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어느 봄날, 한 번의 이별 이후 힘들어하던 우리 부부에게 쌍둥이가 찾아왔다. 우리 부부는 쌍둥이와 함께 만들어갈 날들을 그려가며 매일매일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그날 나는 퇴근하고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졌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던 순간, 다리 사이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고 그 온기를 품은 액체는 천천히 흘러내리며 다리를 적시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고 계속되는 고통은 나를 바닥에 주저앉혔다. 바닥을 기어 휴대전화를 찾았고 119를 불렀다. 119 구급대원들이 몇 분 후에 도착했지만 나는 고통 때문에 바닥을 구르고 있었기 때문에 구급대원들에게 문을 열어줄 수 없었다. 현관문 바깥에서는 구급대원들이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고 있었고, 고통 때문에 바닥을 기고 있는 내 안에서는 두려움이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산부인과로 옮겨졌다. 그때 임신 20주였다. 의사는 양수가 터졌다고 했다. 너무 일찍 터져버린 양수로 배 속 아이들이 내려왔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고통과 희미한 의식으로 버티고 있던 내 귀에 급하게 뛰어온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아이라도 구할 수 없느냐고 소리치는 남편의 목소리. 그리고 두 아이 중 한 아이만 내려왔지만, 쌍둥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도 뱃속에서 꺼낼 수밖에 없다는 의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옆에 앉아 슬픈 얼굴을 하는 남편이 보였다.
“아이는? 아이들은 어떻게 됐어?”
남편이 조금은 냉정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의사가 준비 중이야. 네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그때 분만을 할 거래.”
나는 눈물을 흘리며 내 배를 만졌다. 어쩌면 이것이 아이들의 심장을 느끼는 마지막 순간일지 모른다는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들에게 속삭였다.
“미안해 얘들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그날 자정쯤 우리 부부는 세상 빛을 보기에는 너무나도 여린 아이 둘을 그렇게 보내고 말았다.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함께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는데. 정말 허무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만질 수 없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만이 끝났을 때쯤 천안에서 급하게 올라온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 얼굴을 보자 그동안 쌓였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애써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소리를 지르며 목이 쉬는 줄도 모르고 울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가 온 것을 보고 집에 옷을 가지러 간 남편은 길에 차를 세우고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나 때문에 눈물을 참고 있었던 남편은 자동차 핸들에 얼굴을 묻고 일어날 힘도 없을 때까지 울었다고 했다.
어린 아들이 자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가끔 그날 일을 이야기 하곤 한다.
(나) “만약 그 아이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이 녀석을 만나지 못했겠지?”
(남편) “아니야. 그래도 이 녀석은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나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여기 잠들어 있을 거야.”
(나) “그런데 나 말이야. 그때 그날 기억이 별로 없어. 그냥 분만하고 덤덤하게 병원 문을 나온 것 같은 기억뿐이야.”
정말 그랬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아이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병원문을 나선 기억뿐이었다. 아마 나는 그날 기억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린 것 같다. 생각하면 절대 참지 못할 것 같아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느끼며 기억의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며칠 후 가까운 절에 들렀다.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절이었다. 하늘로 돌아간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우리 마음만 추스르느라 아이들 이름 한 번 떠올리지 않았던 것이 너무 미안했다.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 아빠 목소리 한번 들려주고 싶었다. ‘태중 영가’라고 적혀있는 등을 올렸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절을 떠날 때까지 우리 부부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 “여보, 그 아이들, 하늘로 돌아갔다가 지금 다시 세상에 내려와 살아가고 있겠지?”
(남편) “그럼~ 지금쯤 좋은 부모 만나서 사랑 많이 받으며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을거야”
그날 이후 10년이 지났다. 지난 10년 동안 가끔 아주 가끔 아이들이 떠올랐지만 아주 잠시였다. 그렇게 거의 잊은 것처럼 기억을 들춰내지 않고 살아왔다.
10년의 세월 덕분에, 지금 아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서 이제는 아이들이 떠올라도 조금은 편안해졌다. 분명히 이 세상에서 숨을 쉬었던 아이들이었다. 그 오랜 시간 그 아이들을 애써 기억하지 않고 잊고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가끔은 기억해주고 싶다. 그 아이들이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밤을 환하게 비추는 연꽃 등의 향연으로 석가탄신일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었다. 연꽃 등을 보니 그 아이들의 태명이었던 ‘화랑이’, ‘샛별이’ 생각이 났다.
“아가들아. 엄마, 아빠는 너희를 잊지 않을 거야. 너희도 엄마, 아빠가 너희를 기억할 수 있게 가끔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들어와 주렴. 귓가에 들려주지 못했지만 정말 사랑한다 아가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