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이렇게 면접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적이 없었다. 꼭 입사하고 싶어서 커리어적으로 간절하긴 했어도 면접 자체가 기억에 남거나 강한 인상을 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면접은 뭔가 좀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내가 끌려간 것 같기도 했고, 나의 그동안의 말발도 통하지 않았고, 그동안 우려먹던 면접 루틴은 통하지 않았었다.
내 복잡&화려한 이력을 보고 맨 마지막에 면접관이 물은 말이. “이제 면접은 끝났고, OO님 뭐 하고 싶어요?”라고 물었다. 사실, 답변하기 그 1초의 시간동안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내가 또 딴 짓을 할까봐 떠보는 걸까?’, ‘정말 진솔하게 물어보는걸까?’
더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서 “비즈니스, 커리어 이런 거 말고……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가고 싶어요.”라고 대답을 했다. 관련 대화가 조금 오가고, 면접관이 다시 물어봤다. “또 뭐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왜 없겠냐만서도, 면접 때 내 머릿 속의 모든 마음을 보여주면, 분명히 날 '또라이'라고 생각해서 떨어뜨릴 게 뻔했기 때문에 “아뇨, 이제 없습니다. 이제 안정적으로 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계속 그 물음이 생각났다.
“또 뭐 하고 싶어요...?”
오늘 길을 걷다가 내 드림카 FIAT를 봤다.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가 잘 하지도 못하는 운전을 직접하면서 빨간색 FIAT 500C를 몰고 이탈리아 토스카나 그 나무 많은 길을 달리는 거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게 참 많은데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해 온 인생을 살았는데, 그게 잘못된 건 아닐텐데...... 인생을 반 정도 살아왔으니 이제 버킷 리스트를 다시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면접 때의 그 물음이 고마웠다.
일단 생각 나는 대로 적어보긴 했는데, 내가 많이 살아오긴 했나보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20대 때 선배와 종로 파스타집에서 적었던 버킷 리스트(그때는 30개나 되었다)의 대부분은 이뤘나보다. 못 이룬 소원은 기억에 남아 있을 텐데 다시 적은 게 10개가 채 안 된다. 욕심이 적어진 건지, 기억이 희미해진 건지, Inside Out처럼 나의 ‘빙봉’이 잊혀진 건지……
지금 가장 나 다운 편한 옷을 입고, 나 다운 장소에, 나 답게 앉아서 이 글을 쓰면서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2차 면접 기회가 주어져서 후회 없이 나를 다 보여주고 왔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 절대 못 하는 거, 자신 있는 거, 자신 없는 거 다 보여주고 왔다. 희망 연봉도 솔직하게 얘기를 했다. 돌려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내 인생에 도움되는 물음은 ‘OOO님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사람이냐’는 거였다. 한 번도 나를 한 마디로 정의해 본 적이 없었다. 늘 나를 뽑는 회사에 끼워 맞추고, 그 회사 인재상에 맞게 내 본성을 적절히 덜어내고, 없는 능력도 끌어다 포장했기 때문이다.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나는 ‘미친 망아지, 자유로운 영혼, 한 쪽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아내는, 한 번 사는 인생 하고픈 일들로 꼭꼭 채워 살고 싶은’ 이런 수식어들 중에 하나 고르면 될 것 같다.
늘 내 스펙만 믿고, '우쭈쭈' 해주는 젠틀한 면접 분위기에 익숙했다가,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면접을 겪고 나니 며칠동안 솔직히 정신을 못 차렸다.
최대한 빨리 연락을 준다고 해서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오늘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얻게 될까…?
To be continued.
가만히 앉아서 연락을 기다리는 것보다 발바닥을 땅에 내딛고 싶어서 걷다가 문득 근처에 있는 모교에 갔었다. 나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아주 특별하진 않지만, 흔하진 않은 경험이다. 대학교 1~2학년 다닌 학교와 3~5학년까지 다닌 학교가 다르다. 즉, 입학한 학교와 졸업한 학교가 다르다는 얘기다. 면접 때마다 ‘편입은 왜 했어요’를 늘 물어본다. 거의 20년 전 기억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사촌동생이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샘이 나서요’, 혹은 ‘도전정신이 강해서요’ 등등으로 둘러댔지만, 사실 그때는 그게 간절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가 본 학교에는 벌써 봄이 와 있었다. 학교로 들어가는 초입부터 반가운 학교 잠바를 입은 후배님들이 많이 보였다. 아, 오늘 방문한 학교는 나의 ‘전적대’이다. 이름이 생소할 지 모르나 나에겐 익숙해졌다. 마치 ‘이전 직장’, ‘직전 연봉’ 등의 용어처럼. 멀리서 학교 입구가 보였다. 정문이라는 말을 못 쓰는 이유는 예전엔 정말 정문이 있었는데, 오늘 가 본 학교는 학교 대문이 없어지고 더 넓어져 있었다. 나의 전적대는 마치 ‘좋게 헤어진 전남친’ 같다. 가장 찬란하고 예쁠 때, 딱 좋게 헤어졌었다. 내가 스물 한 살, 스물 두 살을 보낸 곳.
입구에서 가까운 벤치 하나, 올라가는 언덕길 하나, 경영관, 인문관, 단막극을 했던 마당… 내가 걸어가는 모든 곳에 생생히 그때 누구와 앉았었고, 무슨 말을 했었는지 떠올랐다. 잔디밭에서는 동아리원들을 모집하는 중인가보다. 응원단부터 검도복을 입은 학생들까지 각각 새내기들의 동아리 가입을 위해 모두 나온 모양이다. 그 중에 꽤 선배처럼 보이는 남학생이 팔짱을 끼고 근엄하게 서 있었는데, 그 마저도 나에게는 앳되 보이고, 풋풋했다. 이동하는 중에 학교 방송국 소리가 들렸다. 2026학년도 오늘 날짜를 말하며 방송이 시작됐다. 2026학년도라…… 나는 06학번이다. 딱 20년만에 다시 입학한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경영관에서 인문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았고, 과방을 찾았으나 우리학과 과방은 자리가 옮겨져 있었고, 결국 어딘지는 찾지 못했다. 과 사무실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아직 계신 교수님 이름을 발견했다. ‘강의’라고 표시된 부재중 판넬을 보고 노크할 생각은 못 했다. 그 교수님은 내가 학교를 옮기게 됐을 때, ‘그게 사실이야?’라고 복도에서 날 세우고 물어보신 분이었다. '99 Luftballons' 노래를 좋아하시던... 우리 과 과방을 찾다가 안내판에서 동기가 교수가 된 것도 알았다. 딱 하니 동기 이름의 교수연구실을 봤기 때문이다. 연락이 끊겼었지만, 유학을 간 건 알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교수연구실로 향했지만 또 부재중이었다.
예전엔 계단으로 잘 다녔었는데, 오늘은 계속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그땐 몸도 마음도 참 가벼웠는데… 지나치는 강의실들 중 문이 열린 데가 있었고, 그 중 하나에선 어떤 선배가 어느 수업을 듣고 있었는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곳도 있었다. 문이 열린 강의실이 있어서 살짝 들어가 마당도 내려다보다 다시 나왔다. 도서관에도 졸업생(?)이라고 얘기하고 잠깐 들어갔었다. 사실 자퇴를 해서 졸업생은 아닌데… 그리고 학교에서 화장실도 한 번 들렀는데, 동문회비도 안 낸 선배가 물 쓰는 게 좀 미안했다.
풋풋한 얼굴들 사이에서 20년 전의 내 모습, 내 동기들, 교수님들 얼굴이 기억이 났다. 예전에도 중간에 한 번 학교를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구석구석 오래 있었던 적은 없다. 오늘은 시간여행 하듯이 느릿느릿 걸으면서 사연 있었던 모든 장소에 한 번씩 다 가봤었다. 많이 바뀐 건물 안에서도 이 복도는 누가 연극 무대 준비하다가 누워 있었던 곳, 여긴 형들이 창문을 열고 나가서 담배 피던 곳, 여기선 고백 받은 곳 등등이 오버랩 되어서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학교를 옮겨서 4년을 더 다녔고, 졸업 후에는 계속 일하고, 회사를 옮기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느라 나의 새내기 시절, 아무 부담도 없고, 젊고 예쁘기만 할 때의 그 시간을 보낸 맨 처음 학교를 잊고 있었다.
날씨도 참 좋고, 따듯했고, 그야말로 ‘봄’이었다. 내가 이런 감정들을 글로 남겨두는 이유는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없을 때, 내가 쓴 글들을 다시 보면서 그 때의 기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난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심심하지 않은 할머니가 될거다. 할머니가 되어서 혹시 내 이름으로 책을 내게 된다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어서 미리 생각해 놓은 말도 있다.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오는 봄들을, 매번 처음 맞는 봄인 것처럼 맞이하고 즐기세요.”라고.
오늘의 햇살도 한 몫 했고,
2026년 봄 맞이 참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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