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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Feb 16. 2023

한 번도 출근하기 싫은 날이 없었다

아라비카 사장님 인터뷰


매주 월요일, '아라비카'에 가는 날입니다. 비밀 책쓰기 수업이 있거든요. 홍보를 전혀 안 한데다 알음알음으로 소수만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은 사적인(?) 수업이지만 멤버들이 출간을 하게 되면 대단히 공적인 강의가 될 예정입니다.


아라비카는 저희 동네 문원동에 있는 카페여요. 산 아래 언덕배기에 자리했어요. 카페 마당 정면에서 가까이는 청계산 자락, 멀리는 관악산 산세가 동시에 보인답니다. 전경 한 번 끝내주죠. 더욱 훌륭한 건 바로 커피 맛. 여타 카페에 비해 원두가 두 배쯤 진한데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요, 고소하기로는 참깨가 울고 갈 지경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 입맛에 완벽하게 맞춤한 풍미를 자랑하죠. 특징을 하나 더 꼽자면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수준급의 꽃(꽂이)입니다. 꽃꽂이에 대해선 1도 모르는 제가 봐도 보통 솜씨가 아니랍니다. 우아한 생화가 늘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어요. 속으로 이 분, 소싯적에 꽃 좀 만지셨나 보다 했어요.



수업을 하려면 탁 트인 좌석 말고 (살짝 안쪽인) 조용한 자리가 필요합니다. 과천 시내 카페들을 물색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는 거예요. 달팽이윤독 모임을 하는 북 카페 '타샤의책방'과는 시간이 맞질 않았고요. 문득 떠오른 내 단골 카페, 아라비카. 왼쪽 구석에 쏙 들어간 테이블이 수업용으로 안성맞춤이겠더라고요. 집에서 걸어서 5분, 이보다 좋을 수가 있나요. 요즘은 다들 차를 몰고 다니시니까 수강생들이 찾아오는데 문제 없고요.


첫 수업 날은 찜해둔 자리가 이미 찼어요. 아 억울해라. 수업을 마치고 사장님께 육 개월 동안 매주 월요일에 올 건데 저기에 앉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흔쾌히 예약을 따로 해놓으시겠다는군요! 우리들만의 전용 아지트가 생긴 거죠. 야호, 신난다!



저는 그때 결심했어요. 이 사장님과 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의식의 흐름이 왜 그리 흘러가냐고요? 통 큰 친절에 제 마음이 말랑말랑해진 데다 그녀의 인생 스토리, 카페 스토리가 궁금해졌거든요. '맘 먹고 한 번 인터뷰를 해봐야겠다.'


다음 주, 수업 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카페로 갔어요. 마침 손님이 없어 한가하더군요. 오오 신이 내린 기회인가. 생강차를 주문하면서 "저와 함께 이야기 좀 나누실래요?" 했더니 쿨하게 오케이.


아래는 인터뷰한 내용을 사장님이 독백하는 스타일로 각색했습니다.  




2007년 과천에 아직 카페가 거의 없었던 시절, 시내 대로변에 '아라비카'의 문을 열었다. 올해로 17년째를 맞았다.  사람들이 여유롭게 쉬었다 가는 카페 문화가 좋아서 시작을 했다. 처음부터 돈을 벌려는 욕심은 없었다. 손익분기점 같은 건 따지지도 않았다.


손바닥만 한 도시 과천에 생긴 초창기 카페여서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극강의 진하고 고소한 커피 맛이 일품이다. 개업을 준비할 때 유명한 전문가에게 상담도 받고 당시 잘나가던 압구정동, 분당, 강릉 등을 찾아가 배웠다. 압구정의 허형만 선생님이 스승님인데 그분의 수업 코드가 나에게 잘 맞았다. 그분을 모델로 삼았다.


우선 내가 먼저 만족하는, 질리지 않는 불변의 맛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모든 메뉴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각각의 메뉴마다 나의 생각이 들어갔다. 생강차의 잣 하나도 엄선해서 고르고 고른 것이다.


과천 시내에서 11년 동안 카페를 운영했더니 주인이 들어온다고 나가란다. 그래서 문원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이주하느라 일을 쉬니까 오히려 힘들었다. 그동안 출근하기 싫었던 날이 한 번도 없었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지금 이 자리는 남편이 추천한 곳이다. 남편이 늘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다. 몇 천만 원 손해 봐도 다 인생 경험이니 괜찮다고 말한다.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하므로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일을 하는 편이다. 만약 내가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이라면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카페에서 십수 년 동안 선생님을 모시고 꽃꽂이 수업을 진행했다. 그 멤버들을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테이블마다 놓인 생화는 그 결과물이다. 손님들이 꽃이 예쁘다고 말씀해 주실 때가 많아서 기쁘다. 요즘은 겨울이라 꽃병이 적어졌다.


나로선 경제적인 것보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게 카페의 성공이라 생각한다. 사실 시청이나 복지관에서 오셔서 인터뷰를 자주 해보았다. 할 때마다 늘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2005년 큰 아이가 6학년 때 한 달 동안 이집트 자유여행을 했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나도 작가님처럼 여행자 기질이 있다. 간이  큰 편이다. 주말에는 가족  캠핑을 자주 간다. 국내 여행도 매해 1주일 정도 시간을 내어 남편과 같이 한다.


카페 내부 모습


나는 카페로 출근해 라테와 베이글을 먹으며 아침을 시작한다. 나의 루틴이다. 온전한 나의 공간에 들어오면 항상 편안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을 느끼므로 말하자면 성덕을 이루었다고 할까.


아들도 중3 때부터 카페 일을 시작했다. 한창 사춘기라 엇나가는 시기였는데 나는 그 대책으로 알바를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그게 먹혔다. 손님들에게 인사도 잘 못하던 아이가 자신감이 생겼고 단단해졌다. 이후 대학도 관련 학과를 갔고 이탈리아 유학도 다녀왔다. 현재 다른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들도 나처럼 천직을 찾은 것 같다. 업을 즐기는 모습이 참 고맙다. 카페를 17년 동안 하면서 얻은 것이 참 많다. 여전히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역시!!!

평소 한결같은 모습으로 온화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사장님. 강력한 외유내강의 포스를 느꼈거든요. 한 가지 일을 오래 하고 또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에선 감출 수 없는 향기가 흘러나옵니다. '단 한 번도 출근하기 싫은 날이 없었다.' 이 말에 모든 것이, 사장님의 인생과 철학이 담겨있었어요.^^


사장님이 배려해 주신 책쓰기 수업 고정석



우리 동네에는 멋진 분들이 여기저기 포진해 계시는 것 같아요. 혹시 숨은 고수를 발견하게 되면 또 인터뷰를 시도해야겠어요. 이거 아주 재밌군요. 어쩌면 이른 시일 안에 커밍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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