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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ung Lee Dec 09. 2016

La Visite de Peitite Mort

죽음과 소녀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 

La visite de petite Mort

Text & illustration : Kitty Crowther

Edition : Pastel 

2004


이번에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 Kitty Crowther(키티 크라우더)의 작품입니다. Kitty Crowther는 그림책에서 다루기 어려운 주제나 추상적인 내용을 철학적, 시적으로 너무나 아름답고 잔잔하게 풀어내는 뛰어난 작가입니다. <Dans moi>(texte d'Alex Cousseau, MeMo, 2007)에서는 자기 성찰과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Annie du lac>(L'École des loisirs, 2009)에서는 우울과 고독으로 자살하는 Annie의 이야기를, <Mère Méduse>(Pastel-L'École des loisirs, 2014)에서는 극진한 모성을.. 등 대표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그녀의 그림책입니다. 



La visite de petite Mort는 한국말로 <작은 죽음의 방문>..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죽음(혹은 저승사자)은 외로움을 많이 타고 친절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슬퍼하지요.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곧 죽을 사람들은 죽음을 보고 무서워서 벌벌 떨거든요. 죽음은 죽을 사람들을 죽음의 왕국으로 데려가 잠시 쉬게 둡니다. 벌벌 떠는 사람들을 위해 벽난로에 불을 피우지만 사람들은 지옥불이라며 싫어하지요. 죽음은 매번 이런 식이라 중얼거리며 한숨을 쉽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소녀 Elsewise(엘스위즈) 집에서 죽음은 깜짝 놀랍니다. 소녀는 활짝 웃으며 "아! 너 이제야 왔구나!"라고 죽음을 반겨주었지요. 죽음의 왕국으로 가는 길에서도, 죽음의 왕국에서도 소녀는 떨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엘스위즈는 오랫동안 아팠습니다. 이제는 고통을 느끼지 않아서 그녀는 좋다고 합니다. 죽음은 엘스위즈의 예쁜 미소에 푹 빠졌습니다. 죽음과 엘스위즈는 죽음의 왕국에서 즐겁게 놉니다. 물구나무서기도 하고, 숨밖꼭질도 하고, 변장놀이도 하며 죽음은 깔깔대며 웃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진짜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귀엽지요.. 죽음이 자신이 살아있음에 행복감을 느끼는 설정이요.) 



하지만 엘스위즈는 곧 다른 세계로 떠나야 합니다. 떠나간 엘스위즈의 빈자리는 죽음에게 큰 슬픔을 주었지요. 매일 텅 빈 죽음의 왕국을 배회하며 죽음은 중얼거립니다.."엘스위즈..엘스위즈.." 그러던 어느 날 엘스위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녀는 천사가 돼서 죽음 앞에 나타난 거지요. 엘스위즈는 다른 세계로 가서 죽음과 함께 있기 위해 천사가 되기고 한 것입니다. 이제 죽음과 천사는 늘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죽을 사람들도 죽음과 천사, 이 둘을 보면서 훨씬 덜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섬세한 인물로 나옵니다. 늘 혼자 있고 외롭습니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소녀 또한 안쓰럽습니다. 늘 침대에만 있었을 테고,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어린 나이에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까요?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슬픔과 외로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죽음 (두려움, 끝, 공포)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죽음과 소녀 사이의 우정을 귀엽게 그리고 있습니다. 



우선 죽음과 죽음의 왕국을 묘사한 키티 크라우더의 그림은 미소를 짓게 합니다. 검은색이지만 따뜻하고 저승사자(죽음)이지만 앙증맞고 귀엽습니다. 색연필의 독특한 질감과 키티 크라우더의 고유의 색감이 잘 느껴지지요. 죽음의 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 타고 호수를 건넙니다. 호수에는 흑조 한쌍이 유유히 거닐고 있습니다. 그리고 높은 계단을 올라가지요. 우리가 흔히 죽음과 관련하여 연상하는 상징들, 예를 들어 달, 밤, 어둠, 올빼미, 물 등등 이 책이도 어김없이 나옵니다. 책의 배경은 늘 밤이고, 어둡고, 죽음의 왕국에는 여러 가면들과 올빼미 장식으로 채워져 있지만 작가는 이 모두를 아주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앞부분과는 대비되도록, 소녀가 죽음과 같이 놀 때에는 죽음의 왕국에서조차 색을 거의 드러내서 최대한 밝고 깨끗한 분위기를 줍니다.  


죽음은 표정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엷은 미소, 단념한 듯한 무표정, 안쓰러움 등 아주 미세한 변화로 죽음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조용하고 따뜻하지만 고독고 차가움에 익숙해져 표현이 서투른 작은 어린이 같습니다. 엘스위즈와도 재미있게 놀 때에서 글귀에서는 '폭소를 터뜨린다'라고 쓰여 있지만 그림에서는 그저 커다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입니다. 표정의 변화가 없기는 하지만 안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감정을 느끼는 외강내유형이라 짐작해 봅니다. 그래서 죽음이 더 안쓰럽고 귀여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아, 죽음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한 소녀가 죽는 슬픈 이야기를 저승사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그 덕분에 저승사자의 귀염성도 발견할 수 있었고, 죽음의 왕국도 방문할 수도 있었겠지요. 아마 죽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가장 큰 이유는, 슬픔을 표면화하지 않고 오히려 '죽은 소녀가 다른 세계의 친구를 만나 우정을 쌓고, 천사가 되어 다시 삶을 시작'하는 각도로 이야기를 풀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착착 올라오는 색연필의 폭신한 질감과 작가만의 독특한 그림 스타일이 서로 잘 맞물려 계속 보고 싶어 지는 그림책이 된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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