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만들어가는 보통의 길 위에 놓인 기쁨에 대해

선우 - 정원, 뜻밖의 여정(푸른사상, 2026)

by 해산

앞에 보이는 길을 열심히 걷다가 갑자기 어둠만 남는다면, 주변 사람들마저 모두 사라진 것 같은 길이 놓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걸어갈 수 있을까? 뭘 잘못했는지 따져보기도 했다가, ‘왜?’ 질문도 해보다가, 결국에는 어둠을 더듬으며 의지할 무언가를 발견하려 애쓰게 될 것이다. 알지 못하던 세계와의 만남은 그렇게 문득 시작되기도 한다. 새로운 빛을 발견해 낸 삶의 길은 다시 보통의 길이 된다. 어쩌면, 전보다 더 애틋하고 귀해졌을 자리.


<정원, 뜻밖의 여정>(2026년 1월 출간)에서 나는 홀연히 인생의 낯선 길을 마주한 한 여자가 새로운 세계를 온 마음과 힘으로 끌어안아 길을 가꾸어가는 여정을 보았다.

작가 선우는 식물을 좋아하는 정원사이며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의 처리 과정이 남들보다 더 예민하거나 둔감한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한 불편이나 결핍감을 스스로 보상하기 위해 상동 행동, 상동 언어(주위 맥락과 무관하게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행동과 언어)가 나타나기도 한다. 제한된 관심사를 천천히 넓혀가며,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물론 이들에게도 각자의 강점이 있다. 저마다 증상의 모습과 강도가 달라 ‘스펙트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는 느린 시계를 가진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낯선 하루의 연속이었다. 완벽하지 않았던 그 여정은 조용했지만 격렬했다. 정원이와 함께하는 삶은 마디마다 기쁨이 있었다. 맑은 날 오후에는 화분에 물을 주다가 그대로 두고 문득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그럴 때 정원이는 내 손을 꼭 잡았고 기쁘게 웃었다. - 선우 저 <정원, 뜻밖의 여정> p32.


천천히 자라나 독특한 모양의 꽃을 피울 아이에게 몰두하다가도 정원의 식물들을 가꾸면서 흙과 바람, 햇살을 느끼는 한 어머니를 그려본다. 공기와 바람, 햇살, 물, 잎과 열매.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싹이 트고, 물과 햇빛에 자라고, 때가 차면 열매를 맺는 이치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도 닮았다. 사람은 기능하는 존재이기 전에 생명이므로, 열매를 맺기 전 공기와 햇살, 물을 흠뻑 마셔야 한다. 속도가 전부인 것처럼 외치는 세상에서 선우 작가는 느린 시계를 지닌 아이와 살아가며 매일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아 누린다.


내가 언어재활사(의사소통과 언어 발달을 촉진하는 직업인)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하는 일과 만나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특별한 개입 없이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성장하는 자녀를 키워 온 양육자는 노력으로 하나하나 기반을 일궈나가는 육아의 세계를 거의 상상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포기하게 되지 않아?”

일반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하나의 발달 단계를 노력으로 학습하기 위해 수많은 단계와 반복이 필요하다고 하자 한 친구가 탄식 섞인 질문을 했다.

“아이들이 학년에 따라 단계에 맞는 공부를 하듯이 계속 배우는 거야. 포기하는 게 아니고 목표와 방법을 바꿔서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야.”

아마도 포기라는 말은, 흔히 ‘정상’이라고 일컫는 발달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함을 내포하는 표현일 것이다. 중증(심한 정도의)의 발달장애 아동이 처음에 하나를 배우기 위해 잘게 쪼갠 수십 개의 학습 목표와 수백 번의 반복이 필요하다가, 배움의 기회가 꾸준히 이어지며 어느 순간 배우지 않은 성취도 가끔 해내고 반복의 횟수가 줄어든다면,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될 수 있다면, 하나하나의 기회들은 의미가 있다. 인내의 과정에서 얻게 되는 소중한 기쁨이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성경에서 한 신앙인은 사랑의 속성을 말하면서 첫 번째로 ‘인내’를 꼽았다. 오래 참고…. 누군가의 세계를 이해하고 다가서기 위해 오래 바라보고, 잠잠히 생각해 보게 된다는 건 깊은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토록 긴 헌신이 이어지는 동안 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아이를 돌보다 보면 식물을 고요히 바라보는 시간마저 잊을 때가 있었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현실은 고단함이 이어졌으니까. 애써 모아뒀던 낙관의 마음을 잃었을 때는 잡초가 자랐다. 잡초는 마음에도 생기고 정원에도 생겼다. 불안과 걱정이 무럭무럭 자라 그늘이 생긴다.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눈앞에 닥치면 마음은 길을 잃는다. 그럴 때는 정원을 이야기하고 아이의 세계에 대해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글 속에서 마음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있다. - 선우 저 <정원, 뜻밖의 여정> p231~232.


작가가 느끼는 미래의 불안, 현실의 고단함 이면에는 장애 자체 외에도 주변의 서툰 인식, 촘촘하지 못한 지원 체계, 인색한 예산 투자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크고 작은 돌덩이처럼 널려 있을 것이다. 사회의 걷는 속도를 배려하여 정원을 가꾸듯이 애써 말을 골라내어 기록을 남긴 선우 작가의 노력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모르는 이들이 아직 많기에 맞닥뜨린 현실 속에서 애쓰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자폐(自閉) 스펙트럼이 아닌 완개(緩開) 스펙트럼이라는 용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있는 사람이 아닌, 서서히 열리는 사람. 한 걸음씩 천천히 세상으로 나아가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때에 꽃을 피우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 이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들을 볼 수 있도록 독려하는 사람들. 존중은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언젠가, 의학적 진단명에도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은 사회적 합의가 반영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애써 가꾸어 꽃을 피우듯, 그들도 보통의 삶을 산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https://omn.kr/2h67c)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