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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10. 2023

여성의 날을 자축하는 커피나무?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오늘 여성의 날이에요! 자축해 봅니다. ㅎㅎ 여자 만세~ 저는 아침에 꽃모종 한 포트 샀네요. ㅋㅋ'


카톡으로 보내온 꽃 인증샷


비밀 책 쓰기 수업의 회원 H 님이 카톡을 보내왔다. 노란색이 흐드러진 꽃 화분 사진과 함께. 어여쁘다. 우리는 모두 고무되었다. 자축의 의미로 꽃을 하나씩 사서 인증하자고 했다. 어차피 장도 보아야 하고 시내 서점에 갖다 줄 것도 있었다. 겸사겸사 나가기로 한다.


'꽃, 고구마, 파, 양파, 고기, 여름 장갑...'


카톡에 살 것들을 적었다. 걸어가고 싶은데 장바구니를 들고 올 생각을 하면 역시 차를 가져가는 게 낫겠지. 나는 순서를 정했다. 먼저 서점에 물건을 전달한다. 다음 베이커리에서 아들이 먹고 싶어 했던 치아바타와 내가 좋아하는 스콘을 산다. 자축하는 날이므로 단골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즐긴다. 이후 장을 보고 마지막에 꽃을 산다.



타샤의책방에 달팽이윤독 2기 모집 포스터를 갖다 주었다. 물론 약간의 수다는 필수. 그러나 할 일이 많으니 대충 입을 다물고 나왔다. 빵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베이커리, 치아바타와 스콘만 살 리가 있나. 다른 빵도 넉넉하게 골랐다. 빵빵한 빵 봉투를 들고 근처 카페에 갔다.


드립처럼 내어주는 아메리카노


평소엔 핸드드립을 마시지만 오늘은 아메리카노. 이 집은 아메리카도도 엄청 맛있거든. 나의 지정석 창가 자리에 앉았다. 나는 여기에서 느긋하게 거리를 내다보는 걸 좋아한다.


상가 지하에 있는 마트에 갈 차례. 들어가는 동시에 1층의 꽃집을 스캔했다. 눈에 띈 건 화려한 꽃이 아니라 잎사귀가 반들반들한 커피나무 묘목이었다. 잎은 푸르러도 줄기가 가는 것이 아직 아기렸다. 아 커피나무라니. 베트남 달랏에서 커피 농장에 여러 번 갔었다. 커피 투어를 하기 위해서. 저렇게 어린 나무에서도 커피 체리가 열릴까? 몇 년을 키워야 하려나? 나는 꽃보다 커피나무에 반해 버렸다.


눈길로 침을 발라놓고 마트부터 갔다. 아니 돼지 목살은 물론이고 무려 한우 사태까지 세일 중? 어머 이건 사야 해! 목살 두 팩에 장조림용 한우 한 팩을 집었다. 장조림엔 메추리알이 빠질 수 없지. 딸기도 맛있겠네. 이것저것 욕심껏 담았다. 장바구니가 꽤 무거워졌다.


새로 산 장갑


다시 1층으로 올라가는 길, 스카프와 모자, 장갑 등을 파는 가게가 보였다. 작년 여름에 손가락 반 장갑을 샀는데 쓸모가 많았다. 운전할 때와 걷기 운동할 때 끼면 자외선 차단도 되면서 시원했다. 지금도 차에다 두고 쓴다. 하나를 더 장만하고 싶었다. 설마 똑같은 게 있으려나? 묵직한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장갑 코너를 뒤적였다. 어머나, 있네 있어! 작년에 사고 또 사러 왔다 하니 사장님, 이천 원을 깎아주신다. 복 받으실 거예요.



내 옆에 앉은 커퐁


아직도 나에겐 살 것이 남아 있었다. 여성의 날을 자축하는 (꽃 대신) 커피나무 묘목. 이미 두 팔이 한가득인데 화분을 들 수 있을까? 사실 이것 때문에 나온 건데 말이야, 팔이 부러져도 그냥 갈 수야 없지. 예상외로 묘목은 저렴했다, 사천 원. 나는 잎이 제일 푸릇푸릇 무성한 걸로 골랐다. 그런데 얇은 고무재질의 화분이 맘에 안 든다. 하얀색 도자기 화분에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보따리가 모두 몇 개야! 주차장까지 가는 데 정말 팔이 빠질 것 같았다. 이럴 줄 알면서도 매번 스톱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나는 짐을 차에 모셔두고 조심조심 운전을 했다. 사랑스런 나의 아기 묘목이 충격받으면 안 되니까요. 평소 나는 화초를 집에 들이지 않는다. 공식적인 이유는 집이 너무 좁아서. 사적인 이유는 신경 쓰기 귀찮아서.


아들과 2차로 에프터눈 티 타임


웬일로 식물을 다 사 왔냐며 아들이 놀란다. 이건 예외란다. 무려 커피나무잖니. 잘 키워서 커피 체리 한 번 따보련다. 내 책상에 너끈히 올라갈 만큼 아주 작은 아이거든. 참 이름을 지어줘야 해. 아들은 뭔 이름까지 짓냐며 놀리지만. 한눈에 반한 사랑인데 이름은 기본이지. 아 멋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다음날까지 고민했다. 마침내 딱 떠오른 이름 '커퐁!' 살짝 베트남스럽다. 베트남 여행에세이도 쓴 마당에 나쁘지 않은 작명이다. 여성의 날과 커피나무가 뭔 상관인지 모르겠다만, 내 맘에 기쁘면 그게 자축이다.      


'커퐁, 무럭무럭 자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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