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신입사원이었던 시절, 우리 사무실에는 이런 분들이 계셨다.
단정하게 팔토시를 하고 항상 안경을 콧등에 반쯤 내려쓰고서는, 굳이 안경 위로 눈을 치켜뜨고 사람을 쳐다보았던 레이저 발사 부장님.
업무에 대한 불만과 체력의 한계는 회식 한 방으로 모두 해결될 거라고 믿는 회식 예찬론자 차장님. 차장님은 흠뻑 취하는 회식이 지나면 사원들의 불만쯤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믿으셨다.
한 시간에 한 번쯤은 어김없이 담배를 피우러 나가시는데 꼭 자판기 커피를 함께 들고 나가시는 떠돌이 과장님. 물론 돌아올 때 가글은 잊으시고 사무실 복귀 직후 불쾌한 입냄새를 풍기며 업무지시 돌입! ;;; 사원들은 과장님의 업무지시가 싫은 게 아니라 그 냄새가 싫어서 과장님을 멀리 했다.
나이에 비해 풍채가 좋으셨던 탓에 항상 두 손을 가지런히 본인의 배 위에 올리고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고 계셨던 월급루팡 만년 대리님. 대리님은 너무 착했지만, 착한 만큼 모든 부서의 일을 모아 모아 우리 부서 사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다시 배 위에 손을 올리고 자리에 앉으셨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막상 내가 배불뚝이 펭귄 여사가 되어보니 생각보다 배 위에 손을 올리는 게 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산부가 되어 뒤늦게 대리님을 이해하게 된다.)
각자의 사무실에 있을 법 하지만, 사실 만나기 쉽지 않은 유형의 어르신들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본인의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은 물론이요, 그것을 지켜내는 굳건한 멘탈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에 소개하는 이런 유형의 상사는 어떠한가.
보고의 기술이라고 해야 하나. 분명 문제가 많은 프로젝트인데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보면 나 또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깜빡 속게 만드는 기술을 가진 보고의 달인 부장님. 사고는 결국 터지게 마련이지만, 내내 칭찬만 받았던 부장님은 프로젝트 말미에 항상 어디론가 사라지신다.
사원들 하고 싶은 대로, 우리 아이디어를 흠뻑 적셔서 진행해 보라고 동기부여를 잔뜩 해주시고는 납기 3일 전에 점검회의를 하면서 항상 표정이 굳어지시는 자칭 실무형 리더 차장님.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냐, 저건 어느 업체에 알아보면 금방 해줄 거다 라는 훈수를 잔뜩 두시고는 업무의 완성도를 위해 부득이한 야근과 주말출근 선언을 하신다. 그리고는 언제쯤 본인은 실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냐며 푸념하시지.
밥 사주마, 커피 사주마... 사원들과 자주 어울리는 박쥐 과장님.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왠지 사측 냄새가 폴폴 풍긴다. 임원들을 감싸고도는 것은 물론이요, 요즘 어린 사원들이 몰라서 그렇지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다며 토막 설교를 늘어놓는다. 가깝고도 먼 과장님과의 애매한 거리.
발탁 승진을 한 유능한 사내정치 일인자 대리님. 분명 블링블링 대리님인데, 어쩜 저렇게 아부 일색인지. 사회생활은 저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긴 한데, 사석에서 줄곧 험담을 했던 상사들에게 세상 가장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렇게 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자괴감이 든다.
꼰대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우리는 꼰대라는 말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누구나 꼰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젊은 사람들이 다정하게 모여 시원한 맥주 한잔을 나눌 때, 꼰대들은 항상 푸짐한 안주거리가 된다. 꼰대들이 만들어 내는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은 아주 가끔은 무료한 회사생활에 활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쩜 저런 생각과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거지. 젊은이들은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내젓는다.
신입사원 때 만났던 꼰대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었고, 절대 만날 리 없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막연하게 나중에 내가 나이가 들어 저 자리에 가면 절대 꼰대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꼰대의 정의가 옛날에 비해 너무 넓어진 것이 아닌가.
이런 것도 꼰대 짓이라고 하는 건가. 이런 건 옛날 꼰대들이 하는 앞뒤 꽉 막힌 훈수가 아니라 사회생활의, 아니 회사생활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내게는 기본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면 꼰대 짓을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상황이 아주 가끔씩 생겨났다. 혼란스러웠다.
회사에서 가까이 지내는 차장님이 계셨다. 말도 잘 통하고, 업무 스타일도 비슷한 데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지게 되었다. 자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 보니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후배들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차장님, 이해 안 되시죠? 걔가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알려주지 말고 그냥 하는 대로 둘걸 그랬나 봐요."
"그러게. 요즘 신입사원들이 좀 그래. 옛날 같지 않은 면이 있어. 어쩌겠어."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을 가까이에서 일하다가 각자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되었는데 1년쯤 지나서였나. 회식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차장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글쎄 그 차장님이 그랬다니까.
좀 별로야. 그렇지?
다들 자기 보고할 것만 챙기고,
나이 드신 분들이 다 그렇지 뭐.
어느새 차장님은 푸짐한 안주거리를 내어주는 꼰대가 되어 있었다.
분명히 며칠 전에 들었던 차장님의 이야기로는 후배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어 본인의 야근을 불사해 가면서까지 도움을 주셨고, 그로 인해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었다고 하셨는데... 같은 프로젝트 이야기였지만 후배들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연예인들이 자주 등장하는 신문기사의 "같은 옷, 다른 느낌"처럼 두 이야기는 같은 듯 달랐고, 이미 둘 사이에는 적지 않은 거리감이 있었다. 이 쪽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았고, 저 쪽 말을 들으면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이제 회사에서 나는 어느 쪽에 서 있는 사람인 걸까.
꼰대에도 레벨이 있다면 아마 차장님과 나는 높은 레벨은 아닐지 모른다. 만렙을 찍으신 분들을 따라가려면 아직 한참은 남았을 거다. 그렇게 믿으련다.
하지만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만으로는 젊은이의 감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결국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건가.
문간방 자리에서 차근차근 창가 쪽 자리로 올라갈수록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레 꼰대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