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은 넘치고 넘치니까
<2012년 10월 10일>
바람이 많이 분다. 창밖으로 나뭇가지들이 일렁일렁 흔들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바람 부는 날이면 난 바람을 맞으러 나가야 한다. 아, 나는 바람을 사랑한다.
오늘은 이렇게 밖에 나와 책을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 가서 손미나의 여행기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빌렸다. 공원에 앉아서 이걸 읽을까 했는데 – 과천도서관은 공원 안에 있다 – 새벽에 온 비로 벤치가 축축하고 얼룩얼룩했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곧 아들 점심도 챙겨줘야 했으니. 점심 먹고 다시 나와야지.
막상 집으로 들어가니 다시 나가기가 귀찮아졌다. 그러는 사이 또 소나기가 한줄기 지나갔다. 아니야, 이 순간 하고 싶은 걸 미루지 말자. 순간순간을 충만하게 살기로 했잖아.
“엄마, 나간다~”
가방에 책과 글쓰기 공책을 집어넣고 시내 카페로 나왔다. 아메리카노 2500원. 커피 값이 착하다. 무엇보다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층 창가 자리는 혼자 앉아있기에 딱 좋다. 통유리창 앞에 일자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정면으로 거리와 마주한다. 거칠 것 없이 시야가 탁 트인다. 여기가 내 명당이다.
책을 1/4쯤 읽었다. 여행기라기보다는 스페인에서 1년 동안 살았던 이야기다. 순간 마음속에 번쩍 하고 떠오르는 외침이 있었다.
‘아, 나도 폴란드에서 한 달 동안 살아봐야겠다!’
그 뒤로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미 폴란드로 달려가고 있었다. 작년 9월 폴란드에서 보낸 2주일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손미나의 스페인’이 나에게는 ‘폴란드’였다. 아프리카에서도 있을 만큼 있다가 나왔고, 네팔, 미얀마에서도 거의 한 달씩을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방콕에서도 지겨울 만큼 머물렀다. 하지만 여행의 3라운드, 동유럽은 시작하자마자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첫 나라 폴란드에서 겨우 2주를 지냈을 뿐이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비엔나, 헝가리까지 계획은 웅대했지만 말이다.
돌아온 이후 내내 못다 한 동유럽 여행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게다가 폴란드 돈, 주어티도 많이 남아 있단 말이다. 갑자기 돌아와야 했기에 환전해 놓은 돈을 미처 다 쓰지도 못했다. 물론 다시 달러로 환전할 겨를도 없었다. 그 돈은 1년 동안 배낭 안 봉투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보통의 여행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니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작은 동네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는 것에 마음이 온통 끌린다. 그리고, 가서 메이글을 만나야지. 지금도 포즈난에 살고 있을까? 메이글. 그녀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폴란드에서 선뜻 자기 집을 내어준 친구다.
우연히 내 블로그에서 “다음 여행지는 동유럽 폴란드예요.”라는 글 하나를 보고, 서슴없이 자기 집에 불러준 아가씨. 그녀는 폴란드 포즈난에서 길을 닦고 건물을 짓는 당찬 여인이었다. 공사장의 타워 크레인만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는 메이글. 그녀는 삼성에서 파견된 하청 건설회사의 과장님이었다. 그녀의 집은 그러니까, 회사에서 제공해준 ‘사택’이었다. 방이 9개나 있는 이층 집. 우리는 그 집에서 3일을 신세 졌고, 그곳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의 계획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일단 메이글을 다시 만나야지. 메이글에게 방 하나를 저렴하게 빌리는 거야. 그게 안 되면 다른 집을 소개해 달래야지. 이번엔 나 혼자 가는 거야. 엄마가 아닌 그저 한 여자로. 결혼하기 전처럼 그냥 ‘나 자신’으로만 살아보는 거야. 생애 처음으로 혼자 나서는 해외여행이 될 터였다. 아들 녀석은 내년, 후년까지 2년 동안 입시공부에 전념해야 한다. 너도, 나도 이제는 슬슬 서로에게서 독립할 때가 되는 거지. 크하하~
부실한 체력으로는 ‘머무는 여행’이 제격일 게다. 내년 가을이면 몸이 많이 회복되겠지만, 이전처럼 45L 배낭을 메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작년 유방암 수술 이후로는 오른팔로 무거운 것을 들 수 없으니까.
2012년 형부의 부고로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온 뒤, 내게는 또 하나의 폭풍이 몰아쳤다. 유방암 진단. 그 뒤 1년 동안 암환자로 살아왔다. 이제는 조금씩 환자에서 일반인으로 타박타박 걸어오고 있는 중. 그러니까 지난 1년은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격동의 시간’이었다. 뭐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삶이 내게 숨겨놓은 선물 중 하나였으니까. '한 달짜리' 머무는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난소 억제 주사 때문이다. 2년 동안 매달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이것을 맞아야 한다. 항호르몬약도 5년간 같이 먹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 바로 한 달이다.
어제 첫 정기검사가 있었다. 수술, 방사선, 항암 치료를 마친 뒤 6개월 만의 검사였다. 초음파(2종류), 유방촬영, 골밀도 검사, 혈액 검사, 흉부 엑스레이, PET 검사까지 모두 7가지 검사를 받았다. 다음 주에 결과를 들으러 간다. PET 검사를 하며 누워 있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이상이 발견된다면? 재발이나 전이가 있다면?’
그동안 이런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도,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다고 어쩌겠어?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지.
이전보다 더 기쁘게, 더 충실하게, 순간순간을 사는 거지.
더욱더 나 자신으로 사는 거지.
치료받으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여행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내 영혼이 허락하는 날까지 그렇게 살면 되는 거지.'
그저께는 밤새 ‘1시간 자고 2시간 깨어있고’를 반복했다. 의식적으로는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무의식이란 놈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막상 병원에 가서는 편안하게 검사를 받았다. 병원이란 공간에서 몇 시간 머무는 자체가 피곤했지, 검사는 그리 힘겹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꿈을 꾼다. 혼자 폴란드로 날아가 한 달 동안 살아보는 시간을. 아, 폴란드 가려면 영어 실력부터 늘려야 하는데. 지난 여행에서는 아들이 다 통역을 해줬기 때문에 별 불편은 없었다. 그렇지만 다섯 단어 이내의 짧은 문장밖에 못 하는 내 혀가 못내 아쉬웠다. 아, 영어, 영어!
또 나는 꿈을 꾼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 양성과정’이라는 것도 해보고 싶다. 간단한 미용기술도 배우고 싶다. 뭔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특히 여행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매일매일 꿈을 꿀 거다.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은 넘치고 넘치니까.
* 이 매거진은 유방암을 겪으며 살아온 세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2011년 11월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이어진 치료과정에서 썼던 유방암 경험기이지요.
실제 이 글을 썼던 시기는 2012년입니다.
간혹 현재 진행중인 이야기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