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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ung Lee Dec 08. 2016

Le Totem(토템)

우스꽝스러운 나르시즘 

copyrignt (c) eiditon seuil jeunesse


Le Totem 토템

Gilles Baum / illustration par Thierry Dedieu

Date de parution 01/09/2016

15.00 € TTC

40 pages

EAN 9791023506617

(이미지 출처:seuil jeunesse)


인디언 마을에 고약한 폭풍이 몰아치고 결국 천둥으로 마을 성상이 부서집니다. 마을 족장은 아티스트에게 새로운 성상을 만들라고 지시하지요. 아티스트는 덩치가 크기도 하고, 키가 무지하게 크기도 하고, 보기에 무척 정교하기도 한 성상 등 여러 시도를 하지만 매번 족장에게 퇴짜를 맞습니다. 깊은 고민에 빠진 아티스트는 마침내 좋은 생각을 해냅니다. 그리고 바로 작업에 착수합니다. 그의 마지막 결과물은 족장에게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바로 족장 그 자신과 똑.같.은. 조각상이었지요.


이 인디언 마을에는 신기하게도 다른 인디언들은 없습니다. 등장은 하지만 표정, 몸짓이 없는, 즉 역할이 없는 존재로 나옵니다. 독자에게는 족장과 아티스트, 그리고 그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당나귀가 있을 뿐입니다. 서부영화를 보는듯한 황량한 벌판은 헐벗어 있고 마을은 터무니없이 작고 초라합니다. 이 안에서 과연 성상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강한 색감의 대비로 마치 무성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이 그림책은 텍스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만화의 형식을 적극 취하지도 않습니다. 그림체가 다만 만화에서 보이는, 즉 다른 불필요한 요소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진액만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어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이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이 성상에 대한 원시적이기까지 한 족장의 집착은 문명시대의 말과는 조금 다른, 즉 말을 하고 있지만 통역을 할 수 없는 외래어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화만 내면서 재촉하는 족장을 보며 독자는 과연 그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점점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그에게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티스트는 점점 안쓰러워집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아주 작고 별 볼 일 없이 그냥 족장의 조각상을 성상이라고 좋아하는 족장을 보며 우리는 한심한 그의 나르시시즘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제까지의 아티스트의 노력이 허무해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성상은 삭막한 벌판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고 보지 않는 성상, 그 성상에 집착하는 족장, 그 족장에게 충성하고 잘 보이려는 아티스트, 자신과 똑같은 성상에 매우 만족하는 족장. 이 설정은 지금 요동치고 있는 한국 정치판을 풍자하는 듯 보입니다. 족장의 성상에 대한 집착,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성상에 매우 만족하는 모습은 홀로 자기만족에 사는 무능력하고 외로운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듯합니다. 우스꽝스러우면서 안쓰러운 인간상입니다. 또 그런 족장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티스트의 모습도 그다지 현명하거나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들을 조롱하듯, 한심하게 바라보는 당나귀만이 제대로 된 생각이 있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언젠간 이 성상도 폭풍우가 오게 되면 벼락에 맞아 부서질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지금 한국에서 촛불시위로 정치판이 흔들리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나르시시즘과 무능력으로 가득 찬 대통령이 가진 환상, 인맥, 그리고 그녀의 정치기반을 한번 부숴줄 벼락이 내리치고 있는 셈입니다. 부디 다음에는 이런 한심한 성상, 혼자만 좋아하는, 어느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는 허허벌판 위의 쓸모없는 성상이 아닌 모두의 마음에 진짜 믿음직스러운 성상을 심어주는 현명한 족장이 나오길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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