않는다. 가을에나 하게 될까? 아니면 그냥 기념품 용도라도 상관없다. 이쁘면 된 거다.


여기가 코난 비치라고 알려준 옷 가게. 역시 여름내 오는 모양이었다. 구경은 지난번에 충분히 했으므로 오늘은 패스. 바다에 놀러 온 사람들이 옷을 들춰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맘에 드는 원피스를 샀겠지. 해수욕장은 아니어도 북적거리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여름 풍경의 감초 아니겠어요?


나는 차 옆에서 구명조끼를 입었다. 양손이 꽉 찼다. 한 손에 마실 핸드폰, 물과 수건, 등산용 방석 등을 넣은 이마트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엔 튜브를 꼈다. 엄청나게 바다를 즐길 것 같은 모습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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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과 풀이 난 언덕을 지나 걸어갔다. 해가 바다 쪽에서 비쳐 눈이 부셨다. 오후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바닷물이 모래사장까지 깊게 들어와 있었다. 나는 만조인지 간조인지까지 신경 쓰진 않는다. 어떨 땐 모래사장이 멀리까지 드러나도록 바다가 얕았다. 이날은 왔던 중 물이 최고로 깊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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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엔 너무 얕아서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던 왼쪽 부분에 바닷물이 가득 찼다. 한가운데 부분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적은 왼쪽으로 걸어갔다. 가슴 정도까지 물이 올라왔을 때 살며시 앞으로 몸을 띄웠다. 이제 두 팔로 자유롭게 물을 내저으면 되는 건가?


어어, 그런데 머리만 내놓고 내 몸이 홀라당 뒤집어졌다. 깜짝 놀라서 다시 몸을 바로 하려고 버둥거렸다. 어찌어찌 앞을 보게 되었으나 곧 다시 뒤집어졌다. 나는 발을 바닥에 짚으려고 애썼다. 발이 닿지 않았다! 배를 드러낸 거북이처럼 나는 둥둥 떴다. 자꾸 파도가 나를 멀리 밀어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공포심이 몰려왔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사람이 수영을 즐기는 게 보였다.


"저 좀 잡아 주세요! 누가 저 좀 잡아 주세요! 살려 주세요!"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창피함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딱 죽을 것 같은데 무슨 창피함 따위! 난파 현장도 아니고 새빨간 구명조끼를 입고서 살려달라니. 나에겐 비극이고 남들 눈엔 희극이었겠지. 흑흑.


근처에 있던 여자분이 얼른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우아하게 자유형을 하던 그녀가 떠내려가던 나를 붙잡았다.


"괜찮으세요? 에고 구명조끼를 너무 헐렁하게 입으셨네요. 가슴을 더 꽉 조여야 해요. 여기 다리 사이에 감는 끈도 바짝 졸라야 하고요. 안 그러면 조끼만 뜨고 몸이 뒤집어져요."


구세주였다. 나를 바로 세우고 끈을 조여주었다. 나는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당신은 목숨의 은인입니다요. 나는 혼이 나간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가방을 놓아둔 바위에 앉았다. 사람들은 나의 위기를 알아채지 못한 채 즐겁게 놀고 있었다.


전에 필리핀에서 남편이랑 잠깐 스노클링을 할 때도 나는 구명조끼를 입고 벌벌 떨었다. 구명조끼는 나에게 튜브만큼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나와 구명조끼는 궁합이 맞지 않는가 보다. 내가 구명조끼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게 진짜 문제겠지만. 나는 조끼를 벗어 바위에 널었다. 혼자서 구명조끼를 또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냥 돌아갈까? 아니 그건 좀 억울했다. 역시 너밖에 없다, 나의 사랑 튜브를 몸에 끼웠다. 나는 가운데 바다로 들어갔다. 어깨가 아픈 것쯤이야 죽는 것보다 낫지. 튜브 위에 몸을 싣고 발은 바닥을 확인했다. 음 발이 닿는군. 안심이다. 나는 평안하게 파도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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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가 다 되었다. 돌아가야지. 올여름의 마지막 물놀이였다. 이미 8월 말이었고 아까의 충격도 컸다. 그만하면 혼자서 열심히 논 거 아냐? 참 수경은 써보지도 않았네. 그렇다고 아쉽진 않았다. 겁쟁이로선 할 만큼 했다 아이가.


맞은편 모래사장엔 파라솔을 펴고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잘들 노시오. 나는 가겠소. 바다에 적응해 보려던 시도는 절반만 성공이었다. 함께할 동행이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 텐데. 혼자 하는 물놀이는 이 정도에서 만족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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