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욕구가 있는 바로 거기!
"약간 연두색 같은데요."
" (손가락으로 목을 만지며) 가위로 목 잘라요?"
달콤 살벌한 귀요미 인형 같은 찬의 오늘 명언이다.
'약간'이라는 꾸밈 표현도, '~은데요.'라는 종결 어미의 사용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마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고,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 와서 표현하는 거겠지. 가위로 목 자르는 건 어디서 봤을까? 컴컴한 빈 집에서 불쑥 나타나 그렇게 해맑게 얘기했으면 '처키'보다 한 수 위 공포를 선사했을 것 같다. 가위로 목 자르는 걸 어디서 봤냐고 물으니 "좋아서."라고 담담하게 대답을. 하하…(어디서 봤냐니까!)
"어디서(강조) 봤어? TV에서 봤어?"
"네."
"영화에서 봤어? 만화에서 봤어?"
"만화."
명작 동화라는데… 명작 동화가 좀 잔인한 듯?
찬은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후에도 오랫동안 최소한의 언어 표현만 했고, 자발 발화(스스로 말하기)는 대부분 한 단어였다. 말이 조금 길어진다고 해도 전보식 표현이라고, 조사나 어미 등 문법적 요소가 생략된 채 단어만 2~3개 나열해서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찬의 말을 확장해서 들려주고 모방 발화(따라 말하기)를 유도했다. 그런 노력이 몇 달이 아닌 수년 이상이었다.
늘 지나는 길목에서 매번 무인 과자 가게에 들어가자고 졸라, "한 달에 두 번만 갈 거야."라고 하고 "이번 달에 이미 두 번 갔어. 이제 7월이 되어야 해.", "아직 7월이 아니야. 오늘은 6월 27일이야." 등으로, 만족 지연 능력 향상, 시간 개념 확장, 시간과 관련된 낱말 이해… 여러 마리 토끼를 잡으려 시도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나 오늘, 내일 같은 기초적인 시간 흐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시도는 무리일 것이다. 그런 개념이 이미 있다는 전제 아래 시도한 것이다.
아이의 동기가 큰 상황에서 엄마가 자꾸 한 달에 두 번만 가는 거라며 기다리게 하니, 다음 달이 대체 언제 오고 가게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는지 초미의 관심사였겠지. 이 분은 욕구가 분명한 집착남이시니까! 조금 지나 "내일 7월이에요?" 이런 식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당시 질문 기능의 자발 발화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아닌데. 모레부터 7월인데?"
"모레 7월 1일이에요?"
어느 날 선생님에게 설레는 문자가 왔다.
"찬이가 많이 컸어요. '내일 ○○○선생님 오는 날이에요?'라고 저한테 물어보지 뭐예요!"
속으로 빵빠레를 불며, 새 역사의 시작을 축하했다. 드디어 일반화*가 되었네!
아이의 욕구와 동기를 응용하여 이렇게 의사소통 능력이 발전하고 본인도 궁금증을 해소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해서 때때로 지치기도 하지만 이 또한 발전 과정이리라.
"택배 아저씨 목요일에 와요?"
"응. 그런데 금요일에 올 수도 있어. 금요일까지는 꼭 오실 거야!"
"네."
택배 올 때까지 위 세트 무한 반복. 당장 눈앞에 안 보이니 엄마 휴대폰으로 배송 위치 확인 요구. 함께 있는 동안 수시로 확인 요구. 집으로 배송 중이라는 문구 확인 후 약간 안심한 눈치.
찬은 똑같은 장난감도 무한대로 재구매하며, 원하는 장난감을 수시로 검색한다. 쉬고 있는 엄마 휴대폰을 눈치 빠르게 급습해 몰래 검색하다 들켜서 중지되기가 다반사다. 찬이 검색 중이던 장난감들은 기념일이나 칭찬할 때 사주려고 캡처해서 저장해 놓았다. 아이의 장난감 취향이 드러난다. 작은 크기, 특정 캐릭터…
지금 이 글을 보며 또 주황색 당근을 가리킨다. 전에 샀거든… 과거의 당근과 현재의 당근이 너에게는 다른 의미라는 건 알지만, 비슷한 아이들이 집에 차고 넘친다고~!
"찬아, 크리스마스에 사자.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야. 20일쯤 주문하자."
"안 돼! 너무 멀어요!!"
용어 설명
*일반화: 학습한 지식이나 기술을 새로운 상황이나 대상, 맥락에서 적용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