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걱정에 계속 다니든가, 노후걱정에 그만 두든가.

by 수련화

나 어릴적, 우리 부모님은 참 열심히 살았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땀 흘리며 열심히 일했고, 가정에도 충실했다. 아이들이 커가는 소소한 행복이 무언지 알고 있었던 분들이셨고, 부족했지만 여력이 닿는한 자식들의 교육에 정성을 다했다. 그렇게 30대, 40대, 두 분의 청춘은 저물어 갔다.

대한민국 어느 부모보다 열심히였던 우리 부모님은 여전히 돈 걱정을 하신다. 아니 예전보다 더 많이 돈 걱정을 하신다. 나이가 들며 벌이는 점점 시원치 않아지고, 이곳저곳 몸도 아프시다. 그나마 자식농사를 잘 지었기에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녀석이 둘이나 있지만 한 달에 몇 푼 용돈받는 것에도 눈치를 보신다. 키워준 은혜에 대한 공을 소리높여 외쳐보지만 당장 달랑거리는 통장 앞에 노후대책이라는 말은 그저 막막하다.

참 답답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란게 이런 걸 두고 하는 소리인가.
땅에 코가 닿일 듯, 몇 백번이고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에 감사를 더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막상 통장을 들여다 보면 내 상황 또한 그리 녹록치가 않다. 빠듯한 직장인 월급에 이거 해드리고 저거 해드리다 보면 우리 통장도 딸랑딸랑. 젊었을 적, 효부 소리를 들으며 시어머니를 모셨던 우리 엄마가 나이들어 돈 없는 맏며느리라고 괄시를 받았던 기억이 스치면서 나는 엄마처럼 살진 말아야지 마음을 먹어본다. 그럼 어쩔수없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자식새끼가 된다.




우리 부모님에게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회사는 그 자체로 든든함이었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셨던 두 분은 평생 적더라도 매달 고정적인 월급 나오는 직장이 얼마나 좋으냐며 노래를 부르셨다. 그리고 내가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누구보다 자랑스러워 하셨다.

직장생활 10년차, 나는 엄마에게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엄마, 10년을 일했는데
그닥 나아진게 없어.
앞으로 10년을 더 일한다 해도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10년 전보다 우리집 상황은 조금 더 나아졌고, 좀 더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었다. 매달매달 0원으로 내달리던 통장도 이젠 없다. 하지만 월급이 느는 만큼 꾸준히 씀씀이도 늘어났고, 그 놈의 대출도 조금씩 늘어났다. 하루하루 살기는 좋아지고 있었으나 결국 이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저 재테크에 능하지 않은 내 능력을 탓했다. 모든게 그냥 내 탓이었다.

젊은 치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내 사업을 시작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남편도 그것이 좋겠다고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그 뒤, 1년을 채우기도 전에 남편도 회사를 그만 두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넉넉한 부모를 둔 덕에 회사를 그만두고 한량 놀음이나 하는 줄 안다. 모아놓은 돈이 넉넉하니 덜컥 하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넉넉한 부모가 있었다면 나는 따박따박 월급나오는 회사를 다녔을 것 같다. 연차 챙겨 놀러다니고, 때때 맞춰 아파트 평수 늘려가면서.

사실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데 있어서 부족함은 없는 환경이었다. 남들만큼 키울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양가 부모님들이 정말 노후 걱정을 하실 때 쯤이면 우린 지금보다 더 많은 돈 걱정을 하게 되겠지. 어쩌면 우리 아이에게 앞으로 더 좋은 것을 해주고, 더 나은 것을 가르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풀려진 우려라고 할지 모르지만, 둘이 벌어 양가 부모님 네 분을 모시는게 가능할거란 계산이 도무지 서질 않았다.

맞다. 더 큰 돈이 필요하고, 더 큰 도전이 필요했기에 우리는 과감히 회사를 그만 두었다.
아이러니인가. 돈이 필요해서 회사를 그만두다니. 더러는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할수도, 더러는 우리를 보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할지 모른다.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게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헛짓거리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춘을 걸고 배팅을 해야 한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일에 치여, 자식에 치여 20년의 청춘을 바친 분들의 60대를 함께 바라보며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노후 걱정에 열심히 회사를 다닌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노후 걱정에 얼른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본다.

누구의 선택이 옳은 것일까.
나는 우리의 선택이 반드시 옳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10년, 20년이 지났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두 가지 선택의 결말이 조금 궁금해 지긴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우리 부모님들의 청춘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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