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가 된다는 거.
나는 천주교인이 아니다. 어렸을 때, 그리고 아주 젊을 때, 마음과 시간에 여유가 있었을 때, 교회를 신실히 다니기는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고,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보이고, 주말 시간이 너무 아깝기 시작하면서 교회도 점점 안 나갔던 것 같다. 아주 힘들 때, 내 힘으로는 안 풀리는 뭔가를 하늘의 뜻에 의지하고 싶을 때 정도 가끔 아무 교회 혹은 성당에 들어가서 기도만 짧게 하고 나왔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차고, 내 힘으로 안 되는 게 점점 많아지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길 때, 마음과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 이제는 성당에 자주 가고 있다. 모범생 신자는 아니라서 세례도 받지 않았고, 등록도 안 했고, 교리 공부도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뭄에 콩 나듯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에 도망 안 가고 드리는 미사에서는 앉았다 일어났다, 그리고 뭔지 모르는 말씀들을 주고 받을 때, 입술만 달싹 거리면서 립싱크(?)를 한다. 가끔 교회에서 알고 있었던 같은 멜로디의 비슷한 찬송이 나오면 반가워서 목소리를 이때만 높인다.
오늘도 아주 중요한 일을 앞두고 아침 미사에 먼저 참석했다. 항상 3분도 안 되게 짧게 기도만 하고 나오는데, 오늘은 미사 전체를 드려볼까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성호를 어떻게 긋는지도 모르고, 세례명도 없다. 그래도 교회보다는 liberal한 느낌의 신부님 말씀을 전해 듣자면 편안하고 재밌을 때도 있다. 오늘 말씀의 임팩트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신부님에게 눈을 못 때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통 세례자들이 성찬을 받은 이후에 신부님의 행동을 주의 깊게 본 적이 없다. 나는 내 기도하기 바쁘고, 이제 곧 끝나겠지, 어느 정도 “숙제” 같은 미사 끝나고 뭘 먹으러 갈까, 서점에 들를까 하는 다른 생각이 들 정도로 살짝 마음이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무 생각도 안 들어서 멍하게 그냥 신부님을 처음부터 끝까지 응시했다. 성찬식이 끝난 성배(?) 3잔을 하얀 수건으로 깨끗이 닦고 계셨다. 그 중에 하나에는 그 성배들을 닦을 물이 들어있었다. 하긴, 늘 궁금하긴 했다. 포도주도 들어가고, 세례 빵(?)도 들어 있는 저 성스런 그릇들은 어디에 보관을 하고, 누가, 어디로 가지고 나가서 닦는 건지. 그런데 내 눈 앞에서 신부님이 성배를 닦으셨다. 다른 하나의 잔에 든 물을 요리 조리 흐르게 하시면서. 하나의 잔을 물로 살짝 헹구고, 흰색 천으로 닦으셨다. 나머지 하나도 깨끗이 닦으시고 이번엔 남은 찌꺼기 같은 것들을 기존에 물이 담겨 있던 잔에 도로 부으셨다.
아 저렇게 닦는 거구………..????나???
당연히 밖에 가지고 나가 버릴 줄 알았던, 내가 생각하기에 찌꺼기 물이 담겼다고 생각한 잔을 신부님이 자기 머리만큼 높인 후, 다시 입으로 가져가 한 방울도 남김 없이 마시셨다. 내가 그걸 봤다. 그리고 흰색 천으로 다시 그 마지막 잔까지 닦고, 잔 위에 그 흰 천을 곱게 접어 올려두고 모든 의식은 끝이 났다. 아마 신부님과 눈도 마주친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넋을 놓고, 입도 살짝 벌리고 신부님을 쳐다봤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사제의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결국,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세상의 찌꺼기도 품고 마실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그분의 길을 가고, 사제를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3때 천주교도 아니고, 기독교면서 역촌동 성당에 무작정 들어가 고해성사 하는 옆방에 앉은 적이 있다. 하굣길에 책가방 그대로 메고, 교복도 안 갈아 입고. 신부님께 그때 수녀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었다. 큰 뜻이 있었던 게 아니고, 그냥 공부를 하기 싫어서 그랬다. 수녀님이 되면 성당에서 조용히 기도만 하고, 가끔 성경만 읽고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황당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얼굴도 모르는 신부님이 “학생인가요?”를 물었고, 나는 고3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졸업을 먼저 해야 합니다.”부터 시작해서 수녀님이 되어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실망스러웠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공부, 학교에서 시키는 거나 잘 해서 대학교라도 잘 가자” 하는 마음으로.
그게 벌서 이십 년 전이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들, 재미있는 것들을 경험하고,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나는 수녀님이 어울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안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다시 성당에 자주 들르게 되었고, 오늘 신부님의 성찬식 의식을 보고 놀라게 된 거다.
저렇게까지 타인을 위해 나를 낮추는 삶을 내가 과연 살 수 있었을까. 비록 의식이긴 하지만, 성찬식이 끝난 그 모든 것들을 씻어 내 안으로 버리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나는 굉장히 세속적인 사람이라서 애초에 수녀님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제의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언제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나를 남보다 ‘낮게’ 여기라는 청년의 때에 들은 설교 말씀처럼은 계속 살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서 세상에서 ‘당하는 때’도 많아 억울하긴 하지만, 세상에는 남을 위해 죽는 사람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희생’하고 사는 삶도 충분히 멋진 거다. 그래서 나는 계속 멋지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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