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추위를 타는 내가 애정 하는 아이템이 있었으니, 내게 따뜻한 밤을 선물해주는 전기장판. 철들고 난 이후 땀이 뚝뚝 떨어지는 한 여름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내 잠자리에서 떼어놓지 않았던 녀석과 이별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출산'이었다.
친정엄마는 요새도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혀를 내두르신다. 내가 전기장판 없이 자는 것을 보고 엄마의 모성애는 대단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신다고 했다. 전기장판이 고장이라도 나는 날에는 온갖 짜증을 다 부리고, 여름이 시작되는 길목까지도 전기장판을 켜놓고 자던 나였기에 엄마 눈에는 고작 얇은 이불 하나 덮고 잠을 청하는 딸이 당연히 신기해 보였으리라. 뜨끈뜨끈한 바닥이 아니면 밤새 뒤척거리던 딸자식이 다리 곁에만 이불을 걸치고 잠든 걸 보고는 고개를 내저으셨다고 했다. 내 딸이 저렇게 변할 줄이야. 친정엄마는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혼도 나의 전기장판 사랑을 막진 못했다. 신혼 초, 열이 많은 남편과 나는 한 이불을 덮고 잤으나 끝내 한 바닥을 공유하지는 못했다. 나는 반쪽짜리 전기장판을 마련해 내가 눕는 바닥에만 깔았고,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고이 손을 잡고 잤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한 최대한의 배려였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이불 밖으로 발을 내놓다 못해 거의 몸 전체를 꺼내놓고 잠자기 일쑤였고, 나는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려 덮고 잤다. 그 포근함과 따스함이 좋았다. 전기장판과 극세사 이불의 조합, 놓칠 수 없는 나만의 애정템 꿀 조합이었다.
아이를 낳고 어쩔 수 없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감기에 걸릴까 봐 이불을 덮어주었다가 땀띠가 올라와 그냥 재우기를 여러 날. 나는 이내 내 아들이 온전히 아빠를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결국 내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녀석을 배려한다고 은은한 온수매트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매트를 걷어내고 이불도 바꾸었다. 물론 녀석은 이불을 거의 덮지 않으니 내가 덮는 이불뿐이었는데, 그조차도 더울까 봐 가벼운 면 이불로 바꾼 것이다.
아이는 거짓말 같이 잠을 잘 잤다. 엄마는 오들오들 떨다가 새우잠을 자는데 아이는 어느 때보다 깊은 잠을 잤다. 배냇짓을 했고, 엄마에게 포근히 안겼다.
'그래. 이거면 되지 뭐. 내 아들이 잘 자면 되는 거지.'
애정템을 자발적으로 잃어버린 지 20개월. 아이는 그 뒤로 단 하루도 이불을 덮지 않았다. 요새도 발끝에 조금이라도 이불이 걸리는 날엔 어김없이 깨어 칭얼거리기 일쑤다.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 발끝에 걸려있는 이불을 살포시 치워주는 일뿐이다.
엄마에게 안겨서 자는 녀석을 배려해 나도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 덮지 않는다. 언제든 데굴데굴 굴러와 안길 수 있도록 조금의 여유를 남겨 놓는다. 밤공기가 조금 서늘하다 싶을 때는 아이를 포근히 품어 본다. 조그마한 손가락을 내 손가락에 돌돌 말아본다. 새근새근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보들보들한 살결이 데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볼록볼록 움직이는 배를 보며 빙그레 웃음 짓다 보면 어느새 온몸에 따스한 훈기가 돈다. 귀하디 귀한 몰랑몰랑 손난로를 얻은 기분마저 든다.
엄마가 되면서 잃은 것이 적지 않다. 놓치기 아쉬운 것들도 있고,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도 있다. 하지만 얻은 것 또한 적지 않다. 신기한 건 잃은 것들 중 대부분은 내가 곧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들인데 반해 얻은 것들 중 대부분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소소한 것들부터 제법 굵직한 것들까지, 아이를 낳고 나서의 삶은 어쩌면 결혼하기 전에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영역의 것들이 많다.
내가 애정 하던 전기장판은 확실히 잃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따스함을 채워주던 녀석이었는데.
하지만 대신 마음속까지 따뜻함으로 채워주고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해주는 조그만 나만의 난로를 하나 들였다. 그 걸로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도 난 기꺼이 얇은 이불을 다리에 반쯤 걸치고 잠든 아이 옆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