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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Feb 12. 2023

생두 로스팅을 해보셨나요?

만만치 않아요

커피를 애정하는 여자, 여행작가 소율입니다.

드디어 생두를 볶았어요!

연기, 색깔, 향기, 맛의 파노라마가 마술처럼 펼쳐지더군요.^^


순수하게 취미를 즐기는 시간, 바로 커피를 배우는 목요일입니다. 핸드 드립(정식 명칭은 매뉴얼 드립)만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수업이에요. 딱 제가 원했던 프로그램이죠. 지난주는 몸살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물만 흘렸더랬죠. 오늘은 룰루랄라 15분이나 일찍 도착했군요. 목 좋은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사람들을 기다렸어요.


아직 몸살의 여파가 남아 있었지만 2주 연속 빠질 수는 없고 말고요. 특히 생두를 볶는 날이란 말이죠. 사실 저는 베트남 여행 중 달랏에서 커피농장 투어를 여러 번 해보았어요. 투어에는 농장에 가서 빨갛게 익은 커피 체리를 따고 씻고 말리고 생두를 볶고 내려마시는 전 과정이 포함되어 있답니다. 원두를 생산하는 현지 농장과 우리 동네 문화센터 커피 수업의 로스팅이 어떻게 다른지 사뭇 궁금했어요.


선생님의 시범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입니다. 아하 저렇게 하는구나! 의외로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어요. 학생들 차례, 우리는 나눠주신 생두를 키친타월 위에 펼쳐 놓습니다. 먼저 벌레 먹은 것, 썩은 것 등을 골라내요. 생두에선 풋내가 납니다. 풋콩 냄새와 얼추 비슷해요. 색깔도 흐린 연두에 가까워요. 다음엔 프라이팬처럼 생긴 휴대용 로스터기에 생두를 담습니다. 스테인리스 체망처럼 생겼어요.


막 넣은 생두


가장 중요한 부분. 브루스타를 약불로 켜고 로스터기를 흔들며 볶는 거예요. 은근 팔이 아파요. 불과 생두의 거리는 약 15cm 유지. 연두가 노랑이 되고 이윽고 옅은 갈색이 됩니다. 수분이 날아가고 팽창되어 탁탁거리는 소리가 나요. 1차 크랙(crack)이에요. 약간 신 냄새와 고소한 냄새가 동시에 풍깁니다.


이젠 소리가 더욱 커져요. 전체적으로 진한 갈색으로 변하고요. 로스터기를 불에서 조금 더 멀리 놓고 흔듭니다. 한결 묵직한 향이 가득해져요. 우리가 아는 원두 냄새, 그거예요! 2차 크랙(crack)이 시작되었어요. 더불어 연기도 많이 납니다. 창문을 반드시 열어야 해요, 안 그럼 옆집에서 119를 부를지도 몰라요.  조그맣던 생두는 두 배로 커졌어요.


다크 완성!


탁탁 소리가 찌지직 소리로 바뀌는군요. 생두에서 기름이 나오는 소리예요. 반질반질한 기름기가 배어나면 불을 끕니다. 이제 다 됐냐고요? 아뇨, 그냥 두면 남은 열로 인해 새카맣게 타버려요. 얼른 원두를 쿨러에 식힙니다.



선생님은 미디엄부터 점점 진해지는 다크까지 네 단계로 볶으라 명하셨지요. 우리 팀은 대충 네 단계를 맞추었어요. 확실히 옅은 색깔의 원두에선 은근한 신 향이 나고 가장 어두운 색에선 압도적인 고소함이 흘러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지나치게 볶으면 너무 써지겠지요?


우리는 각자의 원두를 갈아 내려 마셨어요. 맛을 봐야 마침표를 찍는 거죠. 그런대로 원두는 색깔별로 볶았는데 드립 솜씨가 제각각. 아 애써 볶은 원두의 맛이 제대로 살지 않았답니다, 안타깝게도. 고품격의 커피를 만드는 일은 네,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바로 극강의 신선도! 대충 볶았어도 드립 솜씨가 엉망이어도 신선함만큼은 사 먹는 원두가 따라오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요즘 집에서 원두를 직접 볶아먹는 분들이 많은 걸까요? 그런데 엄청난 연기는 어떻게들 하시는 거죠? 튀고 날리는 껍질은 어찌 관리하시나요? 볶고 나니 주변이 엉망이 되던데요. 꿀팁이 있으면 댓글로 가르쳐 주세요!


어쨌든 결론, 베트남 달랏의 로스팅 방법과는 전혀 달랐어요. 거기에선 로스터기가 작은 원통형으로 생겼거든요. 도구가 다르니 당연히 기술도 다르고요. 중요한 건 어떤 방식이든 노련한 감각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죠. 원두는 그냥 전문가가 볶은 걸 사 먹는 걸로.


우리가 한 잔의 커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기까지 어마 무시하게 복잡한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요. 주요 커피 산지인 남미와 아프리카(브라질, 콜롬비아, 에콰도르, 에티오피아, 케냐  등)의 농장에선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커피나무를 심고 키웁니다. 커피라는 식물의 특성상 고도 1000미터 이상의 지대에서 자라니까요. 일일이 수확하고 껍질을 벗기고 씻고 말려서 생두로 만들죠. 그것이 또 여러 단계를 지나 바다를 건너 수입되고요. 로스팅을 거쳐 우리들 현관문 앞에 배송이 됩니다.


커피를 배우며 알게 된 비밀이 있는데요. 가장 고생을 하는 현지 농장 사람들의 수익이 가장 적다는 사실입니다. 커피 45잔을 팔면 농부가 받는 돈은 480원에 불과하답니다. 즉 농부로선 커피 한 잔을 10원에 판다는 이야기예요. 충격적이지 않나요?


이윤의 99%가 미국의 거대 커피 회사와 소매업자, 기타 유통업자들에게 돌아가고 겨우 1%만이 농부들 몫이랍니다. 아아 이럴 수가. 우리는 비싸게 원두를 사 먹지만 농부들에겐 쥐꼬리만큼의 수입이 남는다니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 같아요. 커피 한 잔에 숨은 무거운 진실 때문에 가끔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집니다. 생산자가 대접받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도 커피는 맛있어요. 흑흑.

에티오피아 시다모를 사랑합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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