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 된 산책길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를 앞둔 엄마의 산책

by 해산

*앞으로 본 매거진에서 큰아들 훈을 '향기'로, 작은아들 찬을 '빛'으로 칭하기로 합니다.


새해 첫날. 맹추위도 한낮의 햇살에는 살살 달래어질 것 같아, 점심 먹고 큰아들 향기와 산책길에 나섰다. 둘만의 오붓한 산책이었다. 까칠함의 절정이라고 소문난 ‘중 2’ 타이틀에 걸맞게 평소 엄마가 입만 벙긋했다 하면 ‘발차기!’를 외쳐대는 향기다. ‘발차기’는 여러 뜻을 함축한 줄임말이다. 간섭하지 마세요, 잔소리 시작하지 마세요, 들어오지 마세요, 혼자 있는 시간 방해하지 마세요, 걱정하는 말은 꺼내지 마세요……. 아들 스스로 줄임말이라 칭했다. 때론 눈만 마주쳐도 발차기 액션부터 나오니, 엄마도 억울한 맘이지만 까칠하지 않게 받아줄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아들은 어느새 훌쩍 컸다. 자연스레 엄마 어깨에 팔을 걸치고 나란히 걷는다. 내가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거늘. 사춘기로 접어들며 이삼 년 동안의 변화가 크다.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뒷산의 유아 숲 놀이터. 아이는 익숙하게 운동 기구를 사용했고, 나는 빠르게 걷기에 돌입했다. 산 둘레길 걷기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아들에게 제안했더니, 역시 돌아오는 반응은 “신규 발차기!”. 좀 귀찮다는 뜻일 뿐 싫은 내색은 아니어서 향기는 이내 따라 걸었다. 먼저 말 걸지 않고 가만두면 좋아하는 가수나 영상에 관한 이야기를 가운데 토막만 툭 던지곤 하는 아들에게 나는 기승전결을 파악하는 질문을 한 후 아이가 덧붙이면 좋았을 말을 들려준다. 두런두런, 이 얘기 저 얘기. 대화가 잔잔히 흐르는 냇물처럼 이어지며, 집으로 가는 동안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서 같이 공부를 하면 서로 사이가 나빠지기 쉽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향기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나 어렸을 때 엄마랑 공부하다가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어요.” 나도 담백하게 받았다. “그때 향기가 힘들었을 거야.” “엄마하고 오랜만에 대화해요.” “그래, 오랜만에 둘이 걸어보네.”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서 훅 날아오는 공을 사뿐히 받아 던져보듯이, 툭툭 날아오는 대화 주제로 이야기를 흘려보내다 보니 아이의 깊은 속내까지 보게 된 것이다.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강렬한 부정적인 감정이 있었구나. 사랑의 최선이 어긋나 도달한 것에 대한 미안함, 아이에게 몰입되어 있었다면 마음에 깊이 들어와 박혔을 수도 있을 감정이지만 난 담담했다. “그래, 그렇게 화를 내면서 가르치면 안 되는데, 그만두려고 하다가도 알려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하다가 또 화내고, 후회하고, 엄마가 그랬었어.”

우린 그렇게 이어지는 시간을 걷고 있었다. 아픔은 아픔으로, 실패는 실패로, 사랑은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걷다 보면 더 복잡한 맥락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날도 있겠지. 산책의 순간을 잘라내어 마음속 선물 상자에 담았다. 이 시간은 선물이다. 향기의 키가 내 어깨 아래 있던 때, 매일 나와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때, 다른 엄마와 아이의 소소한 대화가 부러웠다. 말하지 않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지나는 풍경을 생중계하듯이 들려주는 것이 아침마다 과제였다. 일반적인 발달과는 다른 독특한 발달의 양상을 보였던 아이가 사랑스러우면서도 한없이 걱정스러웠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몰아붙인다고 느낄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를 채워주고 싶지만 채워주지 못하는 사람이 될 때의 불안함은 얼마나 컸을까. 하나를 해내면 다른 하나를 요구하는 엄마를 보며 매일 쟁취하느라 얼마나 숨이 가빴을까. '엄마 잘못만은 아니었어. 세상의 그릇이 다양하지 않아서, 네가 너에게 맞지 않는 그릇 안에서 힘들어질까 봐 엄마도 불안했던 거야. 엄마는 그때 그릇에 맞출 생각만 했지, 그릇을 만들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거든. 네 덕분에 알게 되었어. 적당히 예의를 지키고, 나머지 시간은 우리의 그릇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걸.'


실수하면서 자라는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우리 엄마가 옛날에 날 몹시 화나게 했는데, 엄마도 그걸 알았어. 노력은 하는 것 같은데 가끔 날 짜증 나게 해.’ 뭐, 이런 사람이었으면. 향기가 스스럼없이 불만을 나에게 말해주고 나도 공처럼 쓱 받았다가 던져주면서, 그렇게 걷고 싶다. 내가 어린 시절,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에 익숙했다. 이유도 모르고 매를 맞거나, 끝내 전해지지 못한 설득의 말로 인해 행동에 대한 질책은 공포와 서운함으로 남아버렸던 기억들.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었다는 걸 긴 세월이 지나 이해했지만 이제 다른 시대를 열고 싶다. 완벽한 어른은 될 수 없어도 함께 자라는 어른은 될 수 있다.

‘엄마하고 오랜만에 대화해요.’

엄마가 입술만 벌려도 ‘발차기!’를 외치던 사춘기 아들에게 인정받은 대화. 향기의 한 마디에는 엄마와 마음을 나누고 싶은 아들의 진심이 들어있었다. 진심을 향한 답은 듣는 어른으로, 함께 걷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어른으로 남기 위한 노력이라 여긴다. 앞으로도 우리의 선물 같은 시간이 지속되기를. 가끔 산책하며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아들의 곁에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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