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ung Lee Mar 14. 2017

Mère Méduse(메두사 엄마)

엄마의 딸을 향한 소유욕,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딸


Mère Méduse(메두사 엄마)

Kitty Crowther

L'école des loisirs

2014.11


오늘은 La visite de petite morte의 작가 Kitty Crowther의 신작 Mère Méduse(메두사 엄마)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벨기에 출신의 그림책 작가 Kitty Crowther는 이미 스타작가인데요, 미스터리하면서도 추상적인 소재를 환상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데 아주 뛰어난 작가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귀여우면서도 그로테스크한 그림체도 이런 미스터리하고 신비로운 이야기에 아주 적합하지요.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꿈틀거리는 뱀이며, 보는 이를 돌로 만들어버리는 괴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탐스려운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의 동침 때문에 포세이돈을 사모하던 아테네의 저주로 흉측한 뱀 머리카락과 얼굴을 가지게 되었지요. 아테네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여성성이 다소 부족한 신입니다. 반면 메두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여성의 몸과 그에 따르는 지혜를 상장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아테네의 저주로 흉측하게 된 메두사는 아테네의 사주를 받은 페르세우스에 의해 죽음을 맞지요. 태생 자체가 여성성이 부족한 그리스 지혜의 여신 아테네는 남성의 힘을 빌어(제우스, 페르세우스) 여성성의 신비로운 지혜로 대변되었던 메두사를 두 번 죽인 셈입니다. 여하튼 메두사라는 캐릭터에는 독사, 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 이외에 여성성, 삶과 죽음, 지혜라는 메타포도 이면에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메두사의 여성성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가 나온 걸까요? 이 Mère Méduse그림책은 머리카락이 무지하게 긴 엄마 메두사와 딸 이리제(Irisée)의 이야기입니다.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신비한 힘이 있어 손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그녀의 이 살아있는 머리카락, 거기에 깃든 신비한 힘만으로도 우리는 신화 속 메두사를 연상시킬 수 있지요. 하지만 동시에 제멋대로 길은, 길어도 너무 긴 머리카락은 그녀가 약간 야생적이면서 시대에 동떨어져있는 인물로도 보입니다. 아마도 소외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고, 야생적인 한 여자가 어렵게 가진 아이를 어떻게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지, 그들이 어떻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책의 면지입니다. 뜬금없지만 정말 센스있는 선택인 것 같습니다. 해파리 다리들이 마치 메두사 머리카락같지요. 신비롭고 영롱한 해파리와 이 그림책 이야기와도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어느 밤,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고, 보름달이 신비롭게 비추는 밤에 두 산파가 바삐 어디로 갑니다. 이 두 산파는 어느 집에 도착합니다. 이 집에는 머리가 몹시 길다 못해 머리카락 그 자체인 것 같은 여자가 있지요. 산파는 이 여자를 메두사라 부릅니다. "자, 이제 일 시작합니다. 특히 당신 머리카락을 잘 간수해요, 메두사." 

남편도 없이 어두컴컴한 집에서 메두사는 두 산파의 도움으로 딸을 낳습니다. 엄마 메두사 팔과 머리카락 속에 푹 파묻혀 새근새근 자는 아기는 그 어디보다 따뜻한 잠자리를 얻은 듯합니다.



이렇게 그녀의 딸 이리제의 삶이 시작됩니다. 엄마 메두사 머리카락 속에서 말이지요. 메두사는 생각합니다. '넌 나의 진주, 겹겹이 싸여있는 조개껍질 속 소중한 나의 진주.' 메두사는 머리카락으로 이리제를 포대기처럼 업고 다니고, 안고 다닙니다. 어느 날 메두사는 이리제를 마을 사람들에게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이리제의 너무 예쁜 모습에 너도 나도 안아보겠다고 손을 뻗습니다. 하지만 메두사는 더욱더 강하게 이리제를 머리카락으로 꽁꽁 감싸 안습니다. "안돼요. 안지 마세요. 내 아이예요." 메두사는 '넌 내 진주, 난 너의 조개껍데기가 될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이리제를 안고 불안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옵니다.


저 머리카락으로 이유식 주는 장면은 정말 따라해보고 싶습니다. 지금도 육아를 하는 저로서 참 부러운 장면이네요.


이때부터 메두사와 이리제의 둘 만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메두사는 타인과의 교류를 끊은 채, 홀로 이리제를 기르지요.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마치 마법 같습니다. 이리제의 침대도 되고, 밥을 주는 손도 되고, 걸음마할 때 보조기도 되고, 높은 나무의 새 둥지도 거뜬히 올려주는 기중기도 되고, (저도 이런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요!) 하지만 이리제는 점점 커가면서 친구 들고 같이 놀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메두사와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리제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리제는 엄마에게 묻지요. "학교 가도 돼요?". 메두사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내가 널 가르치겠다." 이리제는 엄마 머리카락으로 글자를 배우고, 메두사 놀이를 하며, 혼자 놀거나 엄마와 늘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 날 해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창 너머로 바라보는 이리제는 메두사가 여러 놀이를 제안해도 시큰둥합니다. 마침내 메두사는 묻습니다. 학교 가고 싶냐고. 이리제는 너무 좋아하지요. 그 모습에 메두사는 이리제를 학교에 보냅니다. 이따 데리러 가겠다는 메두사의 말에 이리제는 "아니에요. 엄마는 올 수 없어요. 다른 아이들이 무서워해요."라고 말하며 학교로 향합니다.


이리제 주변에 5~6 마리의 신비한 생명체들이 꼬물꼬물 늘 따라다닙니다. 이리제의 주변을 맴돌면서 외롭지 않게 지켜주지요. 이리제의 수호신일까요? 이리제의 상상친구들일까요?


학교에서는 이리제를 모두 반갑게 맞아줍니다. 이리제는 사람들 앞에서 책도 잘 읽지요. 하교시간에 모두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헤어지는 아이들 속에서 이리제는 쓸쓸해집니다. 그때 뒤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리제는 뒤를 돌아봅니다. 바로 머리카락을 싹둑 자른 엄마, 메두사가 반갑게 이리제를 맞아줍니다.



메두사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스스로 혼자를 선택한 인물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그림책 속에서 메두사는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 해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만큼 신비로워 보이는 자연과 함께 어울리지요. 하지만 딸 이리제는 점점 커가면서 엄마와는 달리 사람들을 향해 두 팔을 강하게 벌립니다. 메두사는 걱정스럽고 염려됩니다. 마법 같은 힘으로 이리제를 기르고 이리제와 놀아주지만 이리제의 사람에 대한 강한 애착은 점점 커져갈 뿐입니다. 처음에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딸 이리제를 위한 거대한 보호막이며, 동시에 메두사의 강한 모성애를 상징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메두사의 모성애는 너무 지극한 나머지 경계와 소유욕으로 점점 변해버립니다. 이리제도 이를 느낀 걸까요? 엄마의 머리카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서로 다른 이 두 모녀는 각자의 다름을 강요하거나, 꾸짖거나,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이리제는 엄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면서 타인과의 교감도 원합니다. 메두사는 이리제의 요구를 처음에는 들어주지 않습니다. 걱정과 집착 때문이지요. 하지만 메두사는 이리제를 평생 자신의 머리카락 속에만 있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리제가 학교에 간 날, 바닷가의 털북숭이 같던 '메두사'가 아닌 깔끔하게 머리를 자른 멋진 '엄마'로 변신합니다. 딸을 위해 메두사가!!! 자신의 가장 큰 상징이었던 머리카락을!!! 딸을 위한 성스럽고 신비로운 보호의 영역을 과감히 버린 것이지요. 이제 메두사는 진정한, 어떤 의미에서 더 큰 엄마로 성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물리적인 보호보다는 이리제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 더 큰 모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걸까요? 



마지막에 머리카락을 자른 메두사의 모습을 보며 엄마의 깊고 조용한 사랑과 희생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딸을 안으며 웃는 웃음 뒤에 메두사가 홀로 흘린 눈물과 갈등이 느껴져 가슴이 애잔해지는 그런 그림책이었습니다. 저도 엄마가 돼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위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버리면서 우리들을 사랑해주셨다는 것을요. 



** 책 말미에는 짧은 작가 노트가 있습니다. 메두사가 다른 머리카락은 바다뱀이 되어 떠났다고 하네요. ^^ 이리제를 따라다니던 꼬물거리는 친구들이 배웅해줍니다. 마법같은 이야기,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그림들속에 이런 깨알같은 재미들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Otto(오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