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기침에 잠을 깼다. 에취, 는 아니고 캭췩 혹은 헤컄에 가깝다. 감기에 걸린 건 아니었다. 나란히 침대를 쓰는 옆 사람이 새근새근 곯아떨어진 깊은 밤이었다. 이 평화로운 고요를 시끄러운 기침으로 깨우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목구멍을 닫아보려고 했으나, 그게 될 리가 있나. 가난과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던 누군가의 천재적 문장에 감탄하면서 몇 번 더 캭캭거린다.
몸에서는 계속 기침을 토해내는 중이지만 이건 자동반사적 반응이다. 반쯤 눈을 뜬 나는 아직 잠을 자고 있다고 (억지로) 생각한다. ‘이 기침만 하고 곧 잘 거야…’ 여전히 밤/낮 중에서는 밤이고, 자는 시간/깨는 시간 중에서는 잠 쪽에 가깝다. "당신은 잠을 잘 자는 편입니까?" “yes/no" 두 가지로 나뉘는 단호한 선택지는 보통 싫어하는 편이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다르다. 생각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믿으며 조금 더 자기 위해 나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을 이끈다.
몽롱한 어둠 속에서 지금 몇 시인지 확인하는 싶은 마음이 잠깐 스친다. 하지만 핸드폰을 여는 순간 오늘 치 잠은 끝이다. LED로 출력되는 강력한 빛은 몽롱한 뇌에 명료하게 숫자를 새겨 넣는다. 어디 보자. 지금 3시니까 다시 잠들면 3~4시간 정도는 더 잘 수 있는데? 근데 바로 잠이 안 오면 어떡하지? 그냥 일어나서 미라클 모닝 다시 할까...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숫자만 표시되는 LED 시계를 결국 안방에 들이지 않았던 이유다.
대략 자정을 넘긴 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기침과 가슴팍 통증. 그게 뭔지는 대충 알고 있다. 예민한 성정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없는 것이 이상하다는 바로 그 병이다. ㅇㄹㅅ ㅅㄷㅇ 30대가 되고 나니 자연스럽게 바뀐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틀 연속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점이다. 빈속에 마시는 커피도 금물이다. 혹여나 마시면? 속이 화끈거리며 긁히는 느낌. 따끔한 목. 이물감. 올라오는 신물. 빈 속에 트림. (우웩)
커피뿐만 아니다. 기름진 음식과 엄청 맵거나 뜨거운 자극적 음식을삼가야 하고 무엇보다 과식을 멀리해야 한다. 초콜릿도 꽤 많은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고(*abc 초콜릿은 의외로 괜찮다) 탄산음료, 특히 제로 콜라는 커피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카페인 없는 차를 고를 때도 각종 민트가 들어간 것은 별로다. 어떻게 아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올해 가장 강력하게 내 식도 괄약근을 손상시킨 것으로 추정하는 회사에 비치된 싸구려 커피 머신 같은 건 이제 아예 손대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정성 들여 내려준 커피 마시는 일 자체를, 그건 인생의 큰 즐거움이니, 아예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섬세하게 고른 원두를 일주일에 한 번, 괜찮을 때는 격일로 마시기로. 그러나 오늘 지루한 회의에 갔다가, 주최 측이 준비한 저렴하고 강력한 카페인의 유혹 앞에서 그만 작아져 버렸다.
물론 커피는 죄가 없다. 게다가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자다가 '그' 질병 때문에 심하게 기침할 때는 평소에 베는 베개 위에 부드러운 쿠션을 하나 덧대서 머리의 위치를 높여주면 조금 낫다. 물리적으로 위액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식도 점막에 자극이 사라지면 목은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기침이 잦아들며 다시 잠을 청할 수 있다. 목과 어깨를 희생하여 식도와 위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좋은 잠을 위해 스스로 처방을 내린다.
역류성 식도염, 비만, 우울, 만성 통증, 수면장애, 시력 감퇴, 무기력, 눈 건조... 현대인이라면 한두 가지 정도는 가뿐하게 보유한 습관성 질병의 특징은 병원에 가도 참 애매하다는 것이다. 의사나 환자나 뻔한 얘기를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커피 끊으시고, 규칙적으로 운동하시고, 2주동안 약 먹어 보시고 안 나으면 다시 오세요.” 뻔뻔한 표정으로 주고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자기가 환자라는 것을 의식하고 난 다음에는? 아픈 사람/ 안 아픈 사람의 프레임에서 ‘이 정도는 가뿐하게 이겨주지!’ 하며 각종 검사를 섭렵하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거나 ‘난 원래 아픈 사람이야’ 하고 몸을 사리며 일상을 불안과 긴장 속에서 보내야 한다.
포유동물 인간 종의 DNA에 새겨진 적정한 수명은 38년이라고 한다. 의학기술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가늘고, 길게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적’ 삶의 선택지에서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안 아픈 사람이고 싶다. 아픈 건 싫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완전히 아픈 사람도, 완전히 건강한 사람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어딘가의 경계에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적은 것은 채우고, 과한 것들을 덜어내며 적당히 살아가면 그만이다. 몸은 생각보다 뻔하고, 대부분현대인은 비슷비슷한 병에 시달리고 있다.
언젠가 모든 질병을 물리치고 누구나 푹 꿀잠 잘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만병통치약이 개발될지도 모르지만, 아니 이미 누군가는 그걸 먹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질병을 지연시키거나 통증을 상당히 약화시키는 나만의 방법 한 가지 정도를 공유하고자 한다.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부분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에 한다. 하지만 나는 아침에 하는 걸 선호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부드럽게 몸을 준비시키고 본격적으로 격렬한 움직임을 시작한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개운하다. 잠도 잘 온다. 나쁜 잠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