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간에 대하여

삶의 단상

by 목련

오늘 나는 오랜만에 오전 사우나를 갔다.

사우나를 다녀오면 내 안과 밖에 쌓여있었던 불순물(나쁜 생각부터 나쁜 행동까지)들이 없어지는 거 같고, 절로 명상이 되어(습식사우나 68도) 최애 취미 중 하나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남들은 신을 따라, 신을 보러 신성한 곳으로 갈 때 나는 매주 뜨거운 그곳으로 갔다.

심지어 물이 가장 더러운 일요일 저녁마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행하듯 그 시간마다 간 이유는 사우나가 '가장' 한가한 시간이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였다. 평소 샤워를 5분 내 해치우고 심지어 그 시간을 단축하면 쾌감까지 있는 나란 사람이지만, 그래도 사우나만큼은 여유롭게 하고 싶었다.


퇴직 후에는 스트레스가 줄고 심리적 평화가 찾아오면서 매주라는 루틴은 깨졌지만 일정의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게 된다. 그렇게 오랜만에 간 김에 나도 모르게 좀 더 여유롭게 머물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평소보다 30분 이상 길어지고 있었다. '어랏? 시간을 이렇게 함부로 쓰면 안 되지!'


서둘러 정리하려다 거울 속 나를 바라봤다.

'너 지금 여기가 너무 좋지 않아? 왜 여기 2시간이 아깝지, 이렇게 나에게 기쁨을 주는데?

TV 앞 침대에 누워 아무 의미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으로 리모컨만 꾹꾹 2~3시간씩 잘도 돌리고 있던데?'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쓰는 것이 현명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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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Jon Tyson



긴 세월, 회사 월급과 나의 한정된 시간의 맞교환은 당연했고 그래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여 가끔은 나를 돌봄이라는 명분으로 연차를 활용하여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하루를 알차다 못해 숨 쉴 틈 없이 가득한 일정으로 채워 넣었다.


한 여름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하는 전시를 보겠다며 남부터미널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내려 걷는데 '아... 이래서 사무직(사무실 한켠의 당연했던 에어컨으로 시원하다 못해 누군가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일하는)이 편하다고 하는구나...' 평일의 자유를 뽐내며 우아하게 (=천천히) 걷던 나는 십 분도 못 가서 온몸이 땀으로 젖고 숨이 턱턱 막힌 채로 편의점에 불시착했다. 다행히 안에 테이블이 있는 규모 있는 편의점이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하...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더니... 여름에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구나...'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나를 감싸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사실은 소속되어 있는 그곳에서 제공해주고 있는 편의이자 복지라는 걸, 퇴직 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또한 다음 날 출근길, 일한 날보다도 훨씬 더 심신의 피폐함을 느끼며 자책하기에 이른다. 난 대체 시간을 어떻게 쓴 건가...


나는 시간 관리를 매우 중요시하며 철저히 관리하는 스타일이다. 약속시간 늦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며 상대가 늦는 경우 역시 이해는 하나, 유쾌하게 받아들이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굉장히 효율적으로 타이트하게 매우 잘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의 질을 중요시하지 않은 것이다. 스케줄링에 급급하며 시간 자체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 못하고 쳇바퀴에 갇히고 말았다. 회사 생활 (근무), 취침/출퇴근 (잠/이동), 퇴근 후(음주 or 양육) 3가지 구획 내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었다. 약 15년 이상을... 그 각각의 카테고리에 꽉 끼어서 말이다.


월급에서 일정 부분 저축하려면, 생활비 쓰기도 빠듯한데 누군 저축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나? 생각했고

회사 생활 외에도 부업이나 이직/미래 준비하려면, 하루 출퇴근도 빡세 죽겠는데 언제 하냐? 생각했다.

결혼이라도 안 했으면 했겠지, 애라도 없었으면 했을 걸 등 핑계대기 급급했다. 당연히 핑계 댈 수 있고 그 시점엔 그것이 핑계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나를 놓치면 시간을 놓쳐버리는 것과 같고, 뒤돌아보게 되는 어느 시점에 내 몸은 빙봉 (인사이드아웃 2 코끼리)처럼 희미하게 휘발 중일 것이다.


찰나가 될 수 있는 내 삶 그 자체인 시간을 돈과 맞트레이드할 그것은 아닌 것이다. 가장 적극적인 핑계 중 하나인 '시간이 없어서'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출근길 5분 혹은 회사에서 나와의 미팅 5분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우리 모두가 나에 대한 탐색 시간을 놓치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레베카솔닛#김정아#걷기의인문학#반비


(37p) 니체는 "나에게 세 가지 오락이 있으니, 첫째는 나의 쇼펜하우어, 둘째는 슈만의 음악, 마지막은 혼자만의 산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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