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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0일

네 번의 프라하

by Soyun

누가 그랬다. 지나간 봄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변화하는 계절을 사랑하는 것이 낫다고. 나의 지나간 봄은 언제였을까 생각하다가 어쩌면 내 봄은 아직 시작도 안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래도 혹시나 누가 이미 봄은 지나갔어-라고 속삭인다면, 서른 하나, 서른 둘 그 사이 어딘가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네 번의 프라하를 겪었다. 굳이 다녀왔다는 표현 대신, 겪었다는 말을 쓰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프라하를 모두 각자 다른 사람과 다녀온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자만심도 가져본다.



나의 처음 프라하는 봄이었다. 시계탑을 보고 싶어서 그 동안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어도 프라하쪽으로는 방향을 아껴두었었다. 2016년 봄, 내가 살던 독일의 하숙집에서 이모님과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다. 거실 식탁에서 여행에 관해 무심코 수다를 떨다가 '프라하, 참 가보고 싶은데'가 '프라하! 가실래요?'가 되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노트북을 가져와 예약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직 독일 신용카드가 없었고, 한국 카드는 온라인으로 신청이 안되어서 중앙역까지 가서 Flixbus를 예약했다. 여행 당일에는 이모님이 여권을 안 들고 오셔서 이산가족 헤어지듯, '우리 프라하에서 만나요!'를 외치면서 내가 먼저 출발하게 되었다. 다른 신분증을 보여줬더니 "Ausland!"라고 단호히 막아서던 버스 차장 표정까지 생생하다. 이모님과 짧은 헤어짐 후, 재회를 하고 프라하를 정처없이 쏘다녔다. 시계탑을 목적지로 거닌 것은 아니고, 이 골목 저 골목 그냥 감탄만 하면서 걷다가 멀리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무리에 가까워질수록 '설마', '정말...?', '진짜네...!!'하는 단어가 가슴 속에서 울렸다. 계획 없는 여행에서 오로지 발걸음만 따라서 시계탑에 도착했다. 신시가지, 구시가지를 13시간동안 걸어다녔다. 이모님도 우리가 뭐에 씌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프라하는 나 혼자, 가을이었다. 체코 딜러 회사 25주년 행사에 초대되어 예의상 방문, 즉, 출장이었다. 혼자서 프라하는 조금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큰 숙제도 하나 있었다. 딜러 회사 파티에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오는게 드레스 코드였다. 그렇지만, 난 무슨 생각인지 Schwalbach 한국 전통집에서 한복을 빌려서 체코에 왔고, 파티장에 한복을 입고 갔다. 물론, 좋게 보는 사람, 알 수 없는 눈초리로 보는 사람이 보내는 여러 감정이 섞인 시선을 견디는 것은 온전히 나 혼자의 몫이었다. 급기야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이 딜러 사보에 실려서 아마 나는 잊고 싶어도, 그 회사에서 누군가 그 사진을 발견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면, 그냥 조용히, 얌전하게 검정색 무난한 원피스를 입고 가는 쪽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한다.



세 번째 프라하는 엄마와 함께였고, 겨울이었다. 일 년 가까이 떨어져 지낸 엄마가 나를 보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왔고, 나는 휴가를 내고 엄마와 체코 여행을 갔다. 그렇게 크지 않은 프라하여서 뭐 가이드 역할은 충실히 했던 것 같고, 프라하에서 흰 눈도 많이 보고 머리에도 옷에도 눈이 쌓인 채로 사진도 많이 찍었다. 까를교에서 바라본 풍경과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 본 집들 지붕에 눈이 쌓인 것을 보면서 SNOW 동화가 생각났다. 눈송이 하나가 온 마을에 쌓이면서 다툼도 걱정도 모두 눈 아래에 덮히면서 아이들 웃음만 남는 그런 동화가. 까를교에서 떨어지는 신부를 만지면 소원이 이뤄지고, 소피아 등을 만지면 프라하에 다시 오게 된다고 한다. 갈 때마다 소피아를 만져서 그럴까.



네 번째 프라하는 동생을 만난 곳이고, 여름이었다. 독일에 나를 보러 동생이 왔었다. 겨우 이틀 나를 보고 잘츠부르크로 넘어가는 동생이 못내 아쉬웠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일정이 바로 체코였고, 토요일이었다. 토요일 아침 비행기로 체코로 바로 날아갔고, 체크인 하는 호텔에서 동생을 다시 만났다. 반나절 프라하를 같이 돌아다니고 공항으로 동생은 떠났다. 동생은 택시를 탔고, 나는 다 큰 녀석에게 볼뽀뽀를 했다. 동생은 그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고, 공항에서 다시 한국으로 가겠지. 집으로. 택시가 그 좁은 프라하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보니, 벨보이가 굳이 와서 물었다. 'Your little brother?' 그들의 눈에도 확실히 그렇게 보였나보다.



가끔 살면서 내 앞길이 왜 잘 안 풀리고 막히기만 할까, 왜 억울한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고, 수많은 오해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프라하의 기억은 그 모든 것을 덮을 정도로 나에게 감사하고 강하다.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도 아닌데, 각각 다른 사람과 다른 계절에 프라하를 느끼고 볼 수 있었다는 게, 그곳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사람들에게 일부러 자랑을 하지는 않지만, '프라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혼자서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내 방에는 프라하에서 사 온 그림이 하나 있다. 비가 촉촉히 내린 시계탑 앞에서 느릿느릿 춤을 추고 있는 두 사람. 그림 속에 채색되어 있는 것은 오직 노란색 등불과 빨간색 드레스뿐이다. 다음에 프라하에 가게 된다면 꼭 저 드레스 같은 옷을 입어보고 싶다. 까를교에서 나도 느릿느릿 춤을 추고 싶고,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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