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8년 차 과천 현지인, 여행작가 소율입니다. 오늘은 서울대공원 산책로를 사진과 함께 안내해 드릴게요. 많이들 와보셨겠지만 주민 입장에서 걷는 법은 따로 있거든요. "엄마 대공원 좀 걷고 올게!" 했더니 아들이 "오늘 미세먼지 심한데?" 합니다. 어쩔 수 없죠. 이날 저 날 다 빼면 걸을 날이 없어요. 그냥 나갑니다. 미세먼지 조금 마신다고 죽지는 않겠죠? 홍홍홍.
영상 6도. 날이 따뜻해요. 얇은 패딩에 도톰한 츄리닝 바지, 트래킹화 그리고 크로스백. 가방 안에는 휴대용 휴지와 장갑이 들어 있어요. 제가 찬바람만 쐬면 콧물이 찔찔 흐르는 체질이라, 겨울에 휴지는 필수품입니다. 아 선크림 바르고 제주도에서 애용하던 청 모자도 썼어요. 점 뺀 지 얼마 안 되어 햇빛에 민감합니다. 3월부턴 손수건과 물이 한 병 추가돼요. 여름엔 물이 두 병으로 늡니다.
저희 집은 문원동 끄트머리에 있어요. 문원동은 과천에서도 청계산과 서울대공원이 가장 가까운 동네랍니다. 과천에서 대공원을 가는 길은 여러 개여요. 사실 다른 동네라고 해서 엄청나게 멀지는 않아요. 과천은 워낙 작은 도시니까요. 오늘 같은 일요일(혹은 토요일) 주말엔 대공원으로 가는 도로가 꽉 막힙니다. 현지인(과천 주민)들은 절대 차를 끌고 가지 않아요. 당근 걸어가지요.
이건 주민만 아는 비밀인데요, 소문나면 안 돼요(소곤소곤). 서울대공원을 오실 때 시립문원어린이집 근처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세요. 주차장은 여러 개입니다. 그래도 주말엔 서둘러야겠지요? 공영주차장은 짜잔~ 무료입니다! 주차장 위 계단을 올라 등산로를 5분만 걸으면 바로 대공원과 연결. 이른바 뒷길이라 부르는 외곽 산책로로 빠져나오게 됩니다. 외지 분들은 이 방법을 잘 모르세요.
따스한데도 왼쪽의 호수가 아직 얼어있어요. 벌써 벤치에 앉아 분위기를 즐기는 여자분들이 있습니다. 저곳은 아는 사람만 아는 소풍 명당자리예요. 테이블이 딸려있어 간식을 펼쳐놓고 수다 떨기에 딱 좋거든요. 날씨 좋을 땐 자리 차지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아마 3월만 돼도 북적거릴 겁니다.
녹색 표지판에 보이듯 서울대공원을 걷는 길은 세 가지가 있어요. 언급했던 소풍 명당이 '호숫가 전망 좋은 길'이고요, 뒷길을 계속 직진하면 '동물원둘레길'과 '산림욕장'으로 향합니다. '호숫가 전망좋은 길'은 예쁘나 매우 짧아요. 운동삼아 하기엔 좀 부족하죠. '동물원둘레길'은 동물원을 포함해 대공원 전체를 크게 한 바퀴 도는 길인데요, 특히 가을에 단풍과 낙엽이 아름다워 많이들 찾는 명소랍니다.
게시판의 분홍 길이 4. 5km의 동물원둘레길, 초록 길이 7km의 산림욕장 길이에요. 작년 8월 집중호우로 인해 산림욕장은 출입을 통제하는군요. 도대체 언제 복구가 되는 거죠? 반 년이 넘었는데. 안으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보니까 동물원둘레길은 괜찮나 봐요. 다음엔 저도 동물원둘레길을 걸어야겠어요. 이곳도 제가 애정 하는 코스거든요.
동물원이 보입니다. 몇 달 내 공사를 하더니 들어가는 도로와 정문이 근사하게 바뀌었어요. 하늘이 뿌옇고 바로 앞 청계산도 흐릿합니다. 미세먼지가 심하긴 심한 날. 이러면 KF 94 마스크를 껴야겠으나 마스크 해제에 만세를 부른 저로선 그냥 숨을 쉽니다. '미세먼지 조금 먹는다고 죽지는 않는다'를 주문처럼 되뇌며...
마침 (아이들이 열광하는) 코끼리열차가 도착합니다. 전기 열차라 소음이 없어요. 예전엔 휘발유 냄새도 나고 참 시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전설이... 동물원에 가실 분들은 내리세요. 길 건너편은 장미원과 어린이 동물원이 있는 테마가든이에요. 5월, 6월엔 꼭 장미원에 들르세요. 만발한 장미꽃에 둘러싸여 절로 행복해집니다. 주민들은 입장료가 아까워서 잘 안 가긴 해요. 저도 어쩌다 한 번씩만 갑니다.
자, 쭉 걸어갑시다. 오른쪽 뒤로 현대미술관 가는 길이 나타납니다. 지난번엔 산책 나왔다가 '모네와 피카소 전'을 보고 갔지요. 오늘은 시간이 안 되고 담엔 '모던 데자인 전'과 '백남준 효과 전'을 관람해야겠어요. 주민으로서 장점 중 하나가 이런 거죠. '미술관 옆 동물원'이란 영화처럼'츄리닝 입고 미술관'이란 단편영화를 찍을 수 있으니까요.허허허.
미술관에 관심이 없다고요? 그럼 서울랜드는 어떠신가요? 아직 겨울이라 한산합니다. 그래도 음악 소리 쿵짝쿵짝 울리고 바이킹에선 비명 소리도 들리는군요. 열혈 십 대와 청춘 이십 대들이겠죠? 여기도 채색을 예쁘게 새로 했네요? 알록달록 놀이동산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솔직히 어른 현지인은 서울랜드에 안 가요, 애들만 보내죠.
서울랜드 반대편엔 호수 전경이 펼쳐집니다. 날이 흐려서 썩 멋지진 않습니다. 얼음이 여전히 얼어있지만 잔디밭엔 앉아있는 사람들이 꽤 보입니다. 봄이 되면 잔디밭에 빈 벤치가 없어요. 치열한 자리 전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편히 쉴 수 있는, 알고보면 무서운 곳입니다.
큰 길 말고 호수에 바짝 붙은 좁은 길이 있어요. 여름에 멋모르고 들어섰다간 강렬한 햇빛에 땀깨나 흘리게 되죠. 전 평소 이 길로 안 다녀요. 그늘이 없어 진짜 더워요. 겨울은 겨울대로 바람이 불어 춥고요. 제가 지금 안내하는 코스는 가장 쉽고 무난한 '과천 주민이 서울대공원을 걷는 법'이 되시겠습니다. 대략 1시간이 걸려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으로 적당합니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외 네 번째 방법이에요. 서울대공원 중앙 호수를 중심으로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를 거니는 길이죠. 4월 말 벚꽃 시즌 막바지, 한껏 피었다가 지면서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면 기가 막혀요! 여의도 벚꽃길은 상대가 안 돼요. 대공원에 심은 벚나무들이 서울 인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벚나무랍니다. 창경원 시절에 있던 것들을 옮겨온 것이거든요.
어느새 중앙 광장에 도착했군요. 메인 건물에서 코끼리열차가 출발하고 잔디밭 뒤로 4호선 서울대공원역이 있습니다. 검은 토끼의 해라고 여기저기 토끼들이 서있어요.
리프트 출발지에 오면 대공원을 한 바퀴 돈 거예요. 타지에서 오신 분들은 옆 주차장이나 전철역에 가시면 끝. 주민은 또 걸어가야죠, 집까지. 리프트 건물에 고고스 카페가 있어요. 오른쪽에 샛길 보이세요? 샛길을 올라 다시 뒷길로 들어섭니다. 처음에 산길에서 나왔던 그 뒷길, 맞아요.
오르막을 지나 계단 아래로 주차장과 동네가 자리합니다. 여기서 저희 집까지 걸어서 5분. 28년 차 현지인과 함께한 서울대공원 산책 어떠셨나요? 즐거우셨나요?^^
문원동은 과천역이나 시내에서 조금 먼 편이에요. 한밤중에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오면 기사님들이 깜짝 놀라셔요. 이런 야산(?)에 동네가 다 있냐고. 그래서 전 이 동네가 좋아요. 한적하고 조용하고 집 앞에 도서관도 있어요. 대공원과 청계산이 코 앞이지요. 당연히 공기가 맑아요. 아늑한 녹지에 둘러싸여 있다는 장점을 단점보다 높이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