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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ung Lee Dec 13. 2016

Perdu!(길 잃은)

도시 속 떠돌이 개 

© Albin Michel Jeunesse, 1996


Perdu! 

Text & illustration : LOUCHARD, Antonin.

Edition : Albin Michel Jeunesse, 1996. 

48 p. 17 x 22 cm. (Zéphyr). 

ISBN 2-226-08252-2 relié


이번에도 역시 도시를 그린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좀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글과 그림이 너무 훌륭히 어우러지는 명작이라 생각되네요. 아이가 다니는 소아과에 있던 책인데 순서 기다리면서 우연히 읽은 책입니다.. 읽은 후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대도시, 도시의 밤, 달, 가로등, 황량한 인도, 지나가는 사람들… 여기에 작은 유기견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 개는 배고프고 더럽고 피곤하고 추위에 떨면서도 도시를 배회합니다. 자신을 돌봐줄 새로운 주인(친구)을 찾기 위해서죠.

Perdu! 는 '버려진', 혹은 '길 잃은'이란 뜻입니다. 전문 번역가라면 좀 더 멋들어지게 번역할 수 있을 텐데요.. 작가 Antonin Louchard(안토닌 루샤르)는 도시의 어둠과 은은한 달빛을 매우 시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 장 한 장이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이라기보다는 내러티브 회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여기에 단순하지만 운율이 분명한 텍스트와 어우러져 시적인 느낌이 배가 됩니다. 



유기견 강아지는 자신을 "나는 버려진 개에요, 그리고 배고파요."라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지는 도시의 쓸쓸한 밤거리에서 홀로 식사를 하는 아저씨는 친절하게 자기 밥을 나눠줍니다. 하지만 개는 또 어디론가 떠납니다. 다리 밑에 도착한 개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버려진 개에요, 그리고 추워요." 그러자 사람들은 불을 쬐게 해주지요. 개는 잠시 쉽니다. 하지만 역시 또 어디론가 갈 수밖에 없나 봅니다. 공원에 들어간 개는 길에서 꽃 파는 소녀에게 말합니다, "나는 버려진 개에요, 쉴 곳이 없어요." 소녀는 친절하게 빨간 리본을 걸어줍니다. "나는 버려진 개에요. 더럽고 엉망진창이에요." 길거리 악사는 개에게 심심하지 않도록 음악을 들려줍니다. 모두들 친절하지만, 이 도시에서 어느 누구도 개를 돌봐줄 사람은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러다 어느 누군가 개에게 말을 겁니다. 피곤에 지친 개에게 자전거를 탄 누군가가 산책을 시켜줍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데려가 주지요. 



이 그림책에는 두 가지 내용이 중첩됩니다. 주인공은 버려진 유기견임이 분명하지만 중간중간에 뜬금없이 다른 인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요. 피에로입니다. 유기견 부분은 책 배경이 흰색이라면 이 피에로가 등장하는 페이지는 모두 검은색으로 두 이야기가 다름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피에로가 등장할 때는 항상 같은 글귀가 나오지요. "La lune est là, la lune luit, et René, lui, lit dans son lit."(달이 있고, 달이 빛나고, 르네는 침대에서 책을 읽습니다.) 실제로 피에로는 아늑한 집, 자기 침대 속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원거리에서, 그러다 점점 근거리고 피에로에게 천천히 다가갑니다. 피에로의 얼굴이 크게 그려질 즈음에 유기견은 자전거를 타고 피에로의 집으로 옵니다. 네, 자전거 탄 사람이 피에로네 집으로 이 개를 데려다 준거지요. 이 둘은 마치 도시에 환하게 떠 있는 달 아래서 마치 운명처럼 만나게 됩니다. 한 편의 영화 같지요. 


전체적으로 이 그림책의 텍스트는 시처럼 각운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노래처럼 들립니다. 유기견 이야기에서도 개는 항상 반복하지요, "나는 버려진 개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책은 글보다 그림이 이야기를 더 서사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으며 글은 마치 하나의 노래처럼 리듬을 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텍스트의 부드러운 리듬 속에서 작가는 어두운 남색, 녹색, 회색, 그리고 검은색 등을 사용하여 거친 붓터리고 매우 무겁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칙칙함 속에 하얀 유기견은 유독 눈에 띄지요. 하지만 개가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을 때, 다리 밑에서 불을 쬘 때, 공원에서 빨간 리본을 달았을 때 등 사람들과 어떤 순간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따뜻한 기운이 감돕니다. 그림에서는 어떤 희망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텍스트와 그림은 서로 성격이 다른 듯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책은 그림책과 텍스트가 서로 완벽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맥락에서 서로 상호 보완하며 쫀쫀히 엮여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대도시, 위험하고, 또 무관심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 개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는 않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계속 배회하는 유기견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이 애잔해졌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요. 이 사람 역시 외롭고 소외된 피에로(어릿광대)이지만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이 흰 유기견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이지요. 우리는 모두 고독하고 또 외롭습니다. 때때로 혼자 있는 시간도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부드러운 손길을 뻗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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