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용-서툰 아빠의 마음공부(파라북스, 2025)
벌써 14살이 된 큰아들은 엄마 실루엣만 봐도 거리를 두는 몸짓으로 방어하기 일쑤다. “만두 발차기!!” 한 발을 내밀며 팔로는 칼 베는 흉내를 낸다. 어이가 없다. “짜장 발차기!!!” 억울함을 담아 응수한다. 아들이 없는 시간, 오랜만에 돌도 되기 전 아들의 한창 예뻤던 모습이 담긴 영상을 혼자서 감상했다. 엄마의 사소한 장난에도 까르르 숨넘어가게 웃음을 터뜨리며 웃던 아이. ‘아, 한번 안아보고 싶다.’ 영상을 뚫고 뛰쳐나올 리 없는 추억의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냥 묻는 말에도 불쾌한 내색을 팍팍 비치며 엄마가 세상 만만하다는 듯 짜증을 내는 아들의 사춘기를 이해하려 노력하다가도, 키우는 동안 성심을 다한 생각을 하면 마음 한구석 서운함이 빼꼼 고개를 든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2000년대 초반생 아들에게 영혼을 갈아 넣은 아빠.’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저자 김진용에 대한 소개 글 첫 문구이다. 당신도 영혼을 갈아 넣으셨군요! 문구 하나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 맞벌이와 인식 변화로 아빠의 육아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엄마만큼은 아닐 거란 예측을 과감히 엎는다. 책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까칠한 사춘기 아들을 힘껏 사랑하는, 유머 넘치는 아빠의 철학적 반성문’
자녀를 ‘잘’ 사랑하려 노력하는 모든 부모는 반성이 기본자세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덜 여문 인격체인 자녀는 하루에도 수시로 부모의 감정을 자극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한다. 밖에선 감정 조절에 어지간히 도가 튼 사람이더라도 자녀를 향한 날카로운 말과 행동으로 생채기를 내기 쉽다. 실은 부모도 단단한 껍질 안으로 말랑거리는 어린 자아를 가졌다.
저자는 교육 분야 취재도 해왔고 공동 육아에 애정을 쏟았던 훌륭한 이력의 소유자였지만,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 앞에서는 케케묵은 상처의 바닥 먼지까지 탈탈 털리는 경험을 한다. 자녀의 시기적 특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보호자와 자녀’ 프레임 속에서 안정적으로 구축해온 부자 관계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으로 무대가 확장되면서 시야도 함께 넓어져야 했을 뿐이다. 단순히 보호자로서가 아니라, 다른 인격을 가진 타인으로 자녀 앞에 서게 된 거다. 주연과 조연이 아닌, 공동 주연으로 무대에 서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런 관계 구조의 변화를 눈치챈 저자는 말한다.
아들과 오래 충돌하며 깨달은 게 있다. 부자갈등이 다른 인간관계 속 충돌 모습과 겹치더라는 것이다. 부모‧형제‧자매, 부부나 연인, 오랜 친구나 동료 같은 소중한 인간관계들 속 충돌도 밑바닥에는 결국 부자갈등과 엇비슷한 맥락이 흐르고 있었다. 부자갈등은 심지어 세대와 집단 간 극단적 대립이라는 사회적 이슈의 축소판이기도 했다. 달리 섰으나 같은 노을에 젖어 있었다. <김진용 저,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파라북스, 2025. p10~11.>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저자는 부자간 대립과 갈등을 고전 소설, 영화, 희곡 속에 드러난 다툼들에 비추어 해법을 찾아간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여느 집에서 일어날 법한 부자갈등을 필두로 엇비슷한 맥락의 이야기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사건과 대화를 되새김질하며 현재의 의미를 새롭게 풀어간다. 그 여정의 마지막에는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아버지의 성장이 자리한다. 사랑하기 위해 깨어져야만 했던 아버지의 애끓는 성찰 과정에 ‘흔들리며 피는 꽃’이 떠올랐다. 방어할 틈도 없이 훅 들어오는 사춘기 아들의 말 난도질, 눈빛 난도질에 너덜거렸던 아빠의 마음. 이야기를 벗 삼아 자신의 깊은 마음을 꺼내 관망하듯 바라보다가 몰랐던 상처와 처방을 발견하게 된다. 감정을 매만졌던 기억이 너덜거림 사이를 메꿔주어, 이제 아버지와 아들은 마냥 삐걱대지만은 않으리라.
자녀를 키운다는 건 부모 세대가 밀려난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었고, 자녀가 자라 다시 부모로 저무는 일은 세대교체, 그러니까 계승의 정점이었다. <김진용 저,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파라북스, 2025. p121.>
사춘기는 같은 물에서 헤엄치던 아이가 다른 물길을 찾는 시기다. 부모와 자녀가 슬기롭게 각자의 헤엄을 도모해야 하는 인생의 한 구간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부모를 밀어내고, 다시 자녀에게 밀려나는 건 자연의 순리일 것이다. 아들은 숙고 끝에 ‘아빠의 좋은 점’을 묻는 아버지의 열린 질문에 번개처럼 ‘하나도 없어.’라고 단답형으로 답한다. 아버지는 타인으로 옆에 선 아들과 억지로 엉겨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기로 했다. 한 발짝 물러나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 문학과 영상의 서사 안에서 사색의 시간을 가진 아버지의 다음 구간을 응원하고 싶다. 언젠가 아이는 문득, 함께하던 따뜻한 눈길이 궁금해 돌아볼지도 모른다. 나도 영상 속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마음에 담은 채, 나의 헤엄을 시작하려 한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가입했습니다. 이 서평이 첫 기사로 채택이 되었네요.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을 보니, 기사 지면에 맞게 예쁘게 담아주셨어요(https://omn.kr/2h0rp). 도파민이 뿅뿅!! 발행글은 제가 마지막으로 퇴고한 버전입니다.
아이들 방학동안 글 쉬려고 하다가 어서 알리고픈 마음에 발행합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필명 지으신 무당벌레 작가님, 보고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