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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ung Lee Dec 08. 2016

Bigoudi(비구디)

유쾌하고 씁쓸한 도시 속 개인의 삶

Bigoudi

Text : Delphine Perret

Illustration : Sébastien Mourrain

Format : 17.4 x 24

2014

Edition : Les fourmis rouges



이번에는 유쾌하고 귀여우면서 현실적인 주제를 잘 전달하는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개인적으로 도시 삶을 그린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즉 도시의 생기와 화려함이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외로움, 우울, 허무함, 피곤, 결핍, 욕망, 군중 속의 무력감 등 우리 모두가 일정 정도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다룬 내용에 관심이 있지요. 



Bigoudi(비구디)는 뉴욕시를 배경으로 한 그림책입니다. 대도시의 상징인 회색톤의 그림이지만 뉴욕의 노란 택시, 몇몇 인물 및 배경에만 파스텔톤 색이 들어가 경쾌함을 주고 있습니다. 비구디는 프랑스어로 머리를 마는 헤어롤을 뜻합니다. 그래서인지 비구디는 머리가 풍성한 작고 귀여운 할머니지요. 비구디는 Alphonse(알폰스)라는 강아지와 함께 159층의 높은 아파트에서 지냅니다. 매일 반복되는 비구디와 알폰스의 일상은 귀엽고 단조롭습니다. Luigi 카페에서 아침을 맞고, Georges 고깃집에서 하루 먹을 고기를 사고, 공원을 산책하며 핫도그를 먹고, Beatrix네 집에서 같이 포커를 치고, Orlando 미용실에서 머리도 하며, 쇼핑을 하며, 취미로 도자기도 배우고 헬스클럽에서 운동도 합니다. 전형적인 은퇴노인의 한가롭고 여유로운 도시 속 삶이지요. 비구디와 알폰스의 일상은 분주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볍게 보입니다. 


비구디 거실에 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보이네요.도시속 일상의 소외, 고독을 그린 화가의 그림과 비구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알폰스가 죽습니다. 반려견의 죽음은 비구디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습니다. 매일 같은 곳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만나며 지내는 일상이었지만 그마저도 비구디는 모두 끊어버립니다. 영화를 봐도, 음식을 먹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지요. 알폰스의 빈자리는 비구디에게 큰 절망과 상실을 안겨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159층 창문 밖에서 누가 거품을 잔뜩 유리에 문지르고 비구디에게 미소를 짓습니다. 비구디도 미소를 짓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두문불출하던 비구디에게 이 상황은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유리 청소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집니다. 비구디는 창문을 열고 내다봅니다. 그러다가 실내화에 미끄러져 비구디는 그만 창문 밖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159층에서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부족감을 안은채, 웃음을 잃어버린 비구디는 소외되고 고독한 도시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는 듯합니다. 이 책에서는 반려견의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사건을 만들었지만 우리네 현실에서는 딱히 큰 사건 사고가 있지 않아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감정들입니다. 비구디는 텔레비전만 보며, 생필품은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점점 안으로 침체되어 가지요. 혼자 있을수록 마음의 결핍과 알폰스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전혀 자신과 연고도,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유리닦이에게서 그녀는 신선한 에너지를 얻지요. 사소하게 주고받은 미소와 대화에서 비구디는 신기하게도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회복할 용기와 힘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피곤하고, 늘 혼자인 것 같고, 고단한 일상에서, 모르는 사람과의 짧지만 유쾌한 대화가 하루의 생기를 주는 경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지요.. 가족, 친구, 진지한 대화 및 상담이 아닌 그저 유리닦이의 미소, 그가 비구디에게 "이빨에 파슬리 잎에 끼었더라고요."라는 말 한마디면 되는 거였습니다. 스치는 짧은 인연. 도시에서의 인연이지요. 씁쓸하면서 공감이 됩니다.



연필로 섬세하게 그린 흑백의 이미지는 도시의 화려함과 동시에 가벼움과 단조로움을 동시에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물과 배경을 그리는 작가의 스타일이 귀염성이 있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상큼함을 유지시켜줍니다. 또한 그림이 주는 경쾌함은 비구디가 반려견을 잃고 슬픔에 빠져 지내는 시간마저도 귀엽게 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비구디가 매일 잠깐씩 만나는 카페 주인, 고깃집 주인 등과의 관계는 깊지는 않지만 무척 따뜻한 친근한 도시 이웃들이라는 느낌을 더 살려주지요. 결론적으로 가볍지만 정겹고, 단조롭지만 따뜻한 도시 풍경을 적절히 잘 표현한 그림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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