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지방 출신이다.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들어가지 못 할 뻔했다. 다행히 입학은 했지만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학비, 생활비를 직접 벌어서 학교에 다녔다. 남편의 꿈은 프로듀서였다. 그러나 당장 학비, 생활비 버는 것이 고시 준비 더 중요했기 때문에 꿈을 접고 회사에 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남편이 회사에 들어갈 때쯤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는 결혼 전부터 열심히 돈을 모아 빨리 집도 사고 기반도 마련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 목표를 위해 우리는 맞벌이를 하고, 남편은 주말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쌍둥이를 하늘로 보내고 병원에 누워있던 어느 날, 남편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회사 그만두면 어떨까? 물론 맞벌이를 하면 노후에 어느 정도 여유 있게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식이 없는 노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퇴원하고 며칠 후 나는 사직서를 냈다. 사직서를 내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집도 없었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모아둔 돈은 겨우 전세 보증금뿐이었다. 그것도 일부는 대출이었다. 아직 기반을 잡았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두려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용감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쌍둥이를 하늘로 보내면서 소중한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마음이 정말 간절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집에만 있으니 처음에는 정말 편하고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모임 하나를 소개하면서 집에만 있기 답답할 테니 사람들 좀 만나보라는 제안을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때 모임은 <맞벌이 부부 10년 10억 모으기>라는 이름의 인터넷 카페에서 주최한 재테크 초보자를 위한 정규 강의였다.
재테크 강의는 처음이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재태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강사가 말하는 이야기는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 같았고 가끔 사기치는 것이 아닌가 의문도 들었다.
“10년에 10억을 모으려면 1년에 1억을 모아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 가족 1년 수입이 1억이 안 되는데 어떻게 10년에 10억을 모은다는 말이람”
당시 부동산 상황을 돌이켜보면 서울은 공급과잉으로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었고, 매일 언론은 강남 아파트 가격 하락을 다루고 있던 때였다. 정부는 부동산 취득을 장려하기 위해 취등록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정책을 통해 무주택자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나 역시 아파트 가격이 계속 내려갈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관심도 두지 않았고, 주식은 시작할 생각도 없었다. 재테크 강의는 신선하기는 했지만, 종잣돈이 없던 나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게다가 우리 부부는 대출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30대 초반 남자 한 분과 집이 같은 방향이라 같이 버스를 탔다. 그 남자분은 옆자리에 앉아 계속 부동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만 끄덕였다.
(남자) “부산에 부모님 명의로 산 아파트가 전세 만기인데 팔아야 할지 고민이네요.”
( 나 ) “언제 사셨는데요?”
(남자) “3년 전에요.”
그분은 부산 말고도 지방에 오래된 아파트를 몇 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부동산 하락기에 왜 아파트를 그것도 지방에 오래된 아파트를 샀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 부부의 돈 관리는 남편이 담당했다.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돈 관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월급을 받으면 그냥 남편 통장으로 보내고 나는 용돈을 받아 썼다. 나는 재테크 무관심 그 자체였다.
강의를 다녀오고 며칠 후 저녁 남편이 이야기 좀 하자며 식탁에 앉았다.
(남편) “이제 우리 집 돈 관리를 당신이 하는 게 어떨까?”
( 나 ) “어? 갑자기 왜?”
(남편) “직장도 관뒀는데 돈 관리까지 내가 하면 당신 존재감이 없잖아.”
( 나 ) “그래? 그럼 내가 해볼게.”
나는 쿨 하게 남편이 가지고 있던 모든 통장을 넘겨받았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괜한 책임감이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월급을 키울 수 있는 고정적인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