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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ung Lee Feb 09. 2017

Otto(오토)

곰인형의 자서전


Otto, Autobigraphie d'un ours en peluche

Tomi Ungerer 

Ecole des Loisirs (24 mai 2001)

French version

31pages


오랜만에 다시 글을 씁니다. 연말연초에 여러 일들이 겹치고 터져서 한동안 손을 놓으니 손을 또 계속 놓게 되네요. 쓸 책은 쌓아두고 타이핑은 하지 않으니 게으른 자신만 탓하게 됩니다.. 자자, 다시 시작하려고요. ^^


다양한 사회의 부조리들을 어린이책에 훌륭하게 반영하는 작가 Tomi Ungerer(토미 웅거러)의 작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명작을 많이 만든 작가라 어느 책부터 써야 할지 잠시 망설였는데요, 유명한 Les trois Brigands(세 강도), Le Géant de Zeralda(제랄다와 거인), Pas de baiser pour Mamon(No kiss for Mother), Emile(에밀), Jean de la Lune(달에서 온 장), Le nuage bleu(파란 구름) 등이 있으며 한국에 번역된 책들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들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일반적으로 토미 웅거러는 정치적, 사회적 비판과 풍자를 어린이들의 구미에 맞게 익살과 유머를 섞어 잘 구현하는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책에는 전쟁, 거인, 도둑, 뱀, 밤 등등 어둠과 공포를 상징하는 소재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는 그의 유년시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토미 웅거러는 프랑스인입니다. 프랑스 동쪽 알자스 지방(독일 국경과 맞닿아 있는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에 알자스 지방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에 점령되면서 전쟁이라는 끔찍한 경험을 몸소 경험합니다. 프랑스인이면서도 프랑스 말, 문화, 음식 모두 쉬쉬 숨어서 해야 했고, 강압적으로 독일어를 배워야 했으며, 수시로 폭격을 피해 지하실로 숨어야 했습니다. 더불어 어렸을 때 겪은 아버지의 죽음은 토미 웅거러로 하여금 아버지를 이상화, 신격화하게 만듭니다. 토미 웅거러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전쟁과 나치, 폭격에 대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가 본 것, 그가 직접 보지 못한 것은 엄마에게 물어서라도 모두 그려냅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곧 미술학교에 진학하게 되지요.


하지만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열린 땅 미국으로 향하면서 그는 본격적인 성공세를 탑니다. 다시 말해 50년대 미국은 일러스트레이션의 황금기였던만큼 그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그의 그림은 금방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잡지, 신문, 광고뿐 아니라 전시, 어린이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합니다. 특히 어린이 그림책은 매 권마다 성공을 하고 상도 휩쓸 만큼 인기가 좋았습니다. 당시 미국의 문화는 청교도 문화와 자유의 문화가 서로 충돌하면서 야릇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이 볼 그림책에는 교훈적 내용, 아름답고 예쁜, 재미있고 귀여운 이야기와 일러스트들이 대부분이었지요. 하지만 토미 웅거러는 아이를 먹는 거인, 강도, 총, 뱀, 문어 등등 흔히 다루지 않는 소재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어린이들은 그의 상상력과 위트에 열광했습니다. 

더불어 토미 웅거러는 포르노성이 강한 만화풍의 에로티시즘 데생 작업도 같이 병행합니다. 토미 웅거러에게 섹슈얼함은 동물과 인간에게 모두 있는 본능이지만, 에로티시즘은 달랐습니다. 환상과 즐거움이 있는 행위였고 그는 그 즐거움을 데생을 통해 만끽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책 분야에서는 작가가 포르노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이유로 그의 어린이책 출판을 거부했고 미국 모든 도서관에서 25년간 그의 책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뉴욕에서 쌓은 10여 년의 캐리어가 한 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캐나다로 가족과 함께 떠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책은 livre poche로 무선제본된 작은 크기의 책입니다. 실제 원판은 양장제폰에 훨씬 큽니다.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또 하기로 하고 그의 그림책 Otto, Autobigraphie d'un ours en peluche(오토, 곰인형의 자전적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한 곰인형의 자서전인 이 그림책은 프랑스와 독일에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첫 장면에서 우리는 현재의 오토를 봅니다. 눈에 푸른 얼룩이 있고 온 몸이 찢긴 흉터로 가득하며 가슴에는 총 맞은 자국도 있습니다. 더럽고 지친 이 곰은 자신이 태어난 시점으로 돌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시작합니다.


오토는 인형 공장에서 눈이 달림과 동시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곧 독일인 유대인 소년의 생일선물이 됩니다. 소년은 다비드입니다. 다비드와 가장 친한 친구 오스카는 곰인형에게 오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요. 이 셋은 항상 같이 놀았습니다. 다비드와 오스카는 오토에게 타자 치는 법을 가르쳐주다가 잉크를 쏟아 오토의 얼굴이 큰 점박이가 생겼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다비드 가족은 가죽옷을 입은 군인들에게 끌려갑니다. 가슴에 노란 별을 단 외투를 입은 다비드는 오스카에게 오토를 주며 떠납니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을 실은 트럭은 어디론가 가지요.. 갑자기 혼자가 된 오스카는 오토에게 묻습니다. "넌 다비드가 어디 있는지 아니?"



오스카에게 또 다른 시련이 오네요.. 아버지가 전쟁터로 나가야 합니다. 오토는 오스카 옆에서 가족들이 서로 헤어지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곧 오스카 마을에 폭격이 떨어져 오토는 오스카와 함께 피난길에 오릅니다. 하지만 폭탄에 맞아 검은 연기 속으로 떨어지고 정신을 잃지요. 그러다 한 미국 군인의 손에 들어오고 그 군인 대신 총을 맞게 됩니다. 군인은 오토 덕분에 자신이 살았다면서 신문에 오토 이야기를 내보내고 오토는 훈장까지 받을 정도로 유명해집니다. 그리고 군인 가족과 함께 두 번째 보금자리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오토가 있는 곳은 미국 슬램가였던 모양입니다. 흑인 어린이 이들의 짓궂은 장난과 폭력 속에서 오토는 눈이 뜯기고 야구방망이로 맞아서 온몸이 너덜너덜해져서는 쓰레기통에 무참히 버려집니다.

다음날, 쓰레기를 뒤져 빈병과 종이를 수거하는 한 늙은 할머니는 오토를 중고가게 아저씨에게 가져다 주지요. 가게 주인은 콜렉터들에게 인기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가게 쇼윈도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리고 거기 앉아서 오토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한없이, 계속..



어느 날 어떤 할아버지가 빚 속에서 자기를 계속 바라보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오토를 단번에 사지요. 바로 그는 오스카였습니다. 오스카는 바로 신문에 광고를 냅니다. '독일 관광객, 전쟁에서 살아남아 미국에서 자신의 애착 인형을 발견하다..' 그리고 오토의 사진을 넣습니다. 곧 전화가 울리지요.. 바로 다비드였습니다. 



다비드와 오스카는 다시 만나 그동안의 소식을 전하지요. 다비드는 수용소에 갔었고 가스실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오스카도 폭격 이후 부서진 건물에 깔렸지만 살아남았고 엄마와 아빠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이 둘은 외롭게 홀로 살고 있기에 다비드와 오스카는 서로 같이 살기로 합니다. 오토는 이제 다시 새 가족을 찾았습니다. 늙은 오스카와 다비드와 함께요. 


이 책은 가슴 아프고 끔찍한 과거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어조가 오히려 더 큰 감동과 울림을 줍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오토가 독자에게 말을 합니다. 독자는 오토가 살아있는 한 인물로 인식해버리지요. 하지만 정작 인형인 오토는 전쟁과 폭력, 헤어짐, 죽음이라는 시련과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늘 같은 표정을 유지하며 무덤덤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큰소리 하나 못칩니다. 한 인간이라면 느껴야 할 분노, 절망, 좌절, 고통은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독자들이 그 감정을 느끼게 만들지요. 이 점이 이 책이 뛰어난 문학(그림책)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솔직히 토미 웅거러의 그림체는 예술적이거나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아이디어와 콘텐츠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머리를 환기시켜주게 하지요. 이 오토 그림책 역시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빼어난 문학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두운 소재이지만 '지나간 이야기'이기에 거리를 두며 이야기할 수 있고, 또 다비드와 오스카, 오토 이 셋 우정이라는 따뜻한 소재 덕분에 독자의 마음을 뒤흔드는 불편함은 없습니다. 오히려 슬프고 애잔한 감동을 주는 그림책입니다. 동시에 이 담담한 이야기 속에 녹아든 죽음, 아픈 기억, 상처, 헤어짐, 그리고 전쟁이 우리에게 남겨준 고통들에 대한 날 선 비판도 어김없이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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