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했다, 요가원에 갔다
지난 7년 간의 이야기
나는 잘 참는 편이다. 무던하게.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면 관계에서나 일에서나 보통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에게 꼭 좋은 일이 생기지도 않으며, 타인은 나와 다르다. 크게 기대하지도 완전히 믿지도 않기에 그냥 ‘그렇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내 '몸'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던하게 참을 수가 없었다. 2013년 8월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맞는 주말 휴일, 느지막히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오른쪽 다리가 나무 토막처럼 뻣뻣했다. 왜 이러지? 혹시 잠을 잘못 잤나 싶어서 주물주물 마사지를 해봤는데 소용이 없었다. 허벅지 뒷면부터 다리 전체적으로 은은하게 쥐가 난 것 같은 느낌이 계속 이어졌다.
손가락에 작은 가시 하나가 박혀도 온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는데, 몸의 엄청 큰 덩어리의 감각이 이상하니 도무지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사랑니 뽑을 때 맞았던 신경 마취 주사를 허벅지에 놓은 것 같았다. 물론 신경이 마비된 건 아니라 피부를 누르면 느낌도 있고, 절뚝이면서 천천히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뭔가 묵직한 불쾌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제 뭔가 잘못 먹었나? 곰곰이 떠올려봐도 특별한 건 없었다. 단지 몸이 좀 피곤했을 뿐. 대학교를 졸업하고 9 to 6 삶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새내기 노동자의 삶 2개월 차. 오랜만에 맞는 휴일에는 좀 편하게 쉬고 싶었건만. 아.... 근데 이게 얼마 만에 맞는 휴일이더라? 허벅지가 비상 신호를 보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새로 입사했던 홍보 에이전시의 사람들은 좀 특이했다. 정시 출퇴근은 잘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느지막히 와서 더 느지막히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주말 출근은 밥 먹듯 자연스러웠다. 막내였던 나뿐만 아니라 팀장부터 팀원 모두가 주말을 포함해서 한 달 동안 2일 밖에 쉬지 않았다. 내가 했던 일은 주로 다른 사람들이 회의를 마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었지만 10~11시 사이에 출근해서 시계 바늘이 비슷한 시간을 가리킬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은 책상 앞에 비스듬히 앉은 채였다.
가만히 두 다리를 의자 아래 내려 놓다가, 한 다리를 다른 무릎 위로 꼬았다가, 한 쪽 발목을 반대쪽 허벅지 위에 올려 놓는다. 등받이에 아래 허리를 기댔다가, 머리를 기댔다가, 등 전체가 축 늘어지도록 몸뚱이를 축 늘어뜨려 놓는다. 양 발을 의자 위로 올리고 다리를 교차시켜 양반 자세를 한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뭔가 영혼이 반쯤 가출한 듯한 상태가 된다. 바로 이렇게.
Bad Sitting Posture좀 움직여야겠다, 생각하더라도 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탈탈 털리고 나면 출퇴근길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는 부디 빈 자리가 생기길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다. 다들 적어도 이렇게 하루 10시간씩 (지하철, 사무실, 식당 등 다양한)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낼 텐데, 다른 사람들의 다리는 괜찮은 건가?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응당 이런 고통을 안고 사는 건가? 알 수가 없었다.
주말이 끝나고 돌아온 월요일 퇴근길에 요가원을 들렀다. 유튜브 선생님이 알려주는 햄스트링 이완 동작을 따라 하면서 이상한 느낌이 줄어드는 걸 보니 꾸준히 운동을 해야 될 때인 것 같았다. 몸을 혹사시키면서 월급을 받고, 다시 그렇게 번 돈으로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건 좀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별 수 없었다. 집과 가까운 곳에서 꾸준히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때 가장 만만해 보이는 건 요가였다.
무거운 건 무서워!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집과 가깝고, 무던하고 잔잔한 나의 성품과 그나마 맞을 것 같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빨리 달리기, 뜀틀, 턱걸이 뭐 이런 식의 체육 활동에 크게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스포츠는 자신 없었지만 요가는 그나마 전통적인 스포츠의 좁은 범주에만 속하진 않는 것 같았다.
‘요가’라는 낱말과 연관되어 떠오르는 이미지; 우아해보이는 여성이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늘이는 포즈를 취하는 것 또는 인도, 카레, 명상, 호흡, 수행 뭐 이런 단어들은 그나마 내 호기심 레이더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 너무 액티브하지 않고 차분하게 꾸준히 반복되는 활동; 책 읽기와 요가에는 뭔가 공통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요가를 시작했고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잔잔하게 회사-요가원-집의 삶이 7년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 나는 잠깐 인도에 다녀왔고, 몇 번의 요가원을 거쳤으며, 제주도에도 다녀왔다. 겉으로만 보면 큰 비바람 없이 평온한 호수 같은 삶이었다.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대체로 큰 불만 없이,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 무난히 살아가도록 짜놓은 나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코로나가 닥치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