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다닐 적에 기업교육에 출강할 강사님들의 경력을 검증하는 일을 했었다.
외부에 교육과정 제안이 필요한 경우, 강사님들의 학력증명서나 경력증명서는 꼭 필요한 사전 준비 서류였다. 사내에서 하는 교육과정이라면 그간 강사님들의 만족도 점수나 평판 등도 고려대상이 되었다.
해당 교육과정에 적합한 강사님을 찾는다는 명목 하에 참 열심히도 사람을 서류로 평가했고, 줄 세웠다.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
잘못된 행동은 아니었겠으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내게 그 업무는 적지 않은 고정관념을 남겼음에 틀림없다.
무슨 일을 할 때, 나는 내가 과연 그럴 자격이 되는지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그럴만한 학력사항을 가졌는지.
내가 그럴만한 자격증을 가졌는지.
내가 가진 경력이 그 일에 맞는 분야의 것인지 아닌지.
내가 책 한 권을 낼 만한 자격이 있는지, 그만큼 전문성을 가졌는지.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함에 있어 '자격에 대한 두려움' 은 항상 내 발목을 붙잡았다.
너는 그 분야 전공자도 아니잖아. 적어도 석사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전문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블로그에 괜히 글 올렸다가 틀린 내용이면 어떻게 해?
내공이 쌓인 전문가도 아닌데, 사람들이 네가 하는 거에 관심이나 있겠어?
적어도 10년 이상은 해야 강의도 하고, 어디 가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거 아냐?
당장 내가 전공을 바꾸지 못하고, 몇 만 블로그를 가지지 못하고, 수십 년 이상의 경력을 가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격에 대한 두려움은 계속해서 나를 쫓아다녔고 결국 나는 시작하는 것에 주저하게 되었다.
경력을 쌓아야 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해.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퇴사 후 관심 있는 몇 가지에 대해 열심히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자격증을 통해 내가 말했던 그 자격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고, 잠시의 의도치 않은 휴식.
입덧이 심해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잠시 쉬는 동안, 처음에는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자신감을 잃었고, 이렇게 자격을 준비할 시간 조차 잃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관심이 가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욕심내지 말고, 그냥 시작하자!
조금 느려도 꾸준히 만들어 가다 보면
그게 곧 나의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시작하지 않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 봤자 변하는 것은 없었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내 모습 그대로 하루를 더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축적의 시간을 원한다면 첫 벽돌을 쌓아 올리는 것부터 해야 하는데 바스락거리는 마음을 잡아내지 못하면 결국 벽돌은커녕 모래 한 줌도 쌓아 올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리 길을 걷는 여정의 시작은 지금 떼어놓는 한 걸음부터라는 사실을 문득 떠올리게 된 것이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내가 말했던 그 자격이라는 것도 이미 시작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
시작하지 않고 두려워만 하거나, 걱정하면서 남들을 부러워만 해봤자 결국 5년 뒤, 10년 뒤에도 난 자격 없는 사람일 뿐일 것이다. 지금 관심이 가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조금 느리더라도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만의 생각이 쌓이고, 글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나도 남들이 귀 기울여 들을만한 콘텐츠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때에도 또 지금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혹시 주저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시작하길 바란다. 작고 보잘것없다고 생각되어도 첫걸음을 떼어보기를 권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돌이켜보면, 분명 그때 정말 잘한 거야!라고 스스로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