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esty is the best policy.
요 며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잘못도 아닌데, 집 멀다고 쿠사리(?)를 먹은 회사는 결국 그만두고, 새로운 곳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올해도 벌써 3월이 넘어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절박함으로 변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이전에 나를 감쌌던 취업 시장에서의 자신감은 점점 옅어져서 한 군데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시기가 왔다. 실력과 하는 일이 크게 차이가 없다면 회사에서는 팀장보다 나이가 많은 지원자들을 부담스러워한다.
괜찮게 생각되는 곳이 있어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취업시장에서 나의 가장 큰 단점은 회사를 여러 군데 옮긴 것이다. 물론, 버티지 못하고 매번 새로운 곳을 찾았던 나약한 나의 멘탈이 가장 큰 문제였겠지만, 불안함, 무중력 상태를 감수하고서라도 옮겨야 했던 그만한 이유들이 늘 있었다. 단점을 감추기 위해서 별로 이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기 경력들은 소위 “편집”을 했다.
한 군데에서 면접을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긴장과 설렘 가득하게 면접장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준비해 간 포트폴리오가 문제였다. 매번 열심히 살았다는 걸 어필하려다가 이력서 내용과 싱크가 맞지 않았다. 내가 편집한 심플하고 깔끔한 이력서 내용과는 달리, 포트폴리오에는 이력서에 없는 회사에서 한 내용도 들어가 있었다.
“첫 직장이 여기가 아니네요?”
철저하지 못했고, 면접 주도권도 뺏기고, 호기롭게 준비했던 모든 시나리오가 무너져 내렸다. 사람이 허를 찔리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면접관이 예리한 게 아니라, 내가 바보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제출한 이력서와는 전혀 다른 내 진짜 이력의 민낯이 면접 대화 중에 밝혀질 수밖에 없었다. 면접관도 실망을 했는지 점점 그 담엔 뭐했어요? 그 담엔요? 이렇게 취조하듯이 물었고, 난 점점 더 작아졌다.
나도 안다. 내가 시작을 잘못했다는 걸. 솔직한 이력서로 정면돌파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불안하면, 안 하던 짓을 하기도 한다. 솔직하지 못한 면접자에게 친절할 리 없는 면접 분위기를 오롯이 견디는 건 내 몫이었다. 면접관이 면접 중에 눈이 아프고 피로하다는 듯이 눈을 지긋이 눌렀다. 좋지 않은 신호였다. 가장 중요한 신뢰를 잃고 시작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이미 내가 말로 하는 내 career history와 면접관 손에 있는 인쇄본 이력서는 서로 너무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안 한 걸 했다고 하진 않았으나, 없던 내용이 자꾸 튀어 나오니 면접관이 기가 차는듯 허탈한 웃음도 보인 것 같다. 어찌저찌 시간이 다 되어서 면접은 끝났고,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실수를 한 면접이니까.
지금까지 회사를 자주 옮겼어도 늘 취업이 잘 됐던 건, 내 이력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솔직한 이유로 대답했으니 당당했고, 자신감도 넘쳤었다. 그래서 항상 면접 분위기는 편안했다. 오히려 흥미롭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엔 스스로가 아주 미울 정도로 발표일을 기다리는 게 고욕이다. 차라리 빨리 떨어졌다고 연락이라도 주지…..하며 남 탓을 하기도 한다. 아…….연락이 안 올 수도 있겠다.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물론, 내가 자초한 게 맞는데… 뭐라고 해보려고 한건데…… 이렇게 회사를 자주 옮긴 사람이 이력서를 좀 “정리”하지 않았었다면, 면접 기회라도 다시 왔을까……나 거짓말쟁이 아닌데……그런데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는데……그래도 매 순간 열심히 살아왔는데……이력서 한 장이 지금껏 살아온, 극복한 모든 시간들을 담을 수는 없는데……반성과 억울함, 변명, 이런 것들이 섞여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혹시라도 연락이 오면, 떨어지더라도 A4용지 두 장은 필요한 내 진짜 이력서와 경력증명서를 보낼까 하는 생각이다. 이게 진짜라고……한 장짜리 깔끔한 이력서보다 더 비정상으로 보이겠지만, 매 회사 사이사이에 다시 도전하고 이어갔던 노력과 내 시간은 진심이었다고. 죄송하다는 손편지도 함께.
이번 기회는 내가 날린 거나 다름없지만, 앞으로 어딘가에 다시 지원하게 된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고, 조금 더 불안할지라도. 그게 내가 살아온, 매 순간 했던 결정들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니까. 취업은 조금 늦어지겠지만, 꼼수는 평생에 한 번이라도 부리지 않는 게 좋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에 고백을 했으니, 발 뻗고 자야겠다.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 시작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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