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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Oct 09. 2018

2주간 휴가를 떠난다는 것

프롤로그 1. 7년차 직장인, 온 우주의 도움으로 '2주 휴가'를 받다

2주간의 휴가는 처음이었다. 7년차 직장인, 직장생활 근 만 6년(현 직장 기준). 휴가는 당연한 듯이 여름휴가와 겨울 휴가 일주일씩으로 정해져 있었다. 초년생 수습 땐 겨울 휴가가 3일 정도로 짧았지만, 이후부턴 쭉 그랬다. 겨울 휴가가 주어졌단 점에서 일부 직업군에 비해서는 사정이 나았는지 모른다. 연차는 해마다 쌓여 어느덧 17일에 이르렀으나 이 암묵적인 '일주일 휴가'의 기준은 크게 달라질 기미가 없었고 나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변화는 올해 시작됐다. 내가 속한 부서의 부장은 연초에 '여름휴가 2주'의 특명을 내리셨다. 그렇지 않고서는 연내 연차 소진이 불가능하단 이유였다. 실제 우리 회사는(많은 회사들이 그러하듯) 연말만 되면 부서장을 통해 '연차 소진'을 부단히 독려하고 있으나 늘 목표 달성에 실패해 이듬해 2월까지 연차 소진을 유예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근데 올해부터는 철저히 '연내 연차 사용'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작년의 경우를 살펴봤을 때 이것은 특히 바쁜 우리 부서(정치부)로서 불가능한 목표로 보였다. 


나만 해도 작년에 연차가 8일이나 남아 올 2월까지 소진하느라 엄청 애를 먹었다. 왜 애를 먹었냐면, 올해 김정은 신년사부터 시작해 예상 밖 역대급 글로벌 이슈가 터지면서 업무강도가 몇 배로 높아졌는데 이 와중에 쉬려니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난 외교부와 통일부 출입 중이었다.) 올 상반기의 숨 가쁜 나날을 생각하면 작년에 무조건 연차를 다 썼어야 했다. 하지만 작년에도 바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는 게 함정이다. 그렇게 많은 직장인들은 온갖 합당한 이유로 연차를 미루고, 유예하는 데 익숙하다. 


2018.09.01 파리의 하늘


직장인이 휴가를 보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주변을 보면, 어린아이가 있는 선배들은 주로 아이들의 방학에 휴가를 맞춰 아이를 돌보는 것이 1순위

가 되는 것 같다. 아이가 초등학교 이상인 경우 짧게 가족여행을 가는 경우도 있지만 여행은 휴가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듯했다. 휴가 내내 육아와 집안일에 매달린 선배들은 휴가 후 복귀해 "출근이 더 편하다"라고 말하곤 하셨다. 반면 돌볼 아이가 없는 내게 휴가는 아직까지 여행과 동의어다. '휴가 때 뭐 할까'가 아니라, '여행'을 실현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연차를 어떻게 활용할까를 생각한다. 이런 나에게 '무조건 여름휴가는 10일을 붙여서 쓰라'는 부장의 특단의 조치는 '축복'에 가까웠다.


2주간의 휴가가 여행자에게 왜 그토록 소중한지 긴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직장을 다니며 여행을 취미로 삼는다는 것은 무모하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유럽 이상의 장거리 해외여행의 경우 일주일 휴가시 앞뒤 주말을 붙여도 이동시간을 빼면 7~8일에 불과한데 항공권 값을 뽑기도 어렵다. 짧은 시간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 몸은 더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인들은 바쁘지 않은 날들 가운데 짬을 내서 불가능한 여행을 실현한다. 여행에 관심이 없는 일부 사람들(어른들)은 때때로 나를 포함한 '싱글' 여행자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착실히 돈 모으지 않고 과시욕에 사치를 부린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 여행을 제대로 해보지 않고 화려해 보이는 겉면만 본 이들의 설익은 조언이라 생각한다. 


2014.8.20. 처음으로 혼자 간 해외여행 스페인. 40도 땡볕에 혼자 엄청 헤매가며 그라나다 알바이신을 정상을 올라 이 장면을 마주했을 때 감동을 잊지 못한다.


적어도 내게 여행은 수많은 선택지의 향연 속에서 성가시고 어려운 선택과 계획을 계속해야 하는 미션의 연속이다. 일상의 평온을 깨고 굳이 낯선 곳으로 가서 필연적으로 여러 실수들과 계획의 틀어짐을 겪으며 때론 체념하는 법을 배우고,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를 구하는' 생존법도 연습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행지에서도 지루함과 피로함, 고독함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며, 때론 이질적인 혼란과 소수자로서 이방인의 감정을 느끼며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약자에 공감하게 된다. 여행의 방식은 제각기 다르기에 일반화할 수 없다. 나는 소비보다는 체험, 정적인 쉼보다는 역동적인 경험과 도전을 선호한다. 그리하여 난 여행이 내 삶을 가장 풍요롭게 하고, 나를 성장시켰으며, 자아의 지평을 넓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결정적으로 8월 초 예상치 못했던 인사가 나서 부서를 이동했다. 인사이동 대상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청천벽력 같았다. 올 초부터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던 '2주 여행' 계획 때문이었다. 다가오는 이산가족 상봉 일정 때문에 항공권 티케팅만 보류했을 뿐 이미 대략의 구상은 끝난 상태였다. 정치부에서 폭풍 같은 상반기를 보낸 나는, 연차 17일을 고스란히 모셔왔다. 새 부서 입장에선 '민폐'가 아닐 수 없다. 근데 매우 운이 좋게도 이동한 부서의 부장은 통 크게 '2주 휴가'를 허하셨다. 3주를 가도 된다고 호언하셨다.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도 일조했다. 올해 남은 약 4달간 17일 연차를 소진하자니, 사실상 한 번은 '2주 휴가'를 가지 않으면 안 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외교안보 격변기, 연차 쓸 틈 없이 바쁘게 흘러간 8개월도 '2주 휴가'를 견인했다. 대학시절 3주간의 유럽 배낭여행 이후 10년 만에 떠나는 2주간의 프랑스 여행은 이렇게 '온 우주의 도움'으로 성사됐다. 글을 쓰다 보니 새삼 주변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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