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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산 Aug 09. 2024

통합교육이라는 망망대해 위에서-2

통합교육이 아닌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교육을 꿈꾸며

대한민국 통합교육은 발달장애 학생의 발달 촉진과 사회화를 부분적으로 돕고 있다. 제한적이며 탄력성이 떨어지지만 느리게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보호자로선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고 아이에게 이차적인 정서 문제(우울, 불안 등)까지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뇌신경 가소성*. 어려움이 있는 뇌신경 회로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좋은 교육 환경과 격려가 필수적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 줄 기회는 충분하지 않다. 답답한 마음에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며 주 양육자가 부족한 환경을 메꾸려 노력해 본다. 그러나 비장애 아이들도 부모가 가르치다가 사이만 나빠져서 학원을 보내는 마당에 느린 학습자인 아이들을 부모가 가르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망망대해를 떠도는 심정이 된다. 항해자는 매일 생각한다. ‘내일은 내려서 쉴만한 육지를 발견하려나?’ 버틸 식량은 점점 바닥나고 배에서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느 순간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 그저 항해를 멈추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된다. 식량이 떨어지면 하늘에서 빵이라도 떨어지겠거니, 하며. 애초부터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드문드문 섬이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식량을 메꾼 뒤 항해를 지속할 힘을 얻는다. 배우자의 성숙, 묵묵히 응원하는 가족,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들, 애정 어린 눈으로 아이를 지켜보시는 학교 보안관님,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려고 하는 아이들, 다정한 이웃 등…. 좋은 한 사람은 제도나 법률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배웠다. 서로 실수하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지만 언젠가 도달할 신대륙을 그려보며 오늘도 하루만큼 나아간다. ‘통합교육’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교육’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통합교육. 이 말은 장애와 비장애가 원래 통합되지 못했음을 내포한다. ‘여직원’, ‘여교수’와 같은 단어에 여자가 직업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듯이. 지금은 굳이 여직원, 여교수라 칭하지 않는 것처럼 통합교육이라는 표현도 옛 시절을 추억하는 말이 되길 바란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영화 '증인' 중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것 같다. 간단한 이야기와 셈하기 문제로 구성된 한 장 짜리 학습지를 날마다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조기 영어 교육이 대세인 시기는 아니었기에 알파벳은 못 봤다. 단색으로 인쇄되어 있었고, 5컷 정도의 만화도 들어있었다. 5살 무렵부터 잘 구성된 학습 영상이 나오는 학습기와 세련된 교구로 국어, 수학, 영어를 예습하는 요즘 아이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첨단 기술의 발달로 교과서도 AI 전자 교과서로 바꾼다고 한다. 조기 교육이 점차 추가되고 있다. 국어, 수학, 영어, 컴퓨터, 코딩… 운동과 악기도 한두 가지 해야 한다. 

이 모든 건 누구를, 무엇을 위해 하는 걸까?

이런 질문을 던져볼 새도 없는 아이들은 학원을 쳇바퀴처럼 돈다. 표준 규격으로 정해놓은 옷 같은 입시와 공교육에 각자 자신의 신체를 맞춘다. 공교육의 교과서 내용이 예전보다 풍성해졌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큰 물줄기가 그대로인데 그 주변에 작은 물줄기들을 낸다고 해서 강의 흐름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건 장애 아동도 마찬가지다. 백배 더 절박하다. 조금이라도 기능을 높이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각종 치료를 쏟아붓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치료실을 뱅뱅 돈다.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덜 지루하길 바라며 쥐 잡듯이 잡는 부모의 높은 언성에 익숙해진다.

    

인공 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점차 늘어나게 되리라고 많은 이가 우려한다. 인공 지능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자유 의지’라고 생각된다. 인공 지능은 창의력이 없지 않냐고? 무슨 소릴. 인공 지능이 그려낸 그림을 보면 내 창의력보다 낫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도 점차 발전하는 중이다. 단, 자유 의지로 스스로 동기 부여하지 못한다. 앞으로 인공 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강력한 자유 의지를 요구하는 일들이 더 많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낄 때 그 사람의 외모나 재능, 소유 때문에 끌리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그의 진심을 보았을 때이다. 나를 아껴주는 행동, 소탈한 모습, 너그러운 웃음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서 비롯된다. 선을 택하고, 사랑을 택하는 자유 의지. 인공 지능이 학습해서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 해도, 거기에 감동할 수 있을까? 알맹이 빠진 껍질처럼 느껴질 것이다. 더불어 사랑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자유 의지로 동기 부여하는 사람을 미래에는 더 간절히 원할 수도 있다. 

   

발달장애 아동에게 의사소통, 놀이, 언어 등을 가르치는 방식은 치료를 주도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치료사 중심과 아동 중심 치료로 나뉜다. 치료사 중심 치료에서는 치료사가 어떤 주제로 수업을 할 것인지, 교구는 무엇을 쓸 것인지 미리 구조화하여 수업한다. 아동 중심 치료에서는 미리 계획하기보다는 아동의 흥미와 관심을 좇아가며 놀이하듯이 수업하지만, 그 놀이가 아동의 발달을 촉진할 수 있도록 이끌어간다. 언뜻 들으면 치료사 중심 치료가 일방적인 방식처럼 느껴지겠지만 아동이 수업에 동기를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처음에 아동이 좋아하는 상황을 만들면서 요구는 아주 천천히 한다.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치료사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다. 장애 아동에게도 자유 의지와 동기 부여가 발달 촉진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은 모두에게 똑같이 차려진 밥상을 일방적으로 먹게 하기보다, 각 음식 재료의 영양소와 기능을 알려주며 스스로 메뉴를 고르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도 책임져 보고, 다음에는 밥상도 차려보고, 직접 요리도 해 보면서 배워가야 하는 게 아닐까? 자유 의지를 개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발휘하는 능력이야말로 미래의 인재에게 필요한 능력이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용어 설명

*뇌가 스스로 어려움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영역을 발달시키며 회복되려는 성질. 좋은 자극을 계속 받으면서 뇌신경이 새로운 신경 회로를 만들고 발전한다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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