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코로나
‘코로나의 해’로 기억될 재작년, 작년과 올해를 살아가는 방식은 가능한 움츠러드는 것이었다. 많은 것들이 줄어들었다. 왁자지껄한 식당에서 외식하지 않고, 비행기 티켓을 사지 않고, 두 명 이상 만나야 하는 사람들과의 약속은 가능한 취소하고, 긴축으로 생활비 규모를 줄이고, 오랫동안 다녔던 동네 요가원을 더이상 나가지 않았다.
대신 루틴에는 새로운 것들이 추가됐다. 낯선 사람이 집에 오는 게 싫어서 꺼렸던 배달앱을 드디어 깔았다. 화면 속 이미지가 표현하는 맛과 현실의 맛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지만, 좋아하는 카페의 음료 한 잔을 문 앞까지 가져다주다니 지나치게 편리했다. 동물들이 살아가는 작은 섬을 하나 사서 낚시와 미술품 수집 같은 취미 생활도 시작했다. 화면 너머 펄떡이는 가상의 물고기를 잡는데 찌르르 손맛이 느껴지니 짜릿했다. 무엇보다 잦아진 일상은 인터넷 쇼핑이었다. 과연 뭘 주문했는지조차 잊을 만큼 크고 작은 택배 박스가 이틀에 한 번꼴로 도착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때는 집에 도착한 상자를 뜯어보기 직전이었다. 대체로 직접 봤다면, ‘과연 이걸 샀을까…’ 싶은 게 많았지만 드물게 괜찮은 것들이 있었다. 최고로 효용이 컸던 소비는 콘센트를 연결해서 쓰는 블루투스 오디오를 구입한 것이다. 원래 충전식 배터리로 작동하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용했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충전하는 동안의 기다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저음이 강조되는 오디오를 사서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멍하니 유튜브를 보았다.
네모난 화면 안에는 반짝반짝해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도의 부엌, 발리의 요가원, 미국의 국립공원을 넘어 가끔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 반세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어느 하루를 구경했다.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시공간 반대편의 사람에겐 무척 대단하고 특별해보였다. 방구석에 이렇게 퍼질러 앉아서 다채로운 세상 구경을 이토록 편하게 하다니, 호사를 누린다는 생각도 때때로 들었다. 일일이 귀찮게 검색 키워드를 입력할 필요도 없이 지난 시청 기록과 선호도를 바탕으로 유튜브의 알고리즘 신은 영상 하나가 끝날 때쯤 새로운 것들을 추천해주었다. “이게 더 재밌어보이지 않아?”
하루아침에 달라진 세상에서, 비슷한 테크트리를 타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인지 유튜브의 매출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알고리즘 신은 때때로 어느 평범한 유튜버에게 ‘간택’의 은혜를 베풀고, 그에게 돈과 인기를 조금 나누어주었다. 21살의 쟈넬Jannelle Elianna에게도 그런 행운이 돌아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는 Jannelle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2500달러를 주고 산 고물 밴에 예쁜 하늘색 페인트를 칠하고, 그곳에서 애완용 뱀 알프레도와 함께 살아간다. ’밴에서 샤워하는 법’, ‘내가 밴에 사는 이유’처럼 Z세대가 밴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업로드한 영상 개수가 5개도 채 되지 않아서 천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휴대폰 하나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 일어나서 SNS를 확인하고, 누군가 포스팅한 멋진 장소를 보면 “좋아! 오늘은 여기에 가야지~” 하면서 길을 떠난다. 운전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즐겁게 지낸다. 매일 새로운 풍경에서 사진 찍을 수 있다니, 아름답고 자유롭다. 영상 속 절벽 아래 파도치는 바다가 보이는 캘리포니아 어딘가에 하늘색 밴을 주차해놓고 야외에서 샤워한 다음, 스노클링 장비를 끼고 풍덩 물에 뛰어드는 Jannelle의 모습은 누구나 꿈꾸는 어느 낭만적인 하루의 로망을 정확하게 저격한 것이었다. ‘집’이라고 쓰고 ‘봉고차’라고 읽는 이곳에선 비록 무릎과 머리를 제대로 편 상태로 살 수 없을지라도. 운 나쁜 저녁에 주차장 관리인이 문을 두드리며 내쫓을지라도.
급속히 늘어나는 미국의 유랑족을 다룬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은 자기가 시를 가르쳤던 아이를 마트에서 마주치곤, “이제 아줌마는 노숙자(홈리스)냐”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집이 없는 게 아니고, 집 건물이 없는 거야, 둘은 다르잖아. 그치?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 주인공의 언니는 그에게 말한다. “너는 집이 없기 때문에 차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방랑이라는 미국 전통의 정신을 계승하는 사람인 거야.”
사실 남편도, 직업도, 집도 사라지기 전에 그가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우편번호였다. 더는 석고보드를 생산하지 않는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던 공장이 증발해 버리고, 남아있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서 폐쇄된 우편번호. (비)자발적 떠돌이가 된 사람들을 고용하는 아마존은 #vanlife를 살아가는 노매드에게 무료 주차장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것은 바쁘게 물류창고가 돌아가는 시즌 한정 혜택이다.
21세기 houseless. 치솟는 집값에 땅 위의 집을 잃은 사람들은 바퀴와 보트 위에서 살아간다. 나에게는 밴은 없지만, 아직 사랑하는 도시가 있고, 한 몸 누일 작은 방이 있으니 그나마 행운이 조금 남아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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