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디자이너에서 PM으로 – 좌충우돌 적응기

by Sue


디지털 제품, 즉 프로덕트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추구해왔고 이루고싶었던 업(業)이었다. 지금 나는 프로덕트 매니저(PM)로서 프로덕트의 책임을 지는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사실 나의 시작은 프로덕트 디자이너였다.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통해 얻은 기쁨과 한계를 마주하며, 내가 디자이너를 넘어 제품 전반을 이끄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디자이너에서 기획자로

7년 동안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쌓은 경험을 뒤로하고, 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 이유는 디자이너로서 제품의 미적, 경험적 측면에 집중하다 보니 프로덕트의 성공 여부를 종합적으로 책임지는 역할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고, 더 많은 책임을 맡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다. 결국 회사에서 ‘기획자’라는 포지션을 담당할 기회를 잡았다. 직책의 이름은 기획자였지만 실제로 내가 하는 일은 시장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PM(프로덕트 매니저)에 더 가까웠다. 이는 제품의 개발, 운영, 데이터 분석 등 다방면에 걸친 폭넓은 역할을 의미했다.

처음부터 제품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신규 프로덕트를 만드는 역할을 맡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운영 중인 서비스를 유지·보수하고 개선하는 것이 내 주된 업무였다.

기획자로서 일하면서 가장 먼저 직면한 변화는 생각의 확장이었다. 디자이너 시절에는 화면의 UX/UI에 집중하면 됐다. 하지만 기획자의 역할은 훨씬 더 넓고 깊었다. 단순히 화면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정책을 정의하고 엣지 케이스를 고려하며, 개발 공수와 법적 이슈, 사용자 경험까지 전반적으로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로 정리해야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정책을 정의한 뒤 리뷰를 거치면, 질문이 쏟아졌다. "이 기능은 이런 상황에서도 문제없이 동작하나요?", "이 정책을 적용하면 기존 사용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처음엔 이런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할 때마다 "난 아직 부족한 기획자인가 봐"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심적 부담감을 느끼면서 시작하게된 기획자 커리어로서, 하나씩 어려움을 정면돌파해 나가면서 업무를 해나가고 있다.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 속으로

기획자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오래된 서비스의 비즈니스 로직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담당하는 서비스는 8년간 기능과 정책이 쌓여서 지금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러다보니 예상치 못한 예외 케이스들, 새로운 법규나 고객 불만이 제기될 때마다 급하게 적용된 기능들이 뒤엉켜, 비즈니스 로직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문서에 의존하려 했지만,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결국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 정책이 처음 생긴 배경이 뭔가요?", "이 로직이 이렇게 동작하는 이유가 있나요?" 하고 끈질기게 물어야 했다. 답을 찾을 때까지 수소문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나씩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서 제품의 역사와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리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지만, 이 일이 가진 특유의 매력이 분명 존재했다. 그 매력을 찾지 못했었다면 나는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PM의 매력: ‘키맨’

PM(혹은 PO)을 가리켜 ‘키맨’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서비스의 방향을 결정하고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권력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권력욕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남의 말을 따르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디자이너 시절, 나는 종종 "이런 기능이 필요하다",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실제 제품 로드맵에 반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기획자의 역할을 맡고 나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로드맵을 구성하고, 필요한 과제를 발의하는 일이 내 업무가 되어있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품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물론, 모든 책임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은 부담스러웠지만, 동시에 내 목소리가 제품에 담긴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


달라진 협업 방식

PM이 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협업의 방식이었다.

개발자들과는 협상 메이트가 되어야 했다. 기능 개발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개발 공수를 고려해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했다.

디자이너들과는 멘토-멘티 관계처럼 일했다. 디자인은 나의 근거지였지만, 이제 디자인에 집중하기보단 디자이너에게 더 나은 UX를 발굴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했다.

데이터 팀과도 긴밀하게 협업해야 했다. 정량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데이터 수집부터 분석까지 익혀야 했다. 어떤 현상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앱에서 로그데이터를 수집하려고 할 때 데이터 항목을 정의하는 것부터 어려웠다. 그러나 개발자, 그리고 선배 기획자들의 도움으로 하나씩 해결해갈 수 있었다.

이전까지 오로지 나의 일에만 집중했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협상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매니징의 커뮤니케이션이 추가가 된 것이다. 수평적, 수직적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관해 노하우를 길러나가야만 했다.

이런 협업 방식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것은 PM은 단순히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최선의 결정을 이끌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시선과 기획자의 균형

아직 나는 PM의 도입부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디자이너의 시선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

개념을 이해하려면 시각적인 자료가 반드시 필요했고, 어떤 정책을 접하면 "이것이 사용자에게 미칠 영향은?", "사용자 경험은 유지될까?" 같은 질문이 습관처럼 떠오른다. 하지만 기획자로서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공급자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때로는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사용자 경험에 일부 타협이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PM으로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은 분명 흥미롭고, 배울 것이 많으며,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B2B 소프트웨어의 UX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