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46세의 나는 여전히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어쩌면 애초에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설프게 알고 있다고 느꼈을 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빠른 시간 내에 상대를 파악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며 단정 짓는다.
심지어 나이를 먹어가며 회사 생활 속 노출되는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적중률까지 높아진다.
하여 함부로 "거봐, 저 사람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는 진단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의 안목에 대한 신뢰까지 쌓이게 된다.
그렇게 나에 대해서도 쉽게 정의하고 판단해 버린 생각들이 나를 옭아매서
내 인생을 제한하고 잘라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타강사 어떤 수학 선생의 말처럼 아예 모르거나 아예 제대로 알면 문제가 없는데,
어설프게 어중간하게 애매하게 알 때
마치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러면 진짜 아는 줄 알고 아무리 공부를 해도 개미지옥 같은 늪에 빠진다는 거다.
메타인지가 이렇게 무섭다.
그렇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나'가 맞는지 이제는 좀 더 냉철하게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은 날, 나의 장례식장에 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할 때
"아무개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응? 아니야! 저런 사람일걸?"
"뭔 소리야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이런, 저런도 아닌 요런 사람이었지"
생각만 해도 난감한 상황이다.
설사 신의 특별한 아량으로 안치실에 누워있는 나에게 마이크를 주며 스피치 할 시간을 준다고 하더라도
"나도 사실 나를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학교, 학원, 직장, 친구, 취미모임 등 많은 관계들의 무리 속에 섞여 들어 강한 주장보다는
좋게 좋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우리 세대의 보편적인 특성과
이런 것이 마음이 편한 나의 성격까지 합치되어
뭐뭐 하는 척에 쌓여가며 나는 나의 소리를 잃어갔다.
이제라도 나는 나의 소리를 찾아 떠오르는 일상의 단상에 집중해 봐야겠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나는 왜 그런 생각들을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알아가야겠다.
#양귀자#모순#도서출판_쓰다#펴낸이#심은우
(296p)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218p)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