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역설

공평함과 정의의 간극

by 노는여자 채윤

정부의 부동산 규제 발표 후 열흘이 지났습니다. 규제의 파도를 피해 매수자들이 지나간 자리는 다음 지역으로의 풍선효과를 불러왔습니다. “규제의 칼날은 가장 약한 곳으로 향한다”는 말처럼, 시장 곳곳에서 의도치 않은 불균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구분상 오피스텔이나 빌라라는 이유만으로 서울 강남의 초고가 주택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제외되었고, 반면 시세 1억 원 미만의 서민주택은 허가구역에 포함되었습니다. 상업지에 위치하거나 대지 면적이 적다는 이유로 고가 아파트가 규제에서 빠진 경우도 있습니다. 응당 규제를 적용받아야 하는 곳은 자유롭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곳은 규제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데요. 이는 개별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 규제의 모순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플라톤은 “평등이란 모두에게 같은 신발을 신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발에 맞는 신발을 신기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정의란 획일적 공평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에 맞게 손을 내미는 세심한 배려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모순은 비단 우리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일률적 대출규제를 시행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현금 부자들의 시장 진입은 더 쉬워지고, 서민과 신혼부부는 주택 접근성을 잃었습니다. 영국의 스탬프 듀티 개편은 고가 주택을 겨냥했지만, 중간층 거래만 위축시켜 시장의 숨통을 막았습니다. 또한 독일 베를린의 임대료 상한제는 서민 보호를 목표로 했으나, 신규 공급이 급감하며 결국 주거난을 심화시켰습니다. 이는 선의로 시작된 규제가 형식적 평등에 머물 때, 그 결과는 불평등으로 되돌아온다는 공통된 교훈을 남겼습니다.​

규제의 의도는 정의였으나, 실행의 결과는 아이러니였지요. 이때 떠오르는 곡이 있습니다. 사무엘 바버의 "Adagio for Strings"인데요. 격렬한 현악의 흐름 속에서 억눌린 울분과 침묵이 공존하는 곡입니다. 영화 "플래툰"에 삽입된 곡이기도 합니다.


그 선율처럼, 제도적 평등의 표면 아래엔 말하지 못한 고통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결국, 공평함이 언제나 정의로운 것은 아닙니다.

정의는 숫자나 규칙의 균형에서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향한 세심한 시선에서 피어납니다.


진정한 공정은 모두에게 같은 신발을 신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발에 맞게 신발을 건네는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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